
HBJ

봉오동 전투
평균 3.7
'봉오동 전투'는 1920년에 벌어졌던 대한독립군의 역사적 승리인 봉오동 전투를 다룬 영화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영화는 많지만, 전투가 많지 않았던 탓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꽤나 신선했다. 또한 원신연 감독의 직전작인 '살인자의 기억법'도 아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기대치는 있었다. 하지만 기대에 크게 밑돈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역까지 범접한 실망적인 경험이었다. 연출적으로는 인상적인 부분이 좀 있긴 했다. '레버넌트'처럼 광각렌즈와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로 총알과 폭탄과 핏방울이 빗발치는 혼돈을 와이드샷으로 모두 담으며,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드론숏들은 단순히 배경숏 용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아군과 적군의 위치와 현재 전황에 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주는 용도로 적재적소에 사용한 점도 괜찮았다. 거기에 배경의 아름다운 경관까지 더하니, 시각적인 만족감은 충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촌스러운 선전 영화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기도 했다. 우선 인물들이 너무 일차원적이다. 전쟁 영화이면서도, 특히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애국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영화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 요소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다. 이 영화는 인물들을 거의 소모품 취급하듯이 한다. 영화의 대부분 인물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을 감수할 의지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왜 그런 의지를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을 거의 안 한다. 그나마 이해할 수 있던 것은 복수심이 내재돼있는 유해진의 캐릭터였는데,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류준열과의 관계 묘사도 매우 부족하고, 영화의 대부분 시간동안은 그 복수심을 거의 배제하고 전개하기 때문에 딱히 몰입할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영화에서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한다"라는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나쁜 것이 절대 아니다. 문제는 그 희생을 어떻게 정당화할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혹은 옆에서 같이 싸우고 있는 전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애국주의와 개인을 잘 조화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애국심을 기반으로 한 무조건적인 희생 강요는 인간성이 결여돼있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며, 중국의 공산당에서나 만들 법한 주선율 영화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띄게 된다. 이 영화는 하나의 전투를 다룬 영화다. 그 계획 자체도 이론상으로는 상당히 단순하게 설정돼있다. 하지만 다양한 조연들을 마구잡이로 추가하며, 단순해야할 임무가 너무 복잡하게 전개되며, 영화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는데를 실패한다. 작은 전투 하나 하나만 보면 액션 연출이 나름 준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웠다. 캐릭터들의 계획은 대강 알겠는데, 그 계획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A에서 B로 왜 가야하는 것이며, 그곳에 가면 얻는 이득과 못 가는 생기는 손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너무 힘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니, 당연히 스릴과 몰입감이 상당히 떨어졌다. 영화의 톤도 너무 오락가락하다. 민간인 학살 같은 굉장히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는 반면, 유해진과 류준열을 거의 슈퍼히어로로 그리는 듯한 과장되고 가벼운 장면들도 있었다. 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쉰들러 리스트'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왔다갔다하는 느낌이었다. 일제의 잔혹함에 맞서 싸우는 독립군들의 전투를 치열하고 사실적으로 그리다가도, 갑자기 무슨 액션히어로인 마냥 이상한 전개로 급우회하는 전개는 정말 오글거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완전 사실적인 연출로 독립군들을 일본군의 무력과 숫자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용맹한 투사들로 그리던지, 아니면 봉오동 전투가 우리나라가 승리한 전투임을 이용해 '안시성'처럼 좀 더 통쾌하게 전개하면 어땠을까 싶지만, 이 영화는 이 두 색깔을 모두 섞어버리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봉오동 전투'는 나한테 아무 메시지도 전달 못 했다. 일제가 나빴다는 아주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이야기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캐릭터들과 이야기가 난잡하며, 일부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이야기의 사고방식도 너무 후졌고 부끄럽다. 심지어 전쟁물로서 전투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마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으니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