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루궁뎅이
3 months ago

이문열 : 필론의 돼지 Pilon's Pig
평균 3.6
2026년 01월 09일에 봄
권력이란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다. 사전적 정의에도 나와있듯, 권력은 타인을 짓밟는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권력에 힘을 실어주면 누군가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선택이 된다. 배운 사람이라 한들 폭력 없이 올바른 권력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애초에 무엇이 올바른 권력인지 가려낼 수 있기는 했던가. 고학력자 주인공과 무학력자 홍씨가 닮아보이는 이유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권력의 성질에 대한 자각이 있느냐 없느냐 정도다. 소설은 폭풍우 속 배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끝난다. 그 배의 선원들은 울거나 기도하거나 뗏목을 엮는다. 현자(賢者)인 필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잠자는 돼지와 같이 행동한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돼지 흉내를 내는 현자필론이 아니다. 우는 자도, 기도하는 자도, 뗏목을 만드는 자도 폭풍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