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6번 칸
평균 3.7
하이파이브 한 번쯤으로 괜찮을 것 같았는데. 두 손바닥이 떨어지려는 찰나에 악수로 바꾸어 상대의 손을 좀 더 오래 붙잡아버리는 마음, 같은 걸로 시작되는 관계가 이런 걸까. 끝이 보이는 지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별이 덜 통탄스러운 그런 사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장된 하이파이브가 때론 사랑이라 불리기도 한다. 핀란드의 인사말을 묻는 장면에서 여자는 답한다. 만났을 때 인사는 헤이(Hei), 헤어질 때 인사는 헤이헤이(Hei Hei)라고. 남자는 그거 참 바보 같다며 웃는다. 만났을 때의 인사말을 헤어질 때 한 번 더 반복하는 건, 당신이 너무 반가웠기 때문인 것 같다. 영영 못 보게 되더라도 얼마나 반가웠는지만큼은 한 번 더 말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만나는 순간부터 잘 가라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정말 잘 가라는 뜻이라서 두 번 반복하나 보다. 너, 잘 가야만 해. 잘 지내. 차창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주황빛과 여자의 미소, 남자의 서툰 그림과 글씨, 운전수가 선택한 발랄한 뽕짝, 굳은 눈송이들을 밟는 차의 온화한 흔들림. 그 모든 게 나의 이별들을 어루만졌다. 웃으면서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 멀어지면서 뒤돌아보지 못한 순간들. 이건 하나의 상실을 새로운 상실로 돌려막기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상실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메워지는 종류의 이상한 돌려막기다. 이별이 분명 하나 늘었는데. 왜 덜 막막해졌을까. 사랑하는 이가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혼자서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사랑이 끝난 걸 알지만 ‘우리’라는 두 글자를 배웅해주는 마음으로 낯선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비참한 통화를 끝내고서 6번 칸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꼴 보기 싫은 룸메이트보다도 혼자 감당해야 할 적막이 더 괴로울 것 같은 그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었더라면. 너를 알지 못했겠지. 떠났다고 생각지 못하고 짐을 왜 들고 다녔냐고 추궁하는 네가, 눈보라가 아름다우니 어서 찍으라고 닦달한 네가, 혼자 놀 바엔 친구를 만나러 가자고 한 네가. 나랑 암각화를 함께 보러 가 줘서. 별 볼일 없는 돌덩이를 꼭 봐야겠는 내 마음을 네가 왜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코가 빨개지도록 너와 눈 싸움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여전히 비참한 통화가 토막토막 떠다녔지만. 그마저 네가 다 알아준 걸 알아서. 나의 어딘가 아물었다.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에 너를 그리워할 마음을 살포시 덧댈 거라서 나는 좀 괜찮아졌다. 카메라를 잃었을 땐 엉엉 울었지만, 그로 인해 네가 그린 나의 얼굴을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 웬만하면 물건 잃어버린 걸로는 울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잃어도. 그 이후의 시간을 조금은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너를 만나서. 내가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