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각인된 이름을 손끝으로 만져보는 일
시와 편지로 다가서는 기념일
누구에게나 한 번 하루쯤, 있었을 법한 날들을 기념일로 호명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시와 편지로 다시 써 내려가는 기념일 앤솔러지 『케이크 자르기』가 출간되었다. 시간에 각인된 순간으로 다가서는 이번 책에는 11명의 시인이 시와 편지를 통해, 지나온 기념일에 묻혀 있던 오랜 기억과 순간을 꺼내와 지금의 우리에게 내밀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한 손에 감기는 작은 판형의 문고본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주고받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작지만 빼곡한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하며 독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11명의 시인(권누리, 조해주, 김은지, 유계영, 안태운, 김유림, 임승유, 정다연, 정재율, 배수연, 이은규)이 참여해 지나온 시간을 함께 돌아보았다. 각자 시와 편지로 호명하는 기념일의 모양도, 종류도, 담겨 있는 이야기도 모두 제각기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 담기는 의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이번 책은 케이크의 촛불을 불면 생기는 잠깐의 암전이나 꺼진 초의 연기와 같이 남몰래 자라나고 있던 어떤 어둠에 대해 다가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와 편지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거쳐 태어난 기념일들로부터 적혔다. 그때의 나에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앞으로의 우리에게…. 덮어쓸 수 없이 돌올한 날들을 불러와 시와 편지로 다시금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 기억을 거쳐 가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시인 안태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기억을 거쳐 어른이 된다”고. 이 기념일들에 기대어 우리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도 유의미할 것이다. 세상이 정해준 기념일이기도 하고, 스스로 정하게 된 기념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쁘고 단란한 일에만 기념일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어떤 욱신거리는 부분일지라도,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오늘을 살고 있다면, 그날을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아물어 가던 상처와 흉터의 자리까지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날을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기념일 앤솔러지 『케이크 자르기』는 시간에 각인된 이름을 만지고, 살아갈 날들 속에서 뒤돌아볼 수 있는 오랜 날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이 책으로 하여금 무수한 시간 속에서 희미하게 연결되어 읽는 이 모두가 케이크를 공평하게 자르는 또 하나의 기념일을 지나는 것이다.
부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열한 명 시인들의 시와 편지를, 독자들의 우편함에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