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가 아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님 외 1명 · 인문학
456p
구매 가능한 곳
content
별점 그래프
평균 3.9(33명)
0.5
4
5
평가하기
3.9
평균 별점
(33명)
코멘트
더보기

독일에서 가장 촉망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내놓은 도발적인 철학서이다.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정신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양한 비유와 독창적인 생각 실험, 위트를 버무려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 놓았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우리의 인간상에 대해서 함축하는 바를 대중에게 최대한 많이 알릴 의무가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 저자는 전문 용어를 자제하고 미드, SF 영화, 불상, 뱀, 고양이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을 동원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는 문제의식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가 유물론적 세계관(오직 물질적 대상들만 존재한다는 주장)의 허상을 무너뜨렸다면, 이 책은 인간의 정신, 다시 말해 생각하고 느끼며, 정치, 경제, 예술 활동 영위하는 정신적인 생물인 인간 그 자체를 다룬다.

<그부호> 웨스 앤더슨 감독

비주얼 마스터의 독보적 세계관

<페니키안 스킴> · AD

별점 그래프
평균 3.9(33명)
0.5
4
5

<그부호> 웨스 앤더슨 감독

비주얼 마스터의 독보적 세계관

<페니키안 스킴> · AD

저자/역자

코멘트

9

목차

프롤로그 물질 입자와 의식 있는 유기체 뇌의 10년 뇌 스캔 속의 정신적 자유? USB 스틱으로서의《나》 신경강박과 다윈염 ─ 「파고」의 경우 정신-뇌 이데올로기 자기해석의 지도 1장 정신 철학은 무엇을 다루는가? 우주 안의 정신? 헤겔의 정신 사회적 무대 위의 역사적 동물 왜 모든 사건은 아니더라도 일부 사건은 목적을 향해 일어나는가 2장 의식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의식 영화 속의 어지러운 입자들 불상과 뱀과 박쥐 신경 칸트주의의 물결 위에서 자기 경험을 벗어날 수는 없다? 믿음, 사랑, 희망은 모두 다 환상인가? 각각의 자아 속에 이타주의자가 들어 있다 데이비슨의 개와 데리다의 고양이 입맛의 두 측면과 논쟁이 가능한 문제 지능과 로봇 청소기 의식과 데이터 뒤범벅 메리가 모르는 것 수도원에서 발견한 우주 감각은 중국 영화에 달린 자막이 아니다 신의 조감 관점 3장 자기의식 정신사의 의식 확장 효과 풍차 비유에 나오는 모나드처럼 바이오가 테크노보다 항상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아우구스트는 어떻게 전능을 반박하려 했는가 순환하는 자기의식 4장 《나》는 대체 누구인가, 혹은 무엇일까? 환상의 실재성 사춘기 환원주의와 화장실 이론 《나》는 신이다 거의 잊힌《 나》 ― 철학의 거장 학문론의 세 기둥 인간 안에서 자연이 눈을 뜬다 〈아빠에게 맡겨〉: 프로이트와 「슈트롬베르크」 어떻게 충동은 엄연한 사실과 충돌하는가 오이디푸스와 우유 포장 5장 자유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는 바를 의지하지 않기를 의지할 수 있을까? 《나》는 슬롯머신이 아니다 왜 원인과 이유는 다른지, 그리고 이것이 토마토소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우호적인 목록과 형이상학적 비관론 인간 존엄은 건드릴 수 없다 신과, 혹은 자연과 동등할까? 첨언: 야만인은 없다 인간은 모래 속의 얼굴이 아니다 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모든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는 자유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인간의 본질을 캐묻는 <정신 철학>의 여정 『나는 뇌가 아니다』는 독일에서 가장 촉망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내놓은 도발적인 철학서이다.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정신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양한 비유와 독창적인 생각 실험, 위트를 버무려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 놓았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우리의 인간상에 대해서 함축하는 바를 대중에게 최대한 많이 알릴 의무가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 저자는 전문 용어를 자제하고 미드, SF 영화, 불상, 뱀, 고양이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을 동원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는 문제의식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가 유물론적 세계관(오직 물질적 대상들만 존재한다는 주장)의 허상을 무너뜨렸다면, 이 책은 인간의 정신, 다시 말해 생각하고 느끼며, 정치, 경제, 예술 활동 영위하는 정신적인 생물인 인간 그 자체를 다룬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정신 철학의 전통 속에서 다뤄져 온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기인식의 물음은 자연과학의 분과 학문인 신경과학에게 점차 자리를 넘겨주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언술이 직접적으로든(디크 스왑의 동명의 저서) 암시로든 우리 시대를 물들이고 있다.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신경중심주의(한마디로, 우리를 뇌 또는 중추신경계와 동일시하는 주장)에 맞서 인간의 본질과 자유를 규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브리엘은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 프로이트 등 정신 철학의 거장들이 다뤄 온 의식, 자기의식, 《나》, 사유 등의 핵심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각각의 개념들이 어떤 사상가들에 의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우리 어휘 안으로 진입했는지 따져 묻는다. 궁극적으로 가브리엘이 목표하는 바는 인간의 자유(자유 의지)를 옹호하는 데 있다. 인간은 무언가에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가브리엘은, 비단 뇌뿐 아니라 <신, 우주, 자연, 사회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는 통념에 맞서> 인간이 철두철미하게 자유로운 존재임을 논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유>로부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 곧 <인간 존엄>이 비롯한다고 확신한다. 신경중심주의 그럼 가브리엘이 논박하는 신경중심주의는 무엇일까? 그는 영국 의학자 레이먼드 탈리스가 주장한 신경강박Neuromanie과 다윈염(炎)Darwiniti을 통해 신경중심주의를 설명한다. 신경강박이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계속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다윈염은 종의 생존 투쟁에서의 적응적 장점들을 재구성하면 현 인류의 전형적인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신경중심주의는 한마디로 이 둘의 혼합체다. <뇌의 진화 역사를 고려하면서 뇌를 연구하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질까? 신경강박자는 인간의 뇌에서 특정한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다윈염에 걸린 사람은 오래전부터 진화해 온 짝짓기 행동의 일종의 설명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녹색의 수많은 색조들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중심주의자들에게 물으면 <자연선택 덕분에 인간의 색조 구분 능력이 진화했고, 인간은 타고난 사냥꾼>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드라마 「파고」의 주인공 사이코패스 말보가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신경중심주의로부터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로 악명 높은 사회 다윈주의까지 가는 길은 지척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범주를 동원해서 인간 행위를 설명하면, 인간의 자유를 거론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 문학, 건축, 음악 등, 우리가 흔히 정신적 자유의 산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동물계에 널리 퍼져 있는 놀이 충동의 조금 더 복잡한 버전으로 해석해 낼 수 있다. 가브리엘이 공격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정신적 자유의 산물들을 자연적/생물학적 사건들로 오해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우리가 인간을 오로지 번식과 생존 투쟁에 내몰린 동물로 인식하는 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려는 시도는 매번 망가진다. 나는 뇌가 아니다 물론 뇌가 없다면, 정신도 없다. 우리는 사유할 수도, 의식을 가질 수도 없다. 인간은 몸이라는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에서 우리가 우리 뇌와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가브리엘은 자전거를 비유로 든다. 두 다리를 보유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려면, 조종법을 익혀야 하고 내가 자전거가 놓인 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두 다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전거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오늘날 신경중심주의자들은 <나>는 입증될 수 없고(따라서 존재할 수 없고), 뇌가 산출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일 뿐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이는 철학자 퍼트넘(영화 「매트릭스」의 기본 발상을 제공한 인물)이 주장한 통 속의 뇌를 연상시킨다. 예컨대, 만약 <나>가 정말로 뇌이고, 누군가 에게 <물>이란 단어를 묻는다고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매트릭스 안에서 살고 있다면(즉, 나의 뇌는 지금 거실이 아니라 우주 정거장 어딘가에 있다면), 〈물〉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나는 진짜 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물과 접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직 전기 자극을 통해 물을 안다고 생각할 뿐이다. 공교롭게 이 끔찍한 시나리오는 신경중심주의자들의 주장과 복사판이다. 신경중심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진화, 유전자들, 신경 전달 물질들 등에 의해 조종되는 통 속의 뇌다. 한마디로 생존에 쓸모가 있기 때문에 의식도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쉽게 생각해 봐도, 우리가 물을 아는 걸 단지 뇌의 화학 작용으로 환원할 수 없다. 우리는 물을 직접 만지고, 보고, 마셔 봤기 때문에 물을 안다. 곧 진정한 접촉을 통해서 물을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가브리엘이 의식의 특징을 <지향적 의식>과 <현상적 의식> 두 측면으로 설명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물음과도 연결된다. 미래에 과학이 발달해서 포도주를 맛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어졌다고 해보자. 그 로봇은 인간보다 월등하게 포도주의 당도와 신도 같은 맛 평가를 오차 없이 정확히 세분화된 어휘로 보고할 수 있다. 곧, 포도주를 맛보면서(포도주라는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포도주의 속성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지향적 의식이다. 하지만 그 로봇이 제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로봇의 내면에는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그 맛에 대한 고유한 주관적 체험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 고유한 체험이 현상적 의식, 곧 퀄리아다. 이런 체험은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 인간은 내면에 고유한 감각을 품으며, 대상에 대해 비합리인 감정 역시 가질 수 있다. 무언가를 착각하고, 욕망하고, 환상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

이 작품이 담긴 컬렉션

10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5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