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광인’ 혹은 ‘모던 보이’라고 불리는 이상은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실험적 구성과 파격적 문체를 통해 식민지 근대 한국과 동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내면 심리를 형상화한 뛰어난 소설가, 즉 산문가이기도 하다. 이상은 소설을 가리켜 “무서운 기록”(「십이 월 십이 일」)이라 했고, 덧붙여 “최후의 칼”을 들고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의 싸움에서 얻어 낸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이상에게 소설은 ‘운명과도 같은 글쓰기’였고, 산문은 ‘처절한 자기 고백’이었다. 이상은 사회 존재 기반, 삶의 배경 없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뿌리 뽑힌 도시인과 소외된 지식인의 억압된 충동 그리고 감춰진 욕구를 폭로하며 그들의 무의식을 처절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어떤 특정 이념에 기대지 않은 채 단지 자신만의 특이한 시각과 생각에 충실한 ‘글쓰기’는 이상의 모더니스트적 면모와 더불어 시대의 예술 철학에 도전한 천재적 재능을 거침없이 보여 준다. 실험성과 전위성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채로운 비평 담론과 논쟁을 야기하는 이상의 산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현실’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과 ‘산문’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이상의 소설에는 어떤 사건, 행동 혹은 하나의 줄거리조차 없으며, 소설 속 인물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성격(캐릭터)을 구축하기보다는 의식과 사고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하나의 잘 짜인 서사 구조, 분명한 개연성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상의 소설은 혼란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무능력한 남편과 살림을 돌보기 위해 낯선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날개」,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타락해 가는 인간 군상을 ‘띄어쓰기’ 없는 글쓰기로 묘파해 낸 「지주회시」, 불안하고 성마른, 또 종잡을 수 없는 남녀의 기묘한 관계를 담아낸 「봉별기」와 「실화」, 문학적 동지였던 김유정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김유정」과 우울한 도시인이 들여다본 시골의 정취를 섬세한 언어로 포착한 「산촌여정」, 「권태」에 이르기까지, 이상의 소설과 산문은 독자들의 감수성과 이해력을 쥐락펴락하며 뒤흔들어 놓는다. 이렇듯 이상은 소설뿐 아니라 산문에서도 어떤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두드러지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야기는 해체되고, 줄거리도 뚜렷하지 않다. 소설가이자 산문가로서의 이상은 특정 서술법이나 관점에 기대지 않고 기존 권위도 추종하지 않으며, 가치와 이념에도 반대한다. 그는 단지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 사물에 대한 지각에 충실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모더니스트 이상의 면모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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