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아이 유치원’ 탄생하다
“우리는 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교육의 유토피아는 과연 어떤 곳일까 늘 생각했다.”
1978년 발표한 소설 《태양의 아이》가 200만 부 넘게 팔리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그 인세로 평소 꿈꾸던 유치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운다. 평생 뜻을 같이해온 하이타니 겐지로의 친구들, 즉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고다니 선생님의 실제 모델이었던 화가 츠보야 레이코, 동화작가이자 교사인 가시마 가즈오와 기시모토 신이치, 유치원 교사인 도조 요시코가 설립동인으로 참여한다. 설립허가를 얻고, 자금을 대고, 고베 시의 희망 부지에 당첨되고, 사회복지법인을 세우고, 교사를 모집하고, 건물을 짓고, 그리고 마침내 1983년, ‘태양의아이 유치원’이 문을 연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하이타니 겐지로와 그의 친구들이 평생을 꿈꾸어온, ‘교육의 유토피아의 실현’이라는 대양을 향해 희망찬 돛을 올린다.
이 책은 유치원이 힘찬 출발을 한 2년 후에, 하이타니 겐지로가 그동안 모아왔던 여러 자료를 토대로 유치원의 첫 2년의 발자취를 기록한 글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이제 설립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원아들은 성인이 되어 ‘태양의아이 유치원’의 교사가 되었는가 하면, 학부모가 되어 자녀들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드나들기도 한다. 한 세대가 무심히 흘러갔고 하이타니 겐지로도 이 세상을 떠났지만,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지금도 고베 시 기타스즈란다이에서 처음의 설립정신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곳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감동에서 시작해서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하이타니 겐지로와 그의 친구들의 교육철학을 그대로 구현하는 장(場)이다.《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감동적으로 묘사된 ‘인간교육’으로서의 어린이 ? 장애아 교육, 《내가 만난 아이들》과《선생님, 내 부하 해》에서 하이타니 겐지로의 눈을 뜨게 한 아이들의 낙천성과 순수함을 키워나가는 교육이, 유치원 선생님들의 각고의 노력과 자기반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어른들의 선입견대로 벽을 핑크색으로 칠하고 스누피 따위를 그려놓거나 플라스틱제 놀이기구를 ‘들이밀지’ 않는다. 자연에 가까운 재료인 나무토막이나 모래더미를 쌓아놓고 아이들이 마음껏 가지고 놀면서 창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도 철저히 ‘생명’의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먹거리는 그 하나하나가 생명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의 농장에서 직접 야채를 길러봄으로써 생명을 배우고, 음식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여러 사람의 지혜와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배운다. 유치원 급식은 선생님들이 영양학을 공부하여 직접 식단을 짜고 직접 조리한다. 가공식품, 식품첨가물, 화학조미료를 철저히 피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기어다니면서 아이들과 키를 맞추어 마주보고, 말과 그림, 음악 등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의 표현을 소중히 여기고 늘 어린이에게서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이 반응해주지 않고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좌절감과 무력감에 시달릴지라도, 끈질기게 기다리며 아이를 믿는 자세가 중요하다. ‘기다림’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아이에게 명령하고 억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이타니 겐지로와 유치원 선생님들이 이처럼 ‘아이들에게서 배우며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교육철학을 생활 곳곳에서 실현하려고 애쓴 노력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장애아/비장애아’의 구분이 없는 곳
“장애아 교육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행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에서 ‘생명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아마 ‘장애아’에 대한 접근 방식일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반 아이들은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정신지체아 미나코를 돌보기로 한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미나코도 물론 행복하지만, 조그만 봉사활동을 할 뿐이었던 반 아이들이 오히려 쑥쑥 성장한다. 이 장면은 ‘장애아 교육’이란 진정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감동적인 명장면으로, ‘태양의아이 유치원’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월령 38개월이지만 거듭된 뇌종양 수술로 발달지수가 생후 6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기요코는 장애아 세 명에 선생 한 명을 배정해야 하는 행정규칙상 ‘태양의아이 유치원’에 정식 입학할 수 없어 그저 ‘놀러’ 올 뿐이었지만, 마음껏 뛰노는 활기찬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끊임없이 자기표현을 요구받자 점차 인지력과 표현력이 늘어간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사물을 보려 애쓰며, 표정도 풍부해진다.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도 뛰려는 듯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선생님들은 기요코가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CT촬영 결과, 수술로 절개하여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던 기요코의 뇌조직이 크게 자라 뇌의 빈 공간이 메워지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수많은 생명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자각한다’고 썼다. 아이들은 옆 친구가 장애아라고 해서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함께 노는 가운데, 장애아는 발달이 늘고 다른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이 꿈꾸는 곳이다.
“장애아 교육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행이다. 굳이 있어야 한다면 장애아 교육이야말로 모든 교육의 원점이며 인간교육 그 자체라는 의미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123~124p)
선생님들의 고뇌와 열정
“어린이와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어린이와 견주어 자기 자신이 너무 미숙하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담고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여러 선생님들의 일기, 편지글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하이타니 겐지로 혼자 쓴 책이 아니다. 물론, 유치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선생님들 교육에 힘썼던 하이타니 겐지로는 선생님들에게 유치원 생활을 꼬박꼬박 기록으로 남기라고 늘 강조했고, 그 기록을 모아서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가장 귀감이 되는 부분은 아마도 구체적인 교육실천 방법이라기보다는, 그 실천을 위해 선생님들이 자신을 혹독하게 반성하며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는 열정에 찬 모습일 것이다.
‘태양의아이 유치원’ 선생님들의 최대 과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을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실현해나갈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피교육자보다는 교육자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므로, 선생님들의 기록에는 자신의 나태함과 관습적인 행동을 꾸짖고 어떻게 하면 일과 생활에서 동시에 창조적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득하다. 선생님들은 말 연구 모임, 음악 연구 모임, 조형 연구 모임 등을 만들어 아이들의 표현세계를 공부하며, 재미있는 그림 수업, 음악 수업 등을 시험해보고, 그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좌절하기도 하고 고무되기도 한다.
또한 하이타니 겐지로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잠시 아이들과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학부모들을 설득하여 학교 선생님들처럼 유치원 선생님에게도 휴가를 주는 제도를 실시한다. 그리고 역시 각자 3주일의 여름휴가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적어내게 해서 선생님들의 성장을 관찰, 기록하고 있다.
‘태양의아이 유치원’은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 선생님들도 같이 성장하는 유치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