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의 각본들

허윤 · 역사/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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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원본 없는 판타지》 등 한국 현대문학/문화를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탐구한 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 허윤이 4년여 만에 새로운 단독저작을 펴냈다. 한국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텍스트를 젠더적 관점에서 연구해온 그는 이번 책에서 2012년부터 10년간 연구해온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화두 아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문학(소설)과 영화, 연극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다시금 불러낸다. 주로 ‘남성 지식인들’의 손에서 탄생해 ‘남성 독자들’에 의해 소비된 극중 ‘남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독재체제가 강조한 영웅이나 용사, 전사로서의 남성성을 충실히 체현하고 있다. ‘한국 남자’라는 하나의 보편 범주를 만들어낸 것은 가부장의 강력한 힘을 근거로 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다. 이 책이 초점을 두는 1940년대 후반~1950년대 내내 한국(남한)은 외부의 강대국에게 정치적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주체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 국가를 지킬 ‘일등 시민’의 존재를 요구했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전쟁이었다.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남성을 ‘일등 시민’으로 명명하고 전사자들을 기념한다. 하지만 민족국가와 지배체제에 충실한 이 남성성 각본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위계화에 따를수록 일등 시민은 죽거나 다치는 모순에 빠진다. 이 책은 한국문학/문화사를 다시 써내려가며 남성을 ‘전사-일등 시민-가부장(아버지)’으로 소환하는 그 보편의 각본이 누구를 배제하며 어떤 지점에서 실패하는지 탐구한다. ‘이미’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서사들이 ‘여전히’ 충분히 읽히고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읽는 주체와 관점을 달리하여 새로운 논점들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민족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삭제된 비-남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편견과 혐오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남성성 각본들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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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책머리에 | 길을 잃은 아들들의 시대: 한국 남성성의 각본 다시 쓰기 • 7 1장 기로에 선 아들들: 불안과 공허의 식민지를 살아가는 법 • 21 2장 반공전에 나선 용사들: 남한 우익의 계보 • 45 3장 형제들의 공동체: 남성동성사회와 좌우익 청년단체 • 71 4장 가족 재건 프로젝트: 한국전쟁이 만든 전선의 젠더 • 97 5장 무대 위의 남성성: 남장여자가 만든 세계 • 131 6장 전후 문학의 ‘퀴어’한 육체들: 해체되는 남성성 신화 • 165 7장 냉전체제 속 여성혐오: 너무 많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 193 8장 성별이분법의 틈새들: 병역법과 젠더의 위계 • 235 9장 ‘남자 없는 사회’의 남성들: 모험을 허락하지 않는 모험 서사 • 257 10장 슈미즈를 입은 남자: 여장남자 코미디 영화의 정치적 불/가능성 • 291 11장 상경과 귀향의 젠더정치학: 남성의 얼굴을 한 민중 • 325 발표 지면 • 363 연표 • 364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아버지를 처단하지 못한 아들들의 선택: 나르시시즘으로서의 퀴어 근대문학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가족 로망스에서 출발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보여준 것도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기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들의 서사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으로 바로 서는 것, 이것이 곧 근대성의 신화이자 근대문학의 기원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던 원시시대가 아들들의 조직적 아버지 살해를 통해 해체되는 데 주목한다. 시원적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은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탄생시킨다. 아버지가 독점하던 정치력을 아들들이 동등하게 분배하는 이 과정이 바로 ‘형제 동맹’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서로 간의 평등한 관계를 위해 여성을 교환하고, 근친상간을 금기로 확립한다. 그러나 조선의 청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기회를 빼앗겼다. 제국 일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버지를 제거하기는커녕 아버지와 함께 거세된다. 국가와 민족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광수의 초기 소설인 「사랑인가」(1909)와 「윤광호」(1918)는 제국 일본이라는 더 강력한 가부장이 외부로부터 등장한 상황에서 전근대적 아버지(기존 체제)를 해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남성 청년의 갈등과 고통을 일종의 ‘퀴어함’으로 풀어낸다. 이 퀴어함은 사실상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자원을 획득했던 남성동성사회의 질서가 중지되었을 때 가시화되는 것은 성애적 측면(동성애)이다. 이광수 소설의 주인공 남성들은 주로 자신의 동급생 친구를 사랑한다. 말하자면 이 애정은 자신의 자아 이상을 사랑 대상으로 택하는 경향에 가깝다. 이들은 상대를 자신의 전부로 여기고, 자신의 목숨이 상대에게 달려 있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현실을 대면하려 하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직접 고백하는 대신 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는 식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는 순간, 이들은 자살을 택한다. 폭력으로 똘똘 뭉친 용사들: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의 괴물 어렵사리 해방을 맞은 남한의 남성 청년들은 제국보다 더 강력한 존재와 조우한다. 제국 일본의 수도 도쿄에 가해진 공중폭격으로 끝을 맺은 태평양전쟁은 식민지 조선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제국 일본이 강조했던 건강한 남성성은 더 강자인 미국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 질서는 구 일본제국의 유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과 조선을 재편하고자 했고, 아시아 전역에 경찰예비대를 신설했다. 그 영향 아래 있던 이승만의 제1공화국 역시 “공산주의보다는 파시즘이 낫다”는 신념을 내건다. 이 신념에 따라 좌파를 불법화하고 좌익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군경을 중심으로 한 안보기구가 확대되고, 우익 청년단체가 조직되어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다. 이렇듯 해방기 남한은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상태였으며, 반공의식으로 뭉친 남성들로 구성된 (우익) 청년단체는 각종 폭력과 테러를 행사하며 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실천했다. 서북청년단은 가장 대표적인 청년 우익단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었던 서북은 해방 이후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당 진영의 대립이 심화된다. 공산당 청년단체의 습격은 신의주 학생 의거 사건으로 이어지고, 서북의 남성 청년들은 점차 자신들이 ‘용사’가 되어 서북과 형제들을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하게 된다. 갈고리와 죽창으로 설명되는 서북청년단의 폭력은 국기와 애국, 용맹이라는 남성적 가치로 추앙받는다. 서북청년단의 폭력적 남성성은 무엇보다 제주도의 민간인 학살(제주 4·3사건)에서 가장 끔찍한 형태로 표출된다. 그러나 서북청년단의 그 맹목적인 신념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다. 임철우의 소설 「연대기, 괴물」(2015)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 ‘송진태’는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우익의 이데올로기가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재건되고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어머니가 서북청년단원에게 강간당해 태어난 그는 사람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자신의 생부가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TV 뉴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 그는 그 ‘괴물’을 죽이고자 마음먹지만, ‘괴물의 평범성’을 깨닫고는 스스로 자살을 택한다. 서북청년단의 세계관은 ‘국기’의 이름으로 한국 현대사의 장면마다 등장한다. 군사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셌던 1986~1987년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청년들을 해방기의 청년단과 비교하여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청년운동반세기」 연재물).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자신들이 배운 호전적 남성성을 실천하려고 하는 세력들은 체제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마다 등장해 ‘애국’의 노래를 반복한다. 「연대기, 괴물」이 그린 것처럼, 2014년 서북청년단은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의기양양하게 재등장했다. 이들은 재건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무력 행사를 이어갔고,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리본을 철거하려 했다. 전선의 젠더: 가족 재건 프로젝트 전쟁터에는 여러 종류의 분할선이 존재한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물리적, 심리적 분할선도 있지만, 국가 내부에서 국민의 범주를 가르는 이데올로기도 존재한다. 승리와 국가 회복 및 재건이라는 슬로건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 일제 말 제국 일본은 국가/국민을 전선과 후방으로 나누어 조직하고, 서로가 각각의 영역에서 전쟁을 위해 힘쓸 것을 강조했다. 이 각각의 영역이란 곧 전쟁의 현장인 전선을 남성이, 그 전선을 보조하는 후방을 여성이 담당하는 이분화된 구도를 뜻한다. 즉 여성들은 후방에서 남성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물자 절약을 강조하는 등 선전, 선동을 담당해야 했다. 문단은 이 성별화된 구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남성 작가들이 전쟁터를 직접 방문할 때 여성 작가들은 후방에서 총후부인부대를 위해 연설하고 학병 지원을 강조하는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1950)이 발발했을 때는 여성의 역할이 후방을 책임지는 ‘가장’ 혹은 전쟁터에 참여하는 ‘간호사’ 등으로 좀 더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성이 (참전하는) 남성을 보조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이른바 ‘후방론’은 한결같이 반복된다. 1952년 육군종군작가단이 만든 기관지 『전선문학』에서 그 젠더이분적인 구도가 명징히 드러난다. 『전선문학』은 창간사에서부터 전쟁 시국에서의 문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전쟁 프로파간다를 자임한다. 이때 제기된 작가들의 발화는 제국 일본이 강조했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남성 문인들이 전쟁을 독려하는 글을 작성할 때, 여성 문인들은 수필과 논설 등을 통해 후방에서 여성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장덕조가 강조하는 ‘아들을 기꺼이 국가에 바칠 수 있는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는 총력전 체제의 모성 담론과 매우 유사하다. 그는 전사한 아들의 영결식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굳세게 서 있는 시골 어머니의 모습 등을 묘사하며 전시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세에 대해 강조한다. 「선물」과 같은 소설에서도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을 따라 종군 간호사가 될 것을 결심하는 두 여성을 그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를 투사한다. 『전선문학』이 성별을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면,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창간된 『희망』은 그 위계와 더불어 한국전쟁이 어떤 식으로 남성성의 질서를 소환하고 구축했는지 엿볼 수 있는 매체다. 『희망』의 논조는 전반적으로 ‘남한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 창간호 권두에 실린 이승만과 맥아더, 트루만의 웃는 얼굴은 『희망』이 직조하는 남성성이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헬싱키 올림픽 특집을 꾸려 소련과의 알력을 가시화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희망』은 승부에서 ‘야비한 짓’을 하는 소련 복싱팀에 대한 분노를 부각하며 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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