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공산주의자들이 겪었던 걸 지금 내가 겪고 있구나!’
그다음에 든 생각은 책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100만 명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내면의 불빛
그들 안에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안에도 있다
“나는 내가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했다.” 에세이, 칼럼, 비평, 회고록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비비언 고닉의 초기작 중 한 권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가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비비언 고닉은 타협 없이 밀어붙인 신랄한 자기서사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관점을 구축하는 문제에 착목해 써내려간 일인칭 스타일의 비평으로 한국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기록이자 저자 자신의 또 다른 자기서사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새로운 저널리즘, 그리고 르포문학의 탄생을 알린 역작이다. 이 책은 비비언 고닉이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며 전설적인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1977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20년 새로운 서문과 함께 복간되었다. 유대 이민자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라는 자신의 위치성을 평생 예리하게 인식해온 고닉에게 공산주의자들을 둘러싼 낙인과 대상화는 단단히 얹혀 있는 경험이었다.
이 체증을 책으로 풀어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과거 공산주의자로 존재했던 이들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그리하여 고닉은 “피와 살을 가진 살아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처참하고 비루한 삶의 조건 속에서 가장 경이로운 열정을 피워낸 존재들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는다. 그들이 품었던 이 비전을 이해할 때, 공산주의가 남긴 실패와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핵심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굳건한 믿음이다.
‘로맨스’란 이런 태도를 반영하는 표현 양식으로, 고닉은 인터뷰이들의 구술사와 동시에 자기서사를 엮어내며 로맨스적 관점의 풍부함을 보여준다. 90여 년 전 뉴욕 브롱크스의 좌파 노동계급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틈새에서 쭉 성장하고 살아온 저자에게 공산주의는 페미니즘만큼이나 중요한 뿌리이자 자원이다. 그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일종의 낙인으로 전락한, 즉 더 이상 경청할 가치가 없는 낡고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로 여겨지게 된 시대 상황 속에서 오히려 책을 쓸 동력을 얻었다.
궁지에 다다른 페미니즘 운동의 한복판에서 불현듯 공산주의자의 형상을 마주한 그는 책을 쓸 결심을 굳히고, 난폭한 반공주의 문헌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발굴해나가기 시작했다. 요컨대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체제와 이념의 이름으로 가려졌던 ‘공산주의자’ 개개인에 대한 책이며, 더 나아가 ‘조직’의 토대와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러 급진적 사회운동과도 맞닿아 있는 기록이다. 이들의 살아 있는 경험에 여전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맙소사, 공산주의자들이 겪었던 걸 지금 내가 겪고 있구나’
: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다시 만난 공산주의
익히 알려져 있듯, 급진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저자의 삶과 이력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작가로서 본격적인 이력을 쌓기 전인 1969~1977년 그는 《빌리지보이스》 기자로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고 기록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기를 뒤덮은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은 “깨달음의 충격”을 선사하며 그의 온 몸을, 그가 살아온 세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여성운동 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세상과 존재의 감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찌우는 경험”이었던 페미니즘 의식은 페미니즘 도그마에 잠식되고 만다. 순식간에 ‘옳은’ 태도와 ‘옳지 않은’ 태도가 단정지어지고 주요 페미니즘 조직에서 분파들이 난립하게 되자, ‘친여성’ 노선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모조리 적으로 내몰린다.
보스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비난해야 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문화 일반”이라는 발언으로 “먹물 수정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날, 유년 시절의 낯익은 풍경과 뒤섞여 있던 미국공산당원들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그를 내리친다. 여성운동 내부의 격렬한 정치적 폭풍은 그의 내면에 구좌파, 즉 미국공산당원들의 그림자를 드리워내기 충분했다.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그 기억은 “도그마가 된 운동”의 위험과 공포를 생생히 각인시키며 그를 미국 공산주의사에 대한 한층 더 깊고 뭉클한 통찰로 이끌었다. “이데올로기가 도그마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에 나는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그 순간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연민이 다시 깨어났고, 나는 매일같이 도그마에 짓눌리고 압도당했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에게 새삼 존경심을 느꼈다.”
로맨스로서의 공산주의: 사회정의라는 이상에 열정을 꽃피운 “우리”들
비비언 고닉이 진보적 사회주의자이자 공산당원이었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잘 주목되거나 거론되지 않는 궤적이다. 그는 이민자와 빈민의 터전인 뉴욕 브롱크스 지구에서 스무 살 무렵까지 살았고, 그 덕택에 자신이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먼저 자각했다. 그에게 사회주의와 계급의식은 의식 이전에 이미 “살과 뼈를 통해 흡수된 모유”였고, 유년 시절 그와 가족의 “친구”이자 “우리”는 바로 그 의식을 공유하는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각종 집회와 메이데이 행진에 참석한 이들, 최신 사건 혹은 변호 기금 때문에 모금 활동을 벌이던 이들, 《데일리워커》를 끼고 그의 집에 드나들거나 그의 집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우렁찬 목소리로 “사안”을 논하던 모든 이들이 한 덩어리였다. 그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밀고 당기고 끌며 단 하나의 질문에 맞는 모양으로 빚어냈다. ‘그것이 노동자에게 유익한가?’
시간이 흘러 브롱크스 밖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가득 메웠던 그 찬란했던 세계가 중심이 아닌 한낱 변방이었음을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영문학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간 서부의 버클리에서 공산당원들은 심지어 “바다 건너에서 온 이름도 얼굴도 없는 악마”일 뿐이었다. 서부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보인 이런 무지함과 적개심은 그를 더욱 강경한 빨갱이로 만들곤 했다. “나는 방어적이면서 동시에 공격적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할 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모태빨갱이라고 선언할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속에 체증처럼 얹혀 있던 그 적대적인 경험은 페미니즘 운동을 계기로 언어를 찾기 시작한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도그마로 굳어버리는 뼈아픈 광경들을 목도하고 난 뒤 비로소 공산주의(자)의 살아 있는 의미를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구술사를 쓰기로 하고, 유년 시절 자신과 줄곧 일상을 함께했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기억을 단초로 그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책 제목이 시사하듯, 한때 공산주의자로 존재했던 이들의 경험을 하나의 ‘로맨스’로 그렸다.
고닉은 그 자신이 채택한 ‘로맨스’라는 서사 코드에 대해 깊은 애정과 확신을 고백하는 한편, 그 이면의 “낭패감”까지 주저 없이 드러낸다. 심지어 고닉은 자신의 로맨스적 서술이 좌우의 유력 지식인들, 특히 시어도어 드레이퍼나 힐턴 크레이머 같이 “난폭한 반공주의”로 돌아선 이들의 사나운 공격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고닉에게 로맨스는 “공산주의자로 존재하던 경험”을 그리는 가장 적절한 방식인데, 실제로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생 동안 심각한 급진주의에 투신하는 삶을 숙명이라고 느낀” 바로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예술가, 과학자, 사상가와 다름 없이 언제나 ‘일’을 위해 사는 문화적 영웅들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개인이었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급진 사상은 이들을 그냥 살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