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작업실과 집, 어디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
스스로 즐거워 쓴 글을 남들도 재미있어할까?
머릿속 자꾸만 떠오르는 물음표에
문득 아득해지는 어느 소설가의 하루
“자꾸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걸 그만두고
변화를 꾀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을 개조해야 한다. 전면 개조.
그런데 벌려 놓은 일은 수습해야겠고 어쩌지…….”
『인간만세』 『산책하기 좋은 날』 등의 소설을 통해 과감함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작품 세계를 구사해 온 소설가 오한기의 첫 번째 에세이 『소설 쓰기 싫은 날』이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와 동명의 주인공인 ‘오한기’를 내세웠던 소설 『산책하기 좋은 날』이 “실화에 가까운 소설”이었다면, 에세이인만큼 역시 소설가 오한기가 화자로 나서는 『소설 쓰기 싫은 날』은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다. 소설 장르에는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 냈다는 말이 상찬으로 따라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는 말이 일상의 비정함에 대한 말로 흔히 사용되곤 하는 시대. 픽션과 현실을 넘나들며 일상을 살아가는 소설가 오한기는 그 둘의 경계를 과감히 뭉개 버린다. “모든 게 사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것은 없다. 현실을 기반으로 작성됐지만 현실을 현실이라고 믿는 건……”이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진짜 현실과 가짜 현실을 구분하는 눈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태도일 것이다.
■ 출발점과 도착지가 같은 곳이라니!
아침에 눈을 떠 한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 꼬박 하루 동안 마음은 과연 걷는 방향을 몇 번이나 바꿀까? 그 변덕은 셀 수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은 우습고 황당한 상황이 벌어져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소설가 오한기가 노트북 앞에 막 앉았을 때 하는 생각은 이 책의 제목과도 같다. 막막하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하기 싫다, 소설가를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쓰고 있던 글의 활로가 마땅치 않을 때면 오한기는 걷기 시작한다. 그의 산책은 대개 작업실에서 출발해 홀로 식당에 들어가 동태찌개를 먹고, 걷는 와중 걸려 온 성가신 전화 몇 통에 응대한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산책은 언제나 뜻밖의 장면들을 선사한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를 그만둘 궁리를 하던 그는 흥미로운 장면 앞에 우뚝 서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를 한다. 다음 소설 제목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실을 떠나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처럼, 그의 머릿속 여정 역시 소설 쓰기를 떠나는 일에서 출발해 결국 소설 쓰기로 돌아온다. 이 무한한 회귀를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지, 소설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득해질 테지만 우리는 그 반복 속에서 한 소설가에게서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는 지난하고도 생생한 과정을 알게 된다.
■ 너무나도 권태롭고, 동시에 너무나도 바쁘다!
세상에서 가장 권태로운 자는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바쁜 자다. 소설가 오한기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고 이렇게 묘사한다. “20년 동안 동일한 머리 스타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부루퉁한 표정. 구부정한 어깨.” 그 역시 현대인이라면 으레 그렇듯 권태에 시달리는 중이다. 모두가 이런 매일을 감당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경이로울 만큼 삶은 복잡해진 지 오래다. 복잡다단한 삶은 한 개인의 계획과 꿈을 무시한 채 흘러가기 마련이고 바로 여기서 권태로움이 피어난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체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닥쳐오는 고난이 쌓이고 쌓여 절대 깨지지 않는 원석 같은 권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한 개인의 권태를 살펴줄 만큼 자비롭지 않기에,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몫을 어떻게든 다해야 한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오한기의 하루를 따라 읽다 보면 그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과제들이 유독 생생하게 다가온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생기와 에너지가 작가와 우리가 처한 무력감과 대비되는 탓일 테다. 주거 문제, 가족의 건강, 너무나도 소중한 ‘주동’과의 시간, 직장 생활 등 도처에 깔린 일상적인 문제들은 이내 픽션 속 갈등 상황처럼 극적이고 절박해진다. 드라마틱한 소설 같은 일상의 면면들을 지나치다 보면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힘이 우리에게도 슬몃 피어나는 것만 같다. 하루치 권태로부터 겨우 벗어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힘 말이다.
●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