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 군주권’에 주목하여
돌궐의 고대 유목제국적 성격을 새롭게 규명한
국내 최초의 돌궐 통사
이 책에서는 신화시대부터 200여 년에 걸쳐 발전과 쇠퇴를 거듭한 돌궐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중국사나 일본사와는 다른 역동성을 지닌 초원 유목민의 역사로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동쪽 끝의 만주에서 서쪽으로 몽골, 중가리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러시아까지 거대한 띠를 두르듯 드넓게 분포한 초원을 무대로 펼쳐진 유목민의 역사를 다각도로 조명해 북아시아가 어떻게 하나의 역사 단위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초원과 오아시스의 결합을 기반으로 등장한 많은 유목 국가들은 세계사를 뒤흔들 만큼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전근대 시기 정주 농경 세계와 함께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수레의 두 바퀴라고 평가되었다. 돌궐은 유목 사회를 기초로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공납貢納을 징수하거나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획득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고대 유목 국가’의 하나였다. 이는 ‘정복 왕조’로 불리는 거란, 여진, 몽골, 만주 등과는 다른 양상을 띤 돌궐 나름의 특징이다. 그런데 돌궐은 흉노처럼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그 범위가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교역권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착안해 돌궐을 ‘고대 유목제국’이라고 규정하고 그 실체를 설명하려는 실증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역시 돌궐사의 전개 과정에 맞춘 계기적 설명보다는 일반적인 특성을 추출하는 정도의 접근에 그쳐 돌궐만의 특성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기록 내용이 풍부해 체계적인 검토가 가능하고, 복잡한 돌궐사의 전개를 일관되게 정리해 그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인 ‘유목 군주권’에 주목했다. 고대 유목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유목 군주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정주 농경 국가의 군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념적.경제적 토대, 관료제나 법률과 같은 고도의 질서 체계, 역사 기술을 통한 정통성 계승 등 모든 면에서 취약했던 유목 국가의 군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급자족이 어려운 유목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정주 지역 출신의 관료 집단과 결합한 ‘권위주의적 상인 관료 체제’, 정주 지역에서 획득한 물자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확보한 안정된 유통망을 통해 다른 문명권으로 유통시키는 ‘중상주의적 교역 국가’를 지향해야 했다. 이런 지향을 가진 유목 군주에게는 무엇보다 정주 문명권, 특히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했고 실제로 돌궐의 성립과 발전, 붕괴에는 이 관계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유목 군주권’, 구체적으로 돌궐의 지배 집단인 ‘아사나’의 권력 추이에 초점을 맞춰 돌궐의 고대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한국 연구자의 눈으로
한문과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를 비교 연구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한 돌궐의 역사
6세기 중엽부터 200년 넘게 전개된 돌궐사는 주변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이전 시대에 비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중국에 남아 있는 한문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 돌궐사 연구는 『주서』, 『수서』, 『북사』, 『통전』, 『구당서』, 『신당서』 등의 한문 자료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더해 ‘오르콘 룬 문자’라고 불렸던 고대 투르크 문자로 쓰인 비문 자료들이 한동안 학계에서 경쟁적으로 해독되면서 정주 지역의 관점에서 쓰인 한문 자료의 한계를 일부 극복할 수 있었다. 비문 자료는 단순히 한문 자료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자료의 비교 연구를 가능하게 하여 돌궐사 자체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돌궐이 이전의 유목민들과 달리 독자적인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미 6세기 후반에 그들에게 종사했던 소그드인의 문자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680년대에 국가를 재건한 다음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문자 생활을 했던 덕분이다. 이 같은 고대 투르크 문자의 제작과 사용은 유목 사회의 문명화와 민족적 자각이 시작된 전환점이라고 평가될 만큼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돌궐이 유목 세계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이후 위구르, 키르기스 등에서도 이 문자를 10세기까지 계속 사용했고, 그 뒤에 등장한 거란, 서하, 여진, 몽골, 만주 등도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19세기 말 이래 학자들이 벌인 비문 해독 경쟁과 계속된 연구를 통해 고대 투르크 유목사, 즉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몽골 초원에 국가를 건설한 돌궐과 위구르, 그리고 10세기경까지의 키르기스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한문 자료와 비문 자료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료를 비교 연구하여 그동안 사료의 제한으로 주제의 편향이 심하고, 연구자마다 자료를 자의적으로 선택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였던 돌궐사를 ‘중립적’으로 정리해보려 했다. 여기에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더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돌궐의 위상을 확인하고, 이것이 이후 ‘투르크’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함으로써 유목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한 것이 이 책의 빛나는 학술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건국 신화 기록을 세밀하게 비교 분석해
새롭게 복원한 돌궐 건국 전사前史
돌궐의 역사는 몽골 초원을 차지하고 있던 유연을 격파하고 유목 국가인 ‘돌궐’을 세우기 이전에 군주인 카간을 배출한 지배 또는 핵심 집단 ‘아사나’가 발생해 세력화한 과정인 건국 전사前史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아사나의 원류와 원주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개별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재구성하여 오히려 혼란만 초래했다. 이는 건국 전사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기록 자체가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중요한 기록인 건국 신화마저 허구적인 이야기처럼 기록되어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화 기록은 원래 자신의 조상을 미화해 창업자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글이라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고, 문자가 없던 시대에 구술로 전승되다가 후대에 채록되면서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배태한 돌궐의 신화 내용은 중국과의 관계가 시작된 서위西魏, 북주北周에서 수대隋代를 거쳐 당 초에 북조北朝의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사서에 채록되었다.
이 책에서는 건국 이전의 역사를 구체화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추출하기 위해 채록자의 돌궐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편찬의 ‘시차’가 기록의 성립과 그 내용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주목해 현존 기록들을 재정리했다. 시대 상황과 기록자의 신화 내용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바로 현존 기록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존하는 다섯 사서인 『주서』, 『수서』, 『북사』, 『통전』, 『유양잡조』의 기록을 중심으로 기록 순서에 따라 신화 내용을 소개하고 비교 분석했다. 특히 ‘이리’ 신화소를 매개로 한 건국 신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유목 국가들 상호 간에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역사의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돌궐사의 위상과 의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드러냈다.
주요 내용
돌궐 건국 전사 -아사나 건국 신화의 역사화
552년 돌궐 건국 이전 시기를 살펴 건국 전사前史를 복원한다. 기본 사료인 건국 신화 기록과 기존의 연구 성과를 재검토해서 추출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초로 신화시대로 남아 있는 건국 이전 지배 집단 아사나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소개한다. 이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