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면서 질주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일관된 자세다.
이렇게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된 현장 보고를 읽고 나면 한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먹는 인간』은 내가 최근 10여 년 동안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고 관능이 넘쳐 나는 실재다.”
―후나도 요이치(船戶與一·소설가)
“보이지 않는 곳을 보려 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저자의 장렬한 기록이다.”
―아마존재팬 독자
1.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헨미 요,
그가 이방의 도시에서 건져 올린 장대한 식(食)의 인간 드라마
이 책은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헨미 요(邊見庸)가 1992년 말부터 1994년 봄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음식에 관한 현장 보고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도통신 칼럼으로 연재되던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다가 1994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에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은 저자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품고 떠난 저자가 찾은 나라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한국 등 15개 국.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분쟁을 겪었거나 여전히 위험과 갈등이 산재하는 곳들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식(食)과 생(生). 먹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복잡 미묘한 행위를 통해 ‘삶의 근원’이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여행의 원칙은 현지 사람들이 먹는 것을 함께 먹을 것. 그 원칙 아래 저자가 접한 음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간직한 사연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저자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게 먹는 행위에 열중하는 사람들, 민족과 종교도 어쩌지 못하는 맹렬한 식욕의 굶주린 사람들,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이 간직해온 이야기와 기억을 나누어 받아먹는다.
‘취재’라고 하면 모든 것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사건과 사고에 판에 박힌 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기자의 습성을 벗어던지고 평소에는 스쳐 지나칠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언론이었다면 삭제했을 장면들이 얼굴을 내밀고 빛을 낸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함몰된 풍경을 끝까지 추적하는 저널리스트의 본능적인 감각에, 작고 미미한 것들을 읽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이 더해진 덕분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너덜너덜한 인간세계”의 풍경에서 포착한 ‘먹는 인간’의 모습은 애잔하고 슬프지만 풍요롭고 아름답다.
저자는 『자동 기상 장치(自動起床?置)』로 아쿠타가와상, 『1★9★3★7』(이쿠미나)로 시로야마사부로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시집 『효수한 목(生首)』으로 나카하라주야상, 『눈의 바다(眼の海)』로 다카미준상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이는 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합된 명저로 평가 받는 이 책에서 여행기나 취재기를 넘어서는 오묘한 빛과 질주하는 힘, 그리고 팽팽한 긴장을 맛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라.”
거시에 함몰된 미시적 풍경을 찾아 떠난 2년의 기록
저자는 교도통신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특종을 연거푸 터뜨리다가 결국 중국 공안의 감시를 받고 국외 퇴거 처분을 받았을 정도로 집요한 기자 정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분노와 슬픔을 제거한 채 냉정하고 재빠르게 세상을 분석하는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타자의 기쁨, 괴로움, 신음을 느끼지 못하게 온몸이 차단된 듯 감각의 마비 상태가 왔기 때문이다. 몇십, 몇백 줄의 기사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은 자만과 오만의 대가라고 여겼다. 2년여 간 세계를 떠돌며 1주일 동안 취재하고 글을 쓴 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지속한 것은 이렇듯 잃어버린 신체성을 되찾기 위한 저자만의 지독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즈음 ‘기갈’과는 거리가 먼 일본의 ‘포식’ 상황도 저자의 여행을 부추겼다. 광풍처럼 몰아친 미식 열기에 혀와 위는 점차 값비싸고 고급스런 맛에 길들여졌다. 지금, 여기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모든 가치와 의미를 상품화와 소비로 환원해버리는 고도의 소비 자본주의 사회.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 먹고사는 일의 본래 가치와 의미도 벗겨 버린다. ‘식(食)’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먹는 행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아 떠난다.
3. 기아, 전쟁, 재해, 빈곤의 현장에서 마주친
속절없이 애절한 식(食)의 장면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미식 예찬(Physiologie du gout)』에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라고 답한다. 잔반(殘飯)을 먹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빈민, 에이즈에 감염되었지만 달리 먹일 게 없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간다의 엄마와 아기,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체르노빌 사람들……. 이들에게 먹는 일은 음식의 부패, 감염, 오염 여부를 떠나 생존을 건 절박한 사투다.
음식은 때론 질투와 분쟁, 갈등의 원인이나 차별과 살해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미얀마의 탄압과 인종 청소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란 온 이슬람 소수 민족) 캠프에 감도는 주민과 난민 사이의 묘한 긴장은 구호식품을 둘러싼 원망과 질투가 빚은 ‘음식의 한’ 때문이다. 일본이 재일 한국인, 중국인, 오키나와 출신자들을 ‘먹는 것’의 차이로 차별했듯이, 독일의 네오나치는 ‘냄새가 난다’ ‘야만인’이라며 양고기와 향신료를 많이 쓰는 터키 음식을 빌미삼아 터키 이민자들을 공격한다.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죽어가는 소녀 파르히아처럼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받은 구호 식품은 싸구려 개밥보다 못하다. 반면, 소말리아를 도우러 온 각 국 부대의 휴대식에는 쇠고기 적포도주 찜, 리소토, 테린, 포타주 같은 파티 음식이 넘쳐 난다. 음식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1993년 러시아 함대에서는 장교들의 조직적인 식량 부정 유출이 있었고, 그 피해자들인 신병을 대상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까지 더해져 네 명의 신병이 죽음에 이른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음식 살인’이다. 먹기 위해 사람을 사냥한 일도 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 민다나오 섬 키탄그라드 산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 30여 명은 인근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살해하고 ‘먹었다’. 당시 산에는 멧돼지, 사슴, 원숭이도 있었고 산을 조금 내려가면 토란도 자라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잔류 일본군 토벌에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람 고기를 먹게 된 알레한드로 살레라는 노인의 안내를 받고 현장을 찾은 저자는 무엇이 인류 최대의 금기를 깨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읊조린다.
그럼에도 음식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게 해주고 영혼의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저자는 1994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한 위안부 할머니들(김복선, 이용수, 문옥주)이 또다시 자결하는 일을 막기 위해 10여 일간 이들을 따라 다닌다. 죽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 그들도 밥을 먹는다. 50년 전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시작되던 그 일이 ‘끼니’를 먹는 동안에는 잊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저자는 울면서 “그래도 드십시오. 언제까지고 밥을 드십시오.” 하고 바란다.
4. 체제와 종교, 권위주의의 억압에
틈새와 균열을 내
five of coins
5.0
-귀중한 수산자원을 잡을 수 있는 대로 잡아서 싼 노동력으로 가공하고 일본의 반려동물에게 먹이면 그만이라는, 인간과 동물이 아예 뒤바뀌어 버린 생산과 소비의 구조. 이에 대한 반성론이 미미하게나마 일본 일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에 타이의 펫푸드 관련 기업 전체가 지금 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회문제화 하지 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본에서 주문이 줄어들면 펫푸드 관련 회사 수십 곳, 노동자 2만 명 정도가 당장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양이 통조림 반성론' 같은 것이 공장 측에서는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느 군인이, 노래를 부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구의 야학에서 일본인 선생에게 배운 야스쿠니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불러서 두 번 불렀다. '단팥소가 든 떡'을 두 개 받았다. 큰 찹쌀떡이었는지, 설날 먹는 찰떡이었는지 내가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하나를 다른 소녀 둘과 나눠 먹고, 하나는 남겨 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금지되어 있던 한국말을 무심코 해 버렸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군인이 입에서 떡을 뱉으라고 명령했고, 떡을 뱉자 군화로 짓밟아 버렸다. 그 뒤 이 할머니는 뱃멀미를 했다. 화장실로 가서 토하고 있는 사이, 군인이 덮쳐서 할머니를 범하고 말았다. 다른 소녀들도 배에서 차례차례 당했다고 한다. * 이 작가 정도는 되어야 '고독한 미식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애솔킴
5.0
이 아저씨 글 잘 쓴다. 쉽게쉽게 툭툭 쓰는 것 같은데 막 아름다운 문장도 있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보고 느끼고 처했던 상황과 장면이 내 머리 속에서 버퍼없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아무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어쩌면 그게 가장 성스러운 거다라는 메세지도 좋았다.
twicejoy
4.0
최근 나의 고민은 어떻게 나의 간사한 입맛을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에 있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내지도 못 하는 무능한 사람이다. 돈으로 먹을 것을 사야하므로 시장에 주어진 음식에 쉽게 현혹된다. 10~20대를 걸쳐 오랜 시간 섭식장애를 앓은 것도 큰몫을 한다. 나를 죽이고 나를 살린 음식들... 그래서 첫 챕터에 등장하는 방글라데시의 음식찌꺼기 시장이 내 마음에 더 깊숙히 파고든 걸 수도 있겠다. 피로연이나 부잣집, 등에서 먹고 남긴 음식들이 음식찌꺼기 시장으로 유입된다. 베어문 자국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오래될수록, 즉 신선도가 떨어질수록 가격이 싸지므로 돈이 없는 이에게는 며칠 지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더 좋은 선택지이다. 태평양 전쟁 때 필리핀 잔류 일본 군인이 인육을 먹은 사건, 독일 통일 후 동독인들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터키인 실업자가 양성되고 그 결과 케밥가게의 폭발적인 증가... 90년대 내전이 한창이던 소말리아에서 미군 및 연합군의 호화스러운 뷔폐,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여성들이 살기 위해 부른 야스쿠니 노래를 부르고 얻은 떡, 삶의 터전을 버리지 못 하고 체르노빌로 돌아와 방사능 오염이 된 버섯, 사과, 생선 등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삶. 식과 생의 그 복잡함... 저널리스트로서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모습이 거슬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분쟁지역이든 외진 곳이든 몇날며칠에 걸쳐 그곳으로 향했고 생을 걸고 직접 몸을 부딪혀 그곳의 먹는 삶을 경험했다. 1992~1994년에 걸친 이야기가 2017년에서야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야기들이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250205
heyyun
3.5
천천히 먹고 싶어진다. 무엇을 왜 어떻게 먹는지 생각없이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면서 먹고 싶어진다. + 일본인에게 일본을 대표하라고 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사과없이 그러지 마세요라고 하는 저자의 모습도 감명깊음.
리규
4.5
“닥쳐올 기근의 나날을 위해서, 사랑하는 모든 먹는 인간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신영
4.0
온몸으로 체험하고, 치열하게 사유하는 자만이 쓸 수 있는 글. 맺음말이 쓸데없이 사람을 울린다. 닥쳐올 기근의 나날을 위해서, 사랑하는 모든 먹는 인간에게 이 책을 바친다.
재미없는 건 바로 포기
3.0
방글라데시 첫장 읽고 포기. 전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저자. 딱히 안 궁금하다.
은지초이
2.0
1. 베트남-쌀국수- 경제발전 기가막힌 이론 도출 2. 극한의 상황이 오면 사람은 사람을 먹을 수 있는가?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짐승을 짐승이라 할 수 있을까? 3. 온정이란 무엇일까 위안소에 끌려가는 배 안에서도 장교가 건네준 떡 한입을 따뜻한 맛으로 기억하는 묘하고 기이한 미각이란 그런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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