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_‘작가의 말’에서
타인에게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하고 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멈춰 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건너기 힘든 아득한 심연이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라는 일인칭 세계에서 ‘너’라는 타인에게로 시야를 넓혀온 작가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이르러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 전체를 조망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돼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작가로 자란 카밀라 포트만이라는 한 여자가 있다. 자신의 이름이 어째서 카밀라인지에 대한 물음에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라는 무책임한 대답 말고는 들을 수 없는, 불완전한 과거조차 갖고 있지 못한 여자가 말이다. 카밀라는 양부에게서 건네받은, 앳돼 보이는 여자가 어린아이를 안고 동백나무 앞에 서 있는 사진 한 장에 의존해, 자신의 과거를 알기 위해 한국 진남으로 향한다. 하지만 카밀라의 기대와는 달리 막상 진남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과거와 친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약속한 듯 진실을 감추려 든다. 그리고 진실에 가닿기 위한 모든 것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카밀라는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번 더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다.
2012년 현재에서 카밀라가 태어난 해인 1988년으로 거슬러올라갔을 때 떠오른 진실은 섬뜩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친오빠의 아이를 낳았다는 추악한 소문에 휩싸인 채 모두의 외면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입양 보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불경한 소문은, 그 나잇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질투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카밀라의 엄마 정지은은, 외롭게 바닷속으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점점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사실들만이 떠오르지만 카밀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 심연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엄마가 자신을 낳았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엄마를 계속해서 생각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때 엄마 역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진실을 알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말하며 달려가던 정지은과 카밀라의 목소리가 교차되면서, 그것을 감추려 눈을 감았던 ‘우리’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반대편에서 떠오른다. 하지만 어렸기에 나약했던, 지킬 것이 많아 비겁했던 ‘우리’는 각자가 알고 있던 진실에 대해 조금씩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진실이 겹치면서 이십오 년 동안 묻혀 있던 커다란 이야기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말에 이른다 해서 카밀라의 친부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신과 정답으로 가득한 세계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카밀라 혹은 우리가 그 다양한 경우 중에서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진실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카밀라가 작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나긴 지난함을 거쳐 진실에 가닿으려는 몸짓은 한 편의 소설을 써내려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란, 바닷속에 가라앉아 온기도 질감도 느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그럼에도 끝끝내 다가가 잠시나마 서로가 맞닿는 것이라고 말이다. 죽은 정지은과 그의 딸 카밀라가 결국 만나게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