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도시의 밤은 없다”
도시적 삶을 떠나 세상을 거닐던 여행자를 매혹한,
그곳의 아름다움과 그늘, 역사와 일상에 대하여!
배낭여행 1세대로서 ‘오래된 여행자’라고 불리는 작가 이지상이 스무 번째 작품 《도시탐독》을 펴냈다. 지난 20여 년간 그가 홍콩에서 열세 번, 마카오에서 다섯 번을 머무르며 도시를 탐색하고 읽어나간 이야기를 총망라한 이 책은 홍콩과 마카오를 여행한 기록이자, 현대인의 삶과 도시의 내밀한 풍경을 담아낸 에세이다. 정치외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역사와 문화에 큰 관심을 둔 그는 삶에서 여행과 인문학적 글쓰기를 실천해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내내 도시 밖의 삶을 꿈꿔왔던 그는 젊은 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세상을 여행했고 그 경험을 지금까지 19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이는 우리나라 여행작가로서는 독보적인 기록으로, 작가가 여행과 사색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는 한편 늘 독서하고 공부하며 정진하는 태도로 집필에 몰두했고, 오랜 세월 그의 인문학적 여행기를 꾸준히 애독해온 중장년층의 독자들과 사진이나 감성 어린 글 위주가 아닌 밀도 있는 이야기 중심의 차별화된 여행기에 관심을 가져준 새로운 젊은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신간에서 작가가 주목한 곳은 ‘도시’다. 도시를 벗어나 세상을 거닐어왔던 그가 도시에 매료되어 “도시가 좋아졌다”면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그늘, 역사와 일상을 《도시탐독》에 풀어놓는다. 식민통치를 거치며 극치의 자본주의를 이룩한 홍콩과 마카오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도시의 애환, 쾌락, 소외를 경험하고, 우리 과거와 현재를 살펴 미래를 예측해보며 ‘도시와 인간의 삶’을 성찰하도록 한다.
베테랑 여행가인 저자의 풍부한 여행 경험과 전문가 못지않은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식견, 홍콩과 마카오의 각 장소들이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사연, 여행 중 만난 사람과의 감동적인 이야기, 이색적인 사진으로 도시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감동과 기쁨을 주는 《도시탐독》. 지금까지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슬픈 인도》《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 와트》《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등 재미와 교양을 겸비한 작품으로 여행에세이 분야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며 꾸준한 집필 활동을 펼쳐온 작가 이지상의 또 다른 ‘명작’의 탄생이 예고된다.
들판, 사막, 히말라야 산맥을 동경하며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도시로 향한 이유
오랫동안 작가 이지상의 삶을 끌고 가던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이었다. 고도성장기 대도시에서 쌓아온 그의 추억에는 짙은 잿빛이 깔려 있다. 1960년대 기억에는 판잣집과 빈곤과 무질서가, 1970∼80년대 기억에는 우후죽순처럼 솟구친 빌딩숲과 매연이 있다. 어릴 적부터 벌판, 사막, 바다, 정글, 히말라야 산맥에 매료됐던 그는 어른이 되자 세상 곳곳을 두루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바람과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은 많은 현대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한다.
프랑스 환경철학자 오귀스탱 베르크가 말했듯이 도시는 이제 ‘인간의 모태’가 되었다. 자연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면도 있다. 그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자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에서 형성된 가치와 윤리와 의미라는 그물망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물망이 안락함을 넘어 어느새 구속이 되어갈 때 우리는 대자연을 그리워하며 탈출을 꿈꾼다. - ‘프롤로그’ 중에서(5쪽)
흐르는 세월 속에서 저자는 도시에 대한 이끌림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임을 알게 되었다. 10여 년 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사바 주의 깊숙한 정글에서 머무는 캠프에 참가했다가 40~50도를 오가는 더위, 사방에서 달려드는 모기 떼, 말라리아 약의 부작용에 시달리다 겨우 사흘 만에 도시로 도망쳤다면서 그는 “대자연에 심취하다가도 문명이 있는 마을과 도시에 들어서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정처 없이 방랑하다가도 문화와 예술을 접할 때 희열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자의 터전이 대초원이고 호랑이의 터전이 밀림이며 고래의 터전이 바다이듯, 현대인의 터전은 ‘도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도시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부터 홍콩까지,
서로 무척이나 닮아있는 현대 도시인의 삶 속으로
특히 여러 도시 가운데 홍콩과 마카오가 흥미로웠다. 두 곳은 힘든 나날에 작가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영화들의 무대이기도 하다.
작가는 배낭을 메고 중국에서 유럽까지 실크로드를 탐험하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와 같이 험하지만 흥미진진한 지역을 개척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여행과 글쓰기를 포함해 모든 사회적 활동을 완전히 멈춘 채 오로지 부모의 병간호를 위해 몇 년을 보낸 적이 있다. 찬란했던 시절은 가고 집안이 풍비박산된 그때, 삶의 허기를 채워준 것은 바로 이국의 영화들이었다.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만 할 것 같은 그 암울한 시절, 우연히 홍콩 영화<중경삼림>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기억을 통조림에 넣을 수만 있다면,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어.”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젊은 시절의 즐거웠던 여행의 순간들, 부모님 품속에서 두려울 것 하나 없던 그 따뜻한 세상의 추억들이 천년만년 갈 텐데. 한때 탕진했던 과거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나는 현재의 내가 비루해 보이고 혐오스러웠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죽어가며 했던 말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발 없는 새는 오로지 날기만 했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잠이 들었지. 그 새는 평생 단 한 번 땅에 내려올 수 있는데 그때가 바로 죽는 날이었어.”
한때 날아다녔으나 착륙한 나, 그러나 죽지도 못한 ‘발 있는 새’. 우연히 본 그때의 홍콩 영화들이 내게는 조그만 위안이었으며 도피처였다. - ‘홍콩이 좋은 이유’ 중에서(36쪽)
<중경삼림><아비정전><화양연화> 등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를 건네는 듯한 영화들 덕분에 그는 어려운 시간을 무사히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타국의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크게 얻는 영화들은 현대 도시인의 터전이 서로 닮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신의 도시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작가의 눈에 비친 홍콩과 마카오는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를 거치며 절정의 자본주의를 이룩한 도시다. 산업적으로 발달한 영화의 낭만적 이미지와 금융의 부유한 이미지가 드리워진 이곳들은 관광, 쇼핑, 식도락, 도박 등 갖가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하나 화려한 면면 뒤로 그늘도 짙다. 이 도시들은 너무 작다. 이곳을 유지하게 하는 모호한 일국양제는 세계의 다인종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도시는 제한된 공간을 극도로 쪼개나간다. 그리고 그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살아가길 요구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순 속에 바로 홍콩과 마카오 특유의 매력이 있다. 복잡하고 구심점이 없는 듯해도 들여다보면 정교한 질서가 있으며, 일상 속에 뿌리박힌 전통이 힘을 발휘하고, 복(福)과 정(情)을 나누는 관계가 존재하며, 이미지와 상상의 힘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을의 틴하우 사원 앞 광장에서는 저녁나절이면 사람들이 모여서 제기 차기 같은 놀이를 했는데, 베트남에서 보았던 ‘다카오’ 놀이와 비슷했다. 여러 사람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제기 같은 것을 차는데 마을의 노인, 아저씨, 아줌마, 젊은이 들이 함께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 일상의 행위 속에서 근대화, 자본주의에 의해서 아직 붕괴되지 않은 전통의 힘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한국에서건 다른 나라에서건 나는 전통이 무너진 가운데 경쟁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