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장 뤽 고다르와 <비브르 사 비> _ 톰 밀른
장 뤽 고다르: 인생과 영화는 차이가 없다 _ 진 영블러드
고다르와 혁명 _ 앤드류 새리스
앵글과 리얼리티: 미국의 고다르와 고랭 _ 로버트 필립 콜커
긴급한 속삭임 _ 페넬로페 질리아트
장 뤽 고다르의 새로운 방향 _ 아네트 인스도르프
고다르: 다시 태어난 영화감독 _ 조나산 코트
고다르를 고향에 데려오며 _ 조나산 로젠바움
영화 비평의 경제학: 토론 _ 폴린 케일과 장 뤽 고다르
이것은 요리된 당근이다 _ 기데온 바흐만
어떤 카메라의 제작사 _ 장 피에르 보비알라와 장 뤽 고다르
다섯번째 시기의 고다르 _ 캐서린 디크만
플롯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장 뤽 고다르에게 영감을 준다 _ 데이비드 스테릿
장 뤽 고다르와의 대화 _ 개빈 스미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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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고다르의 전체상을 조감
이 책은 첫 장편 영화 [네 멋대로 해라]가 나온 2년 후 고다르 자신이 이 히트작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1962년의 누벨 바그 시기의 인터뷰로부터 시작하여, 장 피에르 고랭과 협력하여 [브리티시 사운드], [만사쾌조] 등의 일련의 급진적인 정치적 영화들을 만들었던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의 시기, 70년대 후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로 극 영화계로 복귀한 이후 80년대 중반 [마리아에게 경배를]을 포함한 일련의 극 영화들을 만들던 시기, 그리고 후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인 [영화사] 연작과 감독 자신의 자화상 [고다르에 의한 고다르JLG/JLG]에 대해 논하고 있는 1996년의 인터뷰까지 그의 경력의 주요 시기 동안에 저명한 비평가들, 학자들,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한 인터뷰들중 중요한 것들 모아 편집한 책이다.
에세이스트이면서 동시에 과학자
고다르는 자신을 에세이스트라고 부르며 마치 과학자처럼 자신의 주제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접근하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 주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는 한편, 영화를 촬영하기도 전에 미리 세부적인 사항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획하는 할리우드의 제작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할리우드 제작 방식에 의해 고다르가 의도하고 있는 영화를 통한 ‘새로운 발견’이 가능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인터뷰들에서 독자들은 이와 관련해 고다르가 어떻게 이 생각들을 발견시켜 나갔는지를 다양한 측면들에서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고다르는 이 책에 실린 1976년 페넬로페 질리아트와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듯이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미리 통제하고, 그 결과를 계산하기 위해서 할리우드에서 대본이 법처럼 지켜져야 되는 사실을 비판하는 한편,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촬영된 대본을 제작함으로써, 글로 쓰여진 대본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살아있는 대상과 카메라/눈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한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고 있다고 되풀이하여 밝히고 있다.
영화의 사명으로서의 몽타쥬
고다르는 90년대 이후 근 10년에 걸친 작업인 [영화사] 연작에서 영화와 예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참여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자기 발전의 최종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고다르는 개빈 스미스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의 양지]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그러한 활달한 미소가 가능했던 것은 감독 조지 스티븐스가 이전에 홀로코스트를 촬영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화사]에서 이 두 이미지들은 겹쳐지며, 고다르는 이것을 이 인터뷰에서 역사적 몽타주라고 부른다. 이 미소와 나치의 시체 소각실의 몽타주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현실에서 서로 가장 관계가 먼 것들이 결합할 때 발생”하며 바로 이것이 “진정한 몽타주가 일어나는 때”라는 고다르의 관점에 대한 예증이 될 것이다. 고다르는 같은 인터뷰에서 몽타주는 영화의 진정한 사명이자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용들은 아마 용감하고 잘 생긴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닐까? 모든 끔찍한 것들은 아마도 구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단지 힘없는 것들이 아닐까?” - 가장 정반대의 것들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의존성을 보았던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반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사]에서 들려지고 있는 이 대사는 고다르가 의미하고 있는 몽타주에 대한 비전의 시적인 표현으로 들린다.
하지만 어떻게 이러한 유의 몽타주가 영화의 사명이자 목적이 될 수 있는가? - [영화사]에서 이 몽타주 씬 직전의 고다르의 보이스 오버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 마을, 그 마을의 흰색 벽들과 올리브 나무들을 잊었다/하지만 우리는 피카소를 기억한다/ 즉 게르니카를” 그리고 바로 이 말에 앞서 동일한 보이스 오버는 대중 예술인 영화가 “예술”이 되는 때, 즉 “불타 없어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 되는 때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다르의 표현을 따라서 그때 그 마을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홀로코스트는 [젊은이의 양지]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소 속에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표현들이 지나치게 시적이라면, 홀로코스트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그 미소를 띠게 하였고, 그때 그 마을이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완성하게 하였다고는 말하는 것은 어떨까? 영화는 고다르의 여러 인터뷰들에서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듯이 “자신을 앞으로 던지는” (투사project하는) 매체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바로 그렇게 미소짓게 한 홀로코스트는 역사 속으로 던져지고 있다. 이 끔찍한 사건을 구원하는 역사가 고다르가 생각하는 영화의 역사일 것이다.
“생각하는 구조”를 통한 끝나지 않는 대화
이처럼 열네편의 인터뷰를 꼼꼼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영화사 최후의 거장으로 꼽히는 고다르의 진면목에 다가서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1968년의 USC 패널 토론에서 고다르는 브레송의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구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영화가 현실에 대한 어떤 결정적인 해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의문들을 제기하고, 그 의문들을 새로운 해석들에, 즉 현실 속으로 열어 놓고 있는 형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이것은 브레송 영화에 대한 고다르다운 해석이지만 동시에 고다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고다르의 영화와 그의 영화에 대한 이 인터뷰들에서의 논의들이 계속해서 수많은 서로 다른 관점들과 해석들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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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까모까
4.0
* 아직 보지 못한 <영화사들>, <신독일영년>, <마리아에게 경배를>에 관한 인터뷰를 제외하고 다 읽음. *기억에 남는 말: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않고 읽는다." 이미지를 보는 법. 정치적인 영화. 영화의 대부분은 쓰레기고, 나도 쓰레기를 만든다. *감상: 전반적으로 고다르 영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 한 장편 10편은 봐야 따라갈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일단 <할수 있는자가 구하라>랑 <중국여인>은 꼭 봐야 함. 다만, 저 당시 인터뷰가 아닌, 논평은 두루뭉실하고 자의적으로 평가하는 논조로 쓰인게 많음.
Tere
4.0
(2024.3.18.월~2024.5.16.목) 고다르: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갈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내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관객: 관객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는 말인가? 고다르: 세계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그렇다.
Ellis K
4.5
(관객) : 관객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는 말인가? 고다르 :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할리우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제공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사운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있지만, 말은 거의 없다. 프랑스에 있는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알제리에 관련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말은 우리를 알제리 전쟁에 대항하도록 만들 만큼 아주 강력했다. 여기 미국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베트남에 대한 수많은 이미지들을 보지만,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두 장의 사진으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우리는 백만 달러짜리 영화를 상대할 수 있다. 북베트남인들, 베트콩은 할리우드 펜타곤의 백만 달러 영화의 전쟁에 대항하여 두 장의 사진으로 만든 전쟁을 발명했다." "앵글은 교차로이다. 그것은 어떤 지점이다. 우리는 촬영을 시작한다는 관점에서 앵글을 생각한다. 시작하기 위해서는 교차로에 들어갈 때처럼 먼저 매우 정확한 지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다음 새 길을 선택할 수 있다. (...) 흐름, 방향이 있다. 피곤해서 흐름의 한 지점에 멈추고 싶어 한다. 방향을 바꾸고 싶다. 앵글은 바다 위 보트처럼 현실을 헤쳐 나가는 커트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이것은 혁명 자체이며 새로운 커트를 만드는 것은 현실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정적인 위치, 미디엄 사이즈의 고정된 쇼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인스턴트 카메라를 들고 휴일에 가족사진을 찍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보통 사람들, 이러한 진정한 주체들이 변화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억압에 대항하는 새로운 투쟁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들이 노동자라면 사장에 대항하는 것이고, 여성이라면 남편에 대항하는 것이며, 베트남인들이라면 미국인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정된 쇼트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트래킹 쇼트를 발명해야 한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똑같아 보일지라도 해야 한다." "나에게는 <천국의 문>이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영화에 4천만 달러를 쓸 때 그것은 스케일이 큰 것이 아니라 스케일이 작은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의 묵시록>에 4천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해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은 매일 오전 엄청난 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항상 사물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사물들이 언제나 이름을 가져야 하는가? 아마도 사물들은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채 우리들 앞에 와있는 것이리라. 영화는 이름이 주어지기 전의 사물들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사물들에게 이름이 주어질 수 있고 사물들에 이름을 주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 없이는 어떤 영화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영화가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 자체가 아무런 사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꺼이 밖으로 나와서 앞으로 걸어가며, 미지의 영역으로 자신을 던지고, 타인과 만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타인들도 마찬가지로 기꺼이 자신들의 편에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만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만나려는 선의가 있다. 그것이 영화이다. 영화는 사랑이고, 만남이며, 우리 자신과 삶에 대한 사랑이고, 지상의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영화는 매우 복음적인 매체이며 흰색 스크린이 캔버스와 유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관찰하면서 우리가 잘 볼 수 있었다면 우리가 보았던 것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일뿐이다." "카메라는 나에게 라이플일 수가 없다. 카메라는 밖으로 내보내는 도구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의 도움으로 받아들인다." "이자벨 아자니가 나와 함께 이 영화를 만들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조명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이 영화에서 자신이 별로 예쁘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다른 모든 스타들처럼 아자니는 많은 조명,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아름다운 용모가 스크린에 나타날 수 있는 보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햇빛을 조금만 조정하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훨씬 나은 보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텔레비전에는 더 이상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텍스트만이 존재할 것이다." "영화는 사물을 보고, 식별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발명되었다. 영화는 주로 과학의 도구였다." "여권 사진의 동일성이 그 남자 자신의 동일성인 것처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사진일 뿐이다. 그 남자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진은 회화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세밀한 부분이나 소위 실재의 더욱 사실감 넘치는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동일성을 끄집어낸 다음 문화에 존재하는 어떤 도덕성 때문에 그 동일성을 흑백으로, 조문의 색깔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최초의 테크니컬러,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는 테크니컬러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실제의 꽃의 컬러가 아니라 장례식 화환의 컬러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하나의 이미지가 아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죽은 어떤 한 사람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는 내 의견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때로는 죽은 사람이 영향력을 가진다. 베트남전이 중단된 이유는 우리가 수많은 죽은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켄트 주에서 미국인 학생 한 명이 죽는 것을 미국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수천이 아니라,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힘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은 3-4년 더 지속되었고 하노이 폭격이 있었다." "이미지는 그 자체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이미지는 그것을 내가 어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보고 있을 때 생기는 관계이다. 이미지는 관계이다." "TV에서는 투사, 즉 무언가를 앞으로 던지는 일projection이 없다. 뒤로 던지는 일rejection이 있을 뿐이다. 예컨대 안락 의자나 침대로 자신의 몸을 뒤로 던진다. 영화에서는 자신을 앞으로 던진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TV에서는 어떤 것의 전송이 있을 뿐이다. 무언가 앞으로 던지는 것, 즉 투사는 영화에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왓챠보안관^^7
5.0
존포드에 비하면 고다르는 얼마나 사려깊은 수다쟁이인지 느끼게됨
유신
4.0
고다르의 인터뷰가 많아서 좋다. 또한 고다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영화 제작에 임했는지 자세하게 얘기해주고, 고다르가 내러티브적 실험 뿐만이 아닌, 기술적인 실험과 그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는 것까지 알려줘서 고마운 책.
네미
5.0
늘 고마워요 진짜 진짜루.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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