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 시
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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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등단한 시인이 등단 14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 등단작 ‘풍경’을 비롯해 14년간 써온 58편의 시를 묶었다. 시인의 시는 오랜 세월동안 간직한 일기장에서 나옴 직한 미세하고 사소한 말들이다. 총 3부로 나뉜 시집의 전반부는 세계와 나, 타자와의 관계 혹은 거리가 등장한다. 시인은 짐짓 가볍고 담담한 이야기로 시인과 도시, 그리고 관계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어색하게 고개 숙이는 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들은 세상의 환멸과 우울한 미래를 흘낏 보아버린 아이어른, 절대적 진리와 종교의 불확실성 등으로 상처 입은 자, 노동과 여가를 오가는 성실한 인생의 주기를 회의하고 포기한 자 등이다. 이들을 통해 시인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을 노래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혐의를 묻는다.

[인터렉티브 필름]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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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슬픔의 진화 식후에 이별하다 오늘 나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슬픔이 없는 십오 초 Rubber Soul 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 피할 수 없는 길 풍경 장 보러 가는 길 아내의 마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빵,외투,심장 착각 미망 Bus 전락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웃는다,웃어야 하기에 휴일의 평화 둘 제2부 노래가 아니었다면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너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아이의 신화 먼지 혹은 폐허 배고픈 아비 나의 댄싱 퀸 여,자로 끝나는 시 천 년 묵은 형이상학자 평범해지는 손 종교에 관하여 최후의 후식 한때 황금 전봇대의 生을 질투하였다 목가풍으로 깊어가는 밤 그것의 바깥 불어라 바람아 18세기 이후 자연과 나의 관계 제3부 청춘 삼십대 금빛 소매의 노래 이곳을 지날때마다 즐거운 생일 세계는 맛있다 성장기 狂人行路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그때,그날,산책 대물림 아버지,옛집을 생각하며 도주로 멀어지는 집 실향(失鄕) 편지 확률적인,너무나 확률적인 그녀와의 마지막 테니스 떠다니는 말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해설|꿈과 피의 미술관·허윤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어둠의 몸’과 ‘달의 입’을 빌려 부르는 도시의 비가 -“찰나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시집은 그가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가까스로 긁어모아 내뱉은 그의 핏자국이다.” (허윤진 . 문학평론가)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며 등단한 심보선이 데뷔 14년 만에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를 펴냈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황동규, 김주연이 평한 바,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과도 무관하며, 시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곧잘 사용하는 상투어들이나 빈말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려온 심보선은 등단작 「풍경」을 비롯, 14년간 이 땅에서 혹은 바다 건너 도시에서 쓰고 발표해온 총 58편의 시를 이번 시집에 묶었다. 심보선의 시는, “현실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 그 현실 가운데를 스스로 지나가는 푹 젖은 체험, 그러면서도 거기에 이른바 시적 거리를 만들어 놓는 객관화의 힘, 번뜩이지 않으면서도 눅눅히 녹아 있는 달관의 표현력, 때로는 미소를 흐르게 하는 유머” 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으로 조응하며 이제껏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시적 공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기에 한없는 도시의 우울과 그늘을 산책자로 관찰자로 부유했던 보들레르나 벤야민의 사유가 그러했듯이, 이제 더 이상의 극단을 예단하기도 두려운 후기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심보선의 철학적 사유와 삶의 노래 또한 전범 없는 독창성을 띤다. 등단 후 열네 해 동안이나 시집의 침묵을 지켜온 데는, 물론 그의 한쪽 삶은 오롯이 대학에서 문화?예술사회학과 관련한 공부와 강의를 하는 데 할애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현기증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심과 고뇌를 ‘밥알’ 삼아 언어의 “불완전성 속을 배회하며 불안과 슬픔만을 완벽하게 중얼거”(「아이의 신화」)릴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그에게 허락된 단어, ‘분열’과 ‘명멸’을 거듭하며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그만의 사정이 있었노라고 짐작해본다. 의자 위에서 “환상과 지식이 만나면 고통뿐”이라는, “심하게 훼손된 인생”(「천 년 묵은 형이상학자」)에 미혹된 이상 누구라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내향적이고 감정적인 기질로 속으로 고민을 하다 결론을 내리면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먼지 혹은 폐허」)해지는 시인은, 늘 “폐허의 가면”을 벗지 못한 채로 시간과 기억이 겹치고 훼절하며 만들어내는 “주름과 울림과 빛깔”에 골몰한다. 이 골몰과 상념의 시간이 오랜 꿈에서 막 깨어난 시인의 말/언어를 낳고 노래와 시로 거듭난다. 때문에 심보선의 시는 “생의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흔들”(「대물림」)리고 나서야 얻은 울음 같은 것이다. 기억의 한편을 꾹 누르면 흐릿한 풍경 하나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뽑혀 나오네. 나는 그것이 선명해질 때까지 온 육신을 흔들며 날뛰는 존재.// 운명을 믿고/구원을 저주하고/굴욕 직후에 욕망하고/ 태양을 노려보며 달빛을 염원하고/ 상상의 무반주 랩소디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다가/ 궁극적으로는, 그렇지, 완벽하게, 치명적으로, 넘어지는/ 거지. (「먼지 혹은 폐허」 부분) 총 3부로 나뉜 시집의 전반부에는 세계와 나, 타자와의 관계 혹은 거리에 대해 “볕 좋은 이른 봄”(「장 보러 가는 길」) 풍경을 읽듯 짐짓 가볍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그때 생은 거짓말투성이였는데/우주를 스쳐 지나는 하나의 진리가/어둠의 몸과 달의 입을 빌려/서편 하늘을 뒤덮기도 하였다/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누추하게 구겨진 생은/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다/장대하고 거룩했다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부분) 두 줄기의 햇빛/두 갈래의 시간/두 편의 꿈/두 번의 돌아봄/두 감정/두 단계/두 방향/두 가지 사건만이 있다/하나는 가능성/다른 하나는 무(無) (「둘」 전문) 그러다가 중반부로 넘어오면 이내, 냉혹하고 복잡한 이 거리에서 나-시인은 “스스로를 견딜 수 없다는 것만큼/견딜 수 없는 일이 있겠는가/그리하여 나는 전락했고/이 순간에도 한없이 전락”(「전락」)한다. 이쯤에서 시의 모습은 보다 내면 고백적이고 격정적이며 시인의 꺾이는 무릎을 감추기 위한 흥얼거림도 군데군데 한몫한다. 나는 지금 참혹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지금 내 유언장이 몇 번 만에 펼쳐질 것인가를 생각한다,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지병이었다 그리고 같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나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고백해왔다 (「성장기」 부분)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할 수 없는 소문」 부분) 결점 많은 생도 노래의 길 위에선 바람의 흥얼거림에 유순하게 귀 기울이네 그 어떤 심오한 빗질의 비결로 노래는 치욕의 내력을 처녀의 댕기머리 풀 듯 그리고 단아하게 펼쳐놓는가 노래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강물은 무수한 물결을 제 몸에 가기각색의 문신처럼 새겼다 지우며 바다로 흘러가네 생의 완벽 또한 노래의 선율이 꿈의 기슭에 우연히 남긴 빗살무늬 같은 것 사람은 거기 마음의 결을 잇대어 노래의 장구한 연혁을 구구절절 이어가야 하네 그와 같이 한 시절의 고원을 한 곡조의 생으로 넘어가야 하네 그리하면 노래는 이녁의 마지막 어귀에서 어허 어어어 어리넘자 어허어 (「노래가 아니었다면」 부분) 때로는 우울과 슬픔, 절망과 냉소에 붙들린 시인의 그것으로는 적이 낯선, ‘장르화된 삶의 고통’을 꼬집는 짓궂은 유머가 정색의 고백과 명명보다 더 크게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그와 더불어 “씨익, 웃을 운명을 타고난”(「편지」) “유일무이한 시인이요 심장이 큰 소리로 뛰는 가수”(「너」)인 그와 함께 흥얼거리고 엉거주춤 춤춰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추동한다. 시간이 매일 그의 얼굴을/조금씩 구겨놓고 지나간다/이렇게 매일 구겨지다보면/언젠가는 죽음의 밑을 잘 닦을 수 있게 되겠지 (「한때 황금 전봇대의 生을 질투하였다」 부분) 안녕하세여, 어디 가세여, 나 몰라라 도망가지 말아여, […] 도대체 누구냐고여, 몇 생 전이던가여, 우리 어느 심하게 게으른 나라의 국가대표 산책팀 소속이었자나여, 기억 안 나세여, 왜 저보고 사는 게, 납치할 아이 하나 없는 세상의 유괴범처럼 황당하게 외롭다고 그랬자나여, 불어였던가, 스페인어였던가여, 왜, R 발음에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우겨 넣은 듯한 언어로 말했자나여, 그렇지여, 첫번째 생 다음은 다 후렴구이지여, 그렇지여, 신은 회로애락을 무한의 버전으로 믹싱하는 DJ지여, 그렇지여, 우리 인간은 그 리듬에 맞춰 춤이나 출 따름이지여, (「여, 자로 끝나는 시」 부분) 심보선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이렇게 우리 앞에 멈춰 있다. “오랜 세월 간직한 일기장”에서 나옴 직한 “무수하고 미세하고 사소한 말들”(「떠다니는 말」)이, 또 가장 구체적이고 내밀한 개인의 경험 ―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사랑과 이별, 찰나의 환희와 영원의 불안, 유한성과 무한성, 거짓과 진실 ― 들이 나와 너,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멍울로 점증화하는 과정 속에서 태어난 심보선의 ‘시(쓰기)-말(하기)-노래(하기)’가 우리 앞에 와 있다. “치욕에 관한 한 멸망한 지 오래인 세상”(「슬픔이 없는 십오 초」),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오늘 나는」) 숨은 시인은 “누추하게 구겨진 생”(「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을 앞에 두고 꺾인 허리로 슬픔을 곱씹고 몸에 새긴다. 그에게 각인된 슬픔의 무늬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그림자로 목덜미에 딱 붙어 그만 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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