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생명에 관한 과학적 지식들,
그것은 대부분 편견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결정론, 환원주의적 해석, 기계론적 생명관 ...
현대과학의 생명관, 이대로 괜찮을까?
생명의 본질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과감히 짚어내고,
현대과학의 한계 너머 ‘인간을 위한 생명’을 다시 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인 생명의 개념, 그것은 과연 과학적일까?
현대는 생물학의 시대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지금은 PCR 검사나 백신 접종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제 줄기세포 치료나 유전자 치료를 받으며 자연스레 노화 억제와 수명 연장을 기대하는 시대가 열렸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생물학과 첨단 공학기술이 결합해 탄생한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신개념을 통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초인류의 탄생을 꿈꾸기도 한다.
이처럼 이제 생명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며 그것을 다루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버나드 쇼는 100여 년 전에 이미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생물학의 무용함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생물학이 과학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명을 이해하는 수준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은 생명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생명이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생명의 본질은 결국 유전자와 뇌로 환원될 수 있으므로, 이것을 분석하면 생명 전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 신경계의 적절한 연결과 조합이 인식과 정신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따라서 유전자를 조작하고 마인드 업로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전대미문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생명을 바라보는 현재의 이런 관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과연 과학적일까? 그렇게 생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인문학을 사랑하는 분자생물학자, ‘인간의 얼굴을 한’ 생물학을 역설하다!
학계 최전선에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생명의 기원, 생명의 본질, 생명의 의미, 그리고 생명이 향해야 할 곳 등을 묻고,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흥미롭고 우아하고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생명은 우연인가?’라는 민감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명은 어떻게 진화하는지, 그리고 생명에 어떤 법칙이 있으며,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지와 같이 현대과학이 간과하기 쉬운 15가지 질문을 독자들에게 도발적으로 던진다.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인류가 이 물음들에 어떻게 답해 왔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살핀다.
내로라하는 30명의 뛰어난 과학자, 작가, 사상가,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선별해 담았다. 그러면서도 탁월한 그들의 주장, 믿을 만한 과학적 결론이라고 해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철저히 물음표를 붙인다. 저자는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즉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는 런던왕립학회의 모토와 정신을 환기하며 과학과 인문학, 나아가 모든 학문을 대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저자는 대중을 위해 무작정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만 설명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쉽고 흥미롭게 잘 요리해서 내놓는 과학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과연 그것이 사실이며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과학을 어렵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버드대 학부 교양교육 보고서에 따르면 교양이란 ‘상식적인 잡학다식형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추정된 사실을 낯설게 만들며 익숙한 방향감각을 혼란하게 만드는 개념들’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과학을 ‘교양’ 삼아 가볍게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현대과학이 생명을 올바로 설명하고 있는지 면밀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물학이라는 씨줄과 철학‧문학‧예술이라는 날줄을 엮어 새로운 무늬를 띠는 생명의 모습을 제시한다. 생물학은 과학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생물학에도 ‘인간의 얼굴’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현대과학의 생명관, 이대로 괜찮을까?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이원론을 주장했던 데카르트는 중세의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생명에 대한 기계론적 가치관을 유행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물의 육체는 영혼이 없이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자동인형’에 불과하다는 기계론적 생명관은 생명의 역사에서 낡은 생기론과 목적론을 완전히 몰아냈다. ‘모든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밝혀낸 현대 물리학은 생명마저 똑같은 원리로 분해해 입자의 모임, 물질의 한 형태로서의 생명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물질은 생명의 모든 것이 되었고, 생명의 모든 신비한 현상은 결국 물질로 설명되리라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모든 생명 현상이 ‘유전자’, 그리고 그것의 끝없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낸 생명의 최종 병기, 즉 ‘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기계론적 환원주의와 유물론적 결정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처럼 거부하기 어려운 과학계의 분위기는 현대 생물학이 DNA를 중심으로 한 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과학 활동의 형식을 결정하는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기에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기 위해 공유하는 하나의 신념이지, 절대적인 관점이라 볼 수는 없다. 현대 생물학은 DNA와 유전자로 인간의 이기적 행동뿐 아니라 이타적인 행동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성 선택과 관련된 다양한 행동과 정치‧사회적 의사 결정의 과정까지 생물학적 원인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말 그럴까?
위대한 과학자와 사상가들과 더불어 생명의 본질을 사유하다
생명이란 우연한 존재인지 필연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철학자 데카르트와 유전학자 자크 모노의 목소리를 각각 들어본다. 생명이란 물질인지 정신인지에 대해서는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의견을 들어본다. 우리가 아는 생명에 과연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어 멘델과 노벨상 수상자 바버라 매클린톡의 말을 경청해본다.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생명은 결국 무엇이 되려 하는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과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의견을 살펴본다.
이처럼 우리는 이 책에서 생명의 중요한 본질을 묻는 각 장의 근사한 질문에 대해 두 명의 지성인이 가지고 있는 통찰을 나란히 살펴보며, 그들이 어떤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점에서 다른지 비교하며 분석해본다. 저자는 각각의 목소리에 어떤 모호함이 있는지, 어떤 모순이 숨겨져 있는지, 어떤 점에서 그들의 주장에 실현 불가능성과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지 지적한다. 독자는 거기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만의 생명관과 가치관을 정립하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 관점은 하나일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게 된다면 서로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더욱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생명에 관한 모든 질문들에 정답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답을 현재의 지식으로 명쾌하게 알고 있는 이는 아직 없다. 과학은 확립된 불변의 지식이 아니라 지난한 논쟁이며 설득의 과정임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단 하나이다. 생명이란 여간해서는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현상이며,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 찬 미지의 영역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