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른 냄새

이혜인 · 인문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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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감각보다 쉽게 흩어지고 또 스며들어 금방 잊히고 마는 냄새는 돌이켜보면 늘 기억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코끝을 스친 어느 향에 불현듯 지나간 추억을 상기하게 만드는 이 후각의 언어는 잊힌 듯 잊히지 않음으로써 경계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감각이다. 오랜 시간 냄새라는 감각에 관심을 두고 《나를 기른 냄새》를 집필한 저자는 이러한 냄새의 속성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파악하곤, 자신을 몰래 길러온 것이 다름 아닌 냄새임을 깨닫는다. 저자가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감지됐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가족들의 아침 식사 냄새, 엄마의 손가락 사이에서 나던 야쿠르트 냄새와 동네 호프집의 나무바닥 냄새…. 이러한 냄새들을 맡으며 저자는 한뼘 자라났다. 냄새로 인해 새삼 소환된 개인사는 저자를 거기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사회문화에 담긴 후각의 언어마저 탐험하게 한다. 그가운데서 발견한 세상의 여러 모순과 폐허는 마냥 아름답지도 순하지도 않기에 저자 스스로의 모순된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모순 앞에 자신을 숨기기엔 너무 많은 냄새를 감지한 저자는 차라리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 나는 어느 존재의 냄새를 맡고자 한다. 아빠의 페인트 냄새에서, 동네 학의천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그리스의 이드라섬과 이탈리아의 오렌지꽃나무에서, 그리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쇠구두 주걱을 팔던 양복 입은 할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반문하며. 아는 만큼 부디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저자는 후각이라는 터널로 더욱 선명해진 풍경을 만난다. 《나를 기른 냄새》 속 후각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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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두 번째 작가의 말 1장 스트레인저 - 좋아해서 투명해진 - 여행지에서 나를 두고 오는 법 - 공동묘지의 쓰레기통은 아름답다 - 이드라에서 2장 홈타운 - 경기도 라면 가족 - 당신의 반찬통 냄새 - 내 안의 에바 - 학의천에서 학 난다 - 섬유유연제와 흰 운동화 3장 대면 - 아이 워스 필링 언더 더 웨더 - 숨을 쉴 것 - 콧속 요가 - 허수경 시인에 대한 착각 코로 작품 읽기 4장 코끝의 자각 - 죽음의 실루엣 - 창틈 사이로 - 사람 냄새 5장 망각과 혐오 - 인간의 닳은 지문 - 피톤치드적 사유 - 스무스한 혐오 6장 상흔과 희망 - 냄새의 실종 - 기억의 수식 - 환상의 섬, 제주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 교수 추천 《6》 《아네모네》 성동혁 시인 추천 냄새라는 잊힌 감각으로 보다 선명하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오랜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저자에게 냄새는 치유의 형태로 먼저 찾아왔다. 친구가 관자놀이에 찍어발라준 패출리 오일의 냄새를 맡으며 저자는 처음으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콧속에 스미는 서늘한 흙내음에 몸을 맡긴 채 한바탕 위안을 얻은 저자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우던 생선 굽는 냄새, 서울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생활하지만 결국 홈타운은 안양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동네 어귀의 따스한 냄새 등 자신의 기억 속 냄새를 이 책에 하나둘 풀어냈다. 개인적인 냄새임에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 냄새이기에 모두에게 그리운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나를 기른 냄새》는 저자의 개인사만을 담진 않는다. 냄새라는 사라져가는 감각을 기민하게 관찰해온 저자인 만큼 후각에 담긴 사회문화적 언어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 여러 모순과 두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과 살 냄새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지난 날의 나를 떠올리고, 엄마와의 복잡한 관계성과 애증을 넘나드는 가족에게 배인 냄새에선 사회에 부여된 가정과 가장, 여성과 엄마가 가진 대표성은 무엇인지, 그 역할을 다시 묻는 계기를 마련한다. 허수경 시인의 시들을 추억하던 중 ‘자신과 허수경 시인이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착각한다며 귀엽게 시인하는 저자는, 결국 과거로 향하는 사람들은 냄새에 발 묶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을 향한 그리움과 애도를 담아 이야기한다. 책은 가장 동물적인 본능이기도 한 ‘맡는 행위’를 통해 이 땅에 깊게 자리한 혐오와 차별을 돌아보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코를 막는 행위 혹은 그러한 행위를 스스로 경계해본 자라면, 자신의 품을 파고들어 코를 박아본 자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의 나는 마늘의 알싸한 향 같은 것이 내 피부 어딘가에 깊숙이 배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주변 아시아인들이 겪은 후각적 혐오 경험들이 나를 움츠리게 했다. (…) 나는 내 몸에 코를 묻은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게서 냄새가 나나? 나를 탈취하고 또 탈취했다.” 저자의 경험은 냄새(후각)가 혐오와 차별의 속성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이러한 사례는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유대인의 악취를 핑계로 한 나치의 유대인 소각, 흔히 쓰이는 ‘사람 냄새’에 담긴 역차별적 행위 등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저자가 예리하게 포착해낸 순간들에 흠칫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 속에 일찍감치 자신을 포함시키곤 무지 속에서 행하는 차별 앞에 아닌 척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마음을 꺼내놓는다. “애초에 선한 마음이 타고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바닥의 얼룩을 청소하듯 차별과 편견의 선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왜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에 무슨 힘이 있다고 상처를 입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의 냄새 역시 사라지고 없다. 긴 내전 끝에 실종된 콜럼비아 시민들의 신발(도리스 살세도의 〈Atrabiliarios〉), 양신하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기록된 제주 4.3사건 속 이름 모를 고인의 뼈(노르웨이 출신 후각 연구자 시셀 톨라스는 이 일기장을 냄새로 변환했다). 저자는 끝내 냄새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이들을 애도한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문장 하나를 기억한다. ‘언어에 감정을 담으면 고통이 없어진다.’ 개인이 후각의 언어를 취득하는 방법은 냄새를 기억하는 일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의 주인이 현존하지 않아서, 기억할 냄새가 없어서, 결국엔 감정을 담을 언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특정 냄새엔 인간을 멈칫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결국 냄새를 기억하는 건 지나간 재난을 기억하기 위해서, 미래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앎의 노력, 기억뿐이라고.” 냄새를 잃은 이 작품들이 알려준 것들이다. 그리고 팩데믹 시대. 코로나19의 가장 큰 증상인 후각의 잃음은 밥 냄새, 자연 냄새, 누군가의 체취 등 좋아하는 냄새를 언제든 맡을 수 없다는 공포와 함께 그들을 향한 그리움을 더욱 쌓아올렸다. 저자는 미국의 사진 작가 찰리 잉그만의 AI 시리즈에서 팩데믹 시대의 후각이 시사하는 바를 발견한다. 껴안다 못해 서로 붙어버린 듯한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그리운 냄새를 찾아 파고들고 파고들다 하나가 된 모습과도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우리는 “상실 끝에 희망을 발견한다.” 고개를 들어 어느 존재의 냄새를 맡다보면, 잠수 끝에 눈부신 세상을 발견할지도 불면증을 앓던 저자의 냄새 탐구는 자신을 기른 것들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사회 구성원이자 인간,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감각과 책임을, 마지막으로 불완전하게 살던 저자의 몸과 마음을 비로소 돌보게 만들었다. 계절마다 숙제처럼 자신을 산책시키고, 고개를 뻗어 때죽나무, 아까시나무, 서양수수꽃다리에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냄새로 익혔다. 여름의 물비린내, 가을의 건조한 낙엽 냄새, 겨울 스웨터의 창백한 먼지 냄새를 맡으며 원인 불명의 목이 시린 증상도 어느덧 사라졌다. 저자는 이제는 어떤 날씨여도, 어떤 상황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울어진 갑판에서 나와 알린다. “잠수 끝에 발견한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냄새가 일러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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