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 교수 추천
《6》 《아네모네》 성동혁 시인 추천
냄새라는 잊힌 감각으로
보다 선명하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오랜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저자에게 냄새는 치유의 형태로 먼저 찾아왔다. 친구가 관자놀이에 찍어발라준 패출리 오일의 냄새를 맡으며 저자는 처음으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콧속에 스미는 서늘한 흙내음에 몸을 맡긴 채 한바탕 위안을 얻은 저자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우던 생선 굽는 냄새, 서울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생활하지만 결국 홈타운은 안양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동네 어귀의 따스한 냄새 등 자신의 기억 속 냄새를 이 책에 하나둘 풀어냈다. 개인적인 냄새임에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 냄새이기에 모두에게 그리운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나를 기른 냄새》는 저자의 개인사만을 담진 않는다. 냄새라는 사라져가는 감각을 기민하게 관찰해온 저자인 만큼 후각에 담긴 사회문화적 언어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 여러 모순과 두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과 살 냄새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지난 날의 나를 떠올리고, 엄마와의 복잡한 관계성과 애증을 넘나드는 가족에게 배인 냄새에선 사회에 부여된 가정과 가장, 여성과 엄마가 가진 대표성은 무엇인지, 그 역할을 다시 묻는 계기를 마련한다. 허수경 시인의 시들을 추억하던 중 ‘자신과 허수경 시인이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착각한다며 귀엽게 시인하는 저자는, 결국 과거로 향하는 사람들은 냄새에 발 묶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을 향한 그리움과 애도를 담아 이야기한다.
책은 가장 동물적인 본능이기도 한 ‘맡는 행위’를 통해 이 땅에 깊게 자리한 혐오와 차별을 돌아보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코를 막는 행위 혹은 그러한 행위를 스스로 경계해본 자라면, 자신의 품을 파고들어 코를 박아본 자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의 나는 마늘의 알싸한 향 같은 것이 내 피부 어딘가에 깊숙이 배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주변 아시아인들이 겪은 후각적 혐오 경험들이 나를 움츠리게 했다. (…) 나는 내 몸에 코를 묻은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게서 냄새가 나나? 나를 탈취하고 또 탈취했다.” 저자의 경험은 냄새(후각)가 혐오와 차별의 속성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이러한 사례는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유대인의 악취를 핑계로 한 나치의 유대인 소각, 흔히 쓰이는 ‘사람 냄새’에 담긴 역차별적 행위 등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저자가 예리하게 포착해낸 순간들에 흠칫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 속에 일찍감치 자신을 포함시키곤 무지 속에서 행하는 차별 앞에 아닌 척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마음을 꺼내놓는다. “애초에 선한 마음이 타고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바닥의 얼룩을 청소하듯 차별과 편견의 선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왜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에 무슨 힘이 있다고
상처를 입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의 냄새 역시 사라지고 없다. 긴 내전 끝에 실종된 콜럼비아 시민들의 신발(도리스 살세도의 〈Atrabiliarios〉), 양신하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기록된 제주 4.3사건 속 이름 모를 고인의 뼈(노르웨이 출신 후각 연구자 시셀 톨라스는 이 일기장을 냄새로 변환했다). 저자는 끝내 냄새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이들을 애도한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문장 하나를 기억한다. ‘언어에 감정을 담으면 고통이 없어진다.’ 개인이 후각의 언어를 취득하는 방법은 냄새를 기억하는 일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의 주인이 현존하지 않아서, 기억할 냄새가 없어서, 결국엔 감정을 담을 언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특정 냄새엔 인간을 멈칫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결국 냄새를 기억하는 건 지나간 재난을 기억하기 위해서, 미래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앎의 노력, 기억뿐이라고.” 냄새를 잃은 이 작품들이 알려준 것들이다.
그리고 팩데믹 시대. 코로나19의 가장 큰 증상인 후각의 잃음은 밥 냄새, 자연 냄새, 누군가의 체취 등 좋아하는 냄새를 언제든 맡을 수 없다는 공포와 함께 그들을 향한 그리움을 더욱 쌓아올렸다. 저자는 미국의 사진 작가 찰리 잉그만의 AI 시리즈에서 팩데믹 시대의 후각이 시사하는 바를 발견한다. 껴안다 못해 서로 붙어버린 듯한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그리운 냄새를 찾아 파고들고 파고들다 하나가 된 모습과도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우리는 “상실 끝에 희망을 발견한다.”
고개를 들어 어느 존재의 냄새를 맡다보면,
잠수 끝에 눈부신 세상을 발견할지도
불면증을 앓던 저자의 냄새 탐구는 자신을 기른 것들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사회 구성원이자 인간,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감각과 책임을, 마지막으로 불완전하게 살던 저자의 몸과 마음을 비로소 돌보게 만들었다. 계절마다 숙제처럼 자신을 산책시키고, 고개를 뻗어 때죽나무, 아까시나무, 서양수수꽃다리에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냄새로 익혔다. 여름의 물비린내, 가을의 건조한 낙엽 냄새, 겨울 스웨터의 창백한 먼지 냄새를 맡으며 원인 불명의 목이 시린 증상도 어느덧 사라졌다. 저자는 이제는 어떤 날씨여도, 어떤 상황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울어진 갑판에서 나와 알린다. “잠수 끝에 발견한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냄새가 일러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