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어느 정신분석가의 트라우마 강의
세월호의 상처를 향한 정신분석의 애도
이 책은 정신분석교육기관인 프로이트라깡칼리지에서 2014년 5월 19일부터 진행한 ‘트라우마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재구성한 것이다. 강의가 처음 시작된 때는 바로 세월호가 침몰한 그 해 4월 16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다. 배의 유리창으로 희미하게 보이던 아이들,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배의 끝자락, 수색하는 구조선들… 그날 우리가 본 몇 개의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지위에 절대적 무력감을 느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할 필요가 있었다. 강의는 그런 시도로 기획되었고, 모든 애도의 출발점이 말하고 쓰는 과정에 있듯 이 책도 그렇게 쓰여졌다.
세월호 참사를 겪기 전까지 트라우마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서 맴도는 말이었지만, 이 비극적 사건 하나로 트라우마의 징후는 더욱 도드라져버렸다. 과연 세월호의 아픔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라깡 정신분석 전문가로 임상을 실천하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고민으로 트라우마의 본질과 실체를 더욱 명확히 규명하고자 했다.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프로이트와 라깡의 논리를 교차시키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가는 장면을 목격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과 그 희생의 현장에서 죽음을 간신히 모면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우리와 다르고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그들이 죽음의 시선과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후의 순간에 마주친 시선이 그들에겐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정부를 비난하며 책임을 덜어내는 것과 달리, 그들은 아무리 타자를 비난해도 자신의 책임을 덜어낼 수 없으며,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정신분석의 해석은 우리가 짐작도 하지 못할 그들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세월호 침몰 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사건이 왜 아직 진행 중인지, 왜 우리가 그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이란
이 책은 세월호 참사 너머로 트라우마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 더욱 깊이 탐구한다. 이 얇은 책을 읽다 보면 앞에서 한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는 순환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트라우마란 우리 정신으로 소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시선은 그것을 맴도는 우리 삶의 궤적들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 책의 논의 구조 역시 하나의 중심을 끊임없이 맴도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향해 치닫는 정신분석의 치밀한 사유가 돋보인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에게 삶은 절박하다. 트라우마에 의해 삶이 잠이 되거나, 아니면 불면에 빠져 죽음만이 성공이 되는 삶,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 이후의 삶, ‘비참함’이라는 이름의 삶이다.” ? 본문에서
저자는 트라우마를 입은 자들의 가혹한 운명을 말한다. 그 가혹한 운명이란 정신이 나약해지는 순간, 트라우마를 입었던 시점의 무기력한 상태로 상처 입은 그 상황에 다시 불려가는 것이다. 어째서 견딜 수 없는 그 상처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트라우마의 수수께끼에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변형시키고 불투명하게 하는지도 추적한다.
도대체 트라우마 이후 우리의 삶은 무엇이 될 수 있으며 우리 삶에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트라우마는 우리를 기억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 자신이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우리를 기억하고 유령처럼 기습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 유령을 만나는 것은 곧 애도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유령은 늘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것을 잊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놓아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마치 발목이 잡힌 듯 트라우마적인 장면으로 회귀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단순한 논의를 넘어 결국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
트라우마를 입은 자들의 과제, 다른 삶으로의 이행
트라우마는 우리가 가진 통념과 믿음이 해체되는 순간에 출현하는 일종의 균열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균열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가 믿어온 현실이 허구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기에 진정 우리가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 새롭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들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국가 시스템의 결핍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입으면 어떤 방식으로 증상이 생기는지, 트라우마를 입으면 왜 그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지, 우리는 어떻게 트라우마적인 장면으로 자꾸 되돌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는 똑같은 지점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공유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고유한 현실적인 것과 불가능한 것을 알고 궁극적으로 현실적인 것에 대한 주체의 포지션을 바꿔볼 것을 권한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트라우마는 우리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완전히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삶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강조한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란 단순한 생존이나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프로이트 커넥션’ 두 번째 책
≪트라우마 이후의 삶≫은 정신분석가 맹정현의 프로이트라깡주의 정신분석 시리즈 ‘프로이트 커넥션’의 두 번째 책이다. 우울의 본질을 탐구한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이 앞서 출간되었다.
무의식은 우리 안의 낯선 타자이며, 우리가 살아오면서 지워버렸지만 결국엔 우리의 현재 모습을 결정짓는 타자의 흔적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진정으로 타자와 분리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라 믿었던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벗어날 기회이자, 우리가 정신분석의 언어를 연마해야 할 이유다. ‘프로이트 커넥션’은 탄탄한 이론과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보다 명징한 언어로써 현대인에게 필요한 정신분석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