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80년대 급진노동정치’에 주목하는 이유
· 최근 ‘진보정치 10년 평가’만으로는 한계. 80년대 급진노동운동도 재평가해야.
· 80년대 이후 급진노동운동과 이론의 역사, 그 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고, 기존 논의들에 대한 비판과 재검토 시도.
· 80년대 급진노동운동에 대한 기존 논의는 ‘실증주의’와 ‘경험주의’에 경도됨.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지녔다고 전제하는 논의들은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을 과잉 격상시킨 후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못했다고 과잉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당.
·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은 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으나, 대중적인 정치적 헤게모니 구축에는 실패.
· 80년대 구로연대파업을 계기로 자신의 모습을 대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급진노동운동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해체와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의 출범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민주노총의 건설과정에서 결국 배제되면 그 역사적 역할을 일단락 짓고 다시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
· 최근 진보진영의 ‘진보의 재구성’, ‘좌파의 재구성’ 논의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포함해야, 기존 좌파의 한계와 오류 극복 가능.
·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는 물음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파탄하고 있는 현실에서 ‘좌파는 어떻게 새롭게 21세기 좌파로 거듭날 것인가?’의 물음.
‘진보정치 10년 평가’만으로는 부족. 80년대를 재평가해야
지난 2008년 초 민주노동당의 분화 이후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운동 10년 과정에 대한 평가’가,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진보정치 10년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진보 정치나 좌파 정치가 부딪히고 있는 지점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80년대 이후 30년간 좌파정치운동을 재평가해야 한다.
90년대 초반 이후, 80년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80년대는 필자의 표현대로라면 ‘질풍노도의 에피소드’로, 역사의 뒤편으로 내팽겨지거나 청산되어 버렸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상징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특히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은 10년 동안 이른바 386세대 일부에 의해 시대가 주도됐지만, 민주화세력의 실패로 인해 80년대 전반이 도매금으로 부정적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러한 평가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과도 다르다고 학술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과잉 격상, 과잉 비판
특히 필자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에 대한 기존의 평가들이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인 헤게모니를 지녔다”고 급진노동운동의 위상을 과잉 격상시킨 후에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과잉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80년대 등장한 급진 노동운동은 반파시스트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하고 자본의 지배에 반대하여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모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볼 때, 노동운동 내부에서 대중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행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초반 이후에 이루어진 ‘노동운동 위기논쟁’은 “80년대 중반 이후 형성된 서클 수준의 급진 노동운동이 현실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과잉평가하는 것을 통해 노동운동 일반으로부터 ‘계급적 노동정치’를 제거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혐의가 강한 기획”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연구에서 대표적인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를 비롯한 기존의 논자들은 대부분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에 강하게 경도되고 있었는데, 80년대 급진노동운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급진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이론과 실천의 역사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치밀하게 분석했다.
80년대 좌파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성찰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을 다시 불러내어 ‘미화’하거나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밝힌 것처럼,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 “80년대의 혁명은 왜 유산됐는가?”를 학술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80년대 좌파의 한계와 오류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다.
80년대의 시대정신은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등장한 신군부 정권에 맞선 ‘민주화’였다. 80년대 중반에 등장한 급진노동운동은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던 ‘민주화’의 문제를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민중의 민주주의’ 문제로까지 진전시키려고 했다.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는 이 과정을 이념과 실천 양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80년대 이후 급진노동운동과 이론의 역사, 그 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는 크게 3가지 주제에 대한 연구이다.
‘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 산발적으로 전개된 자유주의적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연구’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등장한 급진노동운동 연구’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하나의 진영을 형성한 대중적인 민주노조운동 연구’
결론적으로 필자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그것이 서클 혹은 지역단위의 정파수준이든, 아니면 연합운동체 수준이든 한국전쟁 이후에 전개된 자유주의적 운동들과 달리 자본과 공개적 독재체제에 의해 증폭된 모순이 최소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적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의해서는 극복될 수 없다는 점에 착목하고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정립하고 실천한 목적의식적인 조직적 운동”이었지만, “실천적으로 대중과의 교호통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지 못함으로써 자족성을 과잉심화”시켰고, 그 결과 “서클이나 정파들의 연대보다는 조직적 분열을 촉진”시킴으로써, 결국 “1991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분열과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출범을 계기로 대중운동과 분리되어 노동조합운동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위기 시대, ‘좌파는 어떻게 21세기 좌파로 될 것인가?’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갖는 오류와 한계에 대한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이론과 실천의 수준에서 민주주의와 그 운동의 지평을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필자는 “한국 전쟁 이후 국제 냉전질서와 맞물려 지속된 보수독점적 이론지형과 정치지형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 최초의 목적의식적인 집단적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위상과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단지 한때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새로운 대안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민중-민족적 헤게모니를 확보, 구사해야 하는 장기적 임무”에 직면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위기가 전면화되는 시기에 ‘좌파적 전망’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경험, 그 역사적 위상과 존재 의의, 그리고 한계와 오류를 다시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미국”, “시장이 신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 때”, “금융위기 극복의 댓가는 미제국의 종말” …….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를 출발로 세계 경제는 예측할 수 없는 공황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70년대 이후 전 세계 경제를 주도해왔던 이른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현실에서 실패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처방이 제출되고 있고, ‘좌파적인 대안’ 역시 이제 현실적 대안으로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
21세기 좌파는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