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저자 이삼성(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이 전후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의 구조에 관한 우리 자신의 독자적인 아시아적 전망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이 질서에 대한 대안적 개념화를 추구해온 지난 20년간의 지성사적 오디세이다.
이삼성 교수는 동아시아에 대해 유럽과 마찬가지로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으로 논하거나 또는 북방삼각-남방삼각의 대립이라는 식의 다분히 평면적인 도식에 근거한 상투적인 논의들을 넘어선다. 그래서 동아시아 질서가 내포한 질곡의 구조에 대한 더 포괄적이고 더 깊은 개념화를 시도한다. 저자는 전후 세계와의 수평적 연관성과 함께 20세기 전체에 걸친 동아시아의 역사적 조건과의 수직적 연결을 또한 그 개념 속에 담아낸다.
대분단체제론은 먼저 중국대륙과 미일동맹의 대립을 가리키는 ‘대분단의 기축’과 복수의 ‘소분단체제’들로 이루어진 구조의 중층성을 주목한다. 이어 대분단의 기축을 구성하는 긴장의 다차원성―지정학적 긴장,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긴장, 그리고 역사심리적 긴장―을 정의한다. 또한 그렇게 중층적이고 다차원적인 구성단위들 사이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성에 착목한다. 이로써 전후 동아시아 질서가 내포한 고유성과 그것이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 21세기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개념화한 것이다. 아울러 그 구조와 내용이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닫힌 질곡의 구조를 극복할 출구는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 땅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사유와 담론은 대개 한국과 미국의 동맹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미국의 어깨, 더 구체적으로는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어깨에 얹혀서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세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해 있다. 정작 한반도의 가까운 환경인 동아시아와 그 사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피상적 수준에 안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리의 한반도 담론이 동아시아를 건너뛰어 영미권 대표 지식인들이 설파하는 세계질서 차원의 논의로 직결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우리의 전쟁과 평화의 동아시아적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사유의 틀에 대한 저자의 깊은 갈증을 반영한다.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역사적 성격을 냉전-탈냉전의 문제와 전적으로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총체적이고 풍부한 방식으로 개념화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저자는 고민했다.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전체상에 대한 개념화를 위한 저자의 시도는 다른 한편으로는 2009년에 출간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에서 보이듯 전후뿐만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 전통시대 2천 년의 동아시아질서의 전체상에 대한 재개념화 작업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그런 의미에서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동아시아질서의 전체상에 대한 이삼성 교수의 독자적인 개념화 작업의 대단원이라고 할 수 있다.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란 무엇인가
저자는 전후 세계의 처음부터 동아시아가 유럽에 대해서 가진 고유성을 주목했다. 전후 유럽과 동아시아 질서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유럽의 전후는 지역 내 열강들 사이 처절한 전쟁의 상처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두 개의 대립적인 초국적 이념공동체들 속에서 치유되는 질서였다. 반면에 전후 동아시아는 과거 제국체제하의 침략전쟁과 식민주의의 상처가 응결되고 확대 및 재생산되는 질서였다. 동아시아 제국체제가 청일전쟁, 미국-필리핀전쟁, 그리고 러일전쟁이라는 세 전쟁의 결과로 성립했다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그 제국체제의 유산을 기반으로 하면서, 태평양전쟁, 중국 내전,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세 전쟁의 결과로 완성되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시점에 아시아의 신흥제국들로 동시에 등극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연합이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제국체제의 근간을 이룬다. 두 제국은 러시아의 중국 진출을 견제하며 거대 중국의 혼란과 민족주의를 견제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한편 갈등하면서 다른 한편 권력정치적 흥정으로 협력하는 제국주의 카르텔을 구성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1945년 8월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라는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은 근대 100년에 걸친 미일관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이미지들로 작용해왔다. 미일관계는 결국 전쟁으로 가기 위한 갈등 심화의 과정이라는 굴절된 인식이었다. 그로써 일본과의 연합이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근저였다는 사실은 쉽게 가려진다.
태평양전쟁은 제국체제를 지탱하던 미일연합 붕괴의 결과였지만, 이 전쟁의 결과는 역설적으로 미일 제국주의 연합을 더 완벽한 동맹으로 재탄생시킨다. 전후 중국에서 전개된 내전과 그 결과는 제국체제에서 미일연합이 반식민지로 공동경영하는 대상이던 중국을 공동의 지정학적·가상적으로 전환시킨다.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건설한 신중국과 ‘적어도 전쟁은 하지 않는 공존의 관계’를 구성할 외교승인을 거부한다. 이로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원형’이 구성되고, 그러한 역사적 기회의 폐쇄가 한국전쟁의 기본조건을 마련했다. 한국전쟁은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3차원적 긴장을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내며, 동시에 한반도와 타이완해협,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소분단체제들을 고착시킨다. 세 개의 전쟁의 조합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완성시켰다고 말하는 이유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는 처음부터 유럽과 달리 미소관계가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었고, 오히려 중미관계가 최종심급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지정학적 정체성을 결정한 것 역시 중소관계보다는 중국 사회 내면의 동학과 선택이었다. 저자가 대분단체제 기축관계로 정의하는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 지정학적 긴장,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긴장, 그리고 역사심리적 긴장은 탈냉전의 동아시아에서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으로 치환되고 재충전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소련과 달리 국력의 팽창을 가져온다. 지정학적 긴장은 이념의 함수가 아니라 국력의 함수다.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 지정학적 긴장은 재충전된다.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긴장도 재충전된다. 냉전기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긴장이었지만, 중국 사회주의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그 긴장은 약화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주변사회들의 민주화가 중국 톈안먼사태와 동시에 진행되면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긴장이 부상한다. 역사심리적 긴장도 재충전된다. 냉전기 동아시아에서 역사문제는 이념 담론에 눌려 동결된 채 내연하는 상태에 있었지만, 탈냉전으로 이념 담론이 퇴장하며 생긴 공백을 민족주의와 결합한 역사 담론이 대신한다. 이로 인한 역사심리적 긴장의 재충전은 단순히 중일 간의 문제가 아니다. 전범국가 일본을 ‘자유세계’라는 전후의 초국적 이념공동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명국으로 신분세탁을 시킴으로써 미국은 동아시아 역사문제를 ‘자기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2000년대 들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가 진화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제1국면에 속하는 21세기 첫 10년은 미일동맹이 한편으로 중국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통합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염두한 21세기형 군비경쟁을 주도하고 중국은 그에 대응하며 팽창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2010년을 전후해 진입하는 제2국면에서 미일동맹의 동아태 지역 해상패권은 위기에 직면하고, ‘아시아 재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미일동맹의 대중국 견제가 본격화한다.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봉쇄의 국면이다. 2010년대 후반에 시작되는 제3국면의 대분단체제에서는 미일동맹의 대중국 견제가 군사적인 지정학적 성격을 넘어 지경학적인 경제봉쇄 차원을 포괄하기에 이른다.
냉전기에 동아시아 대분단체제가 전 지구적 차원의 미소 냉전을 배경으로 전개되었다면, 2010년대 이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신냉전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그것에 의존하여 전개되고 있다. 1990년 시점에서 중국의 경제력은 러시아연방에 미치지 못했지만, 2020년대에 들어 러시아의 경제력은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게 된 것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