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VS. 현대사상가들’의 철학적 승부!
“우리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한편으로는 ‘헤겔 이후’의
사상가들이 헤겔 그 이상을 드러내고 헤겔을 넘어서고자 한다는
인상을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헤겔의 모습이 되살아 나타난다는 기묘한 느낌을 지니게 된다.”
도서출판 b가 야심차게 기획 발간하고 있는 ‘헤겔총서’의 11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나카마사 마사키 교수의 저서로, 이신철 선생이 번역한 <헤겔을 넘어서는 헤겔>(ヘーゲルを越えるヘーゲル, 講談社現代新書, 2018)이 그 책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헤겔 입문서 중 단연 독보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의 ‘정통’ 헤겔 입문서의 전형적인 구성이란 젊은 헤겔에 대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나 초기 헤겔의 그리스도교 신학과의 비판적 대결로부터 시작하여 대강 <정신현상학>(1807)→<논리의 학>(1821)→<역사 철학 강의>(1822~31)라는 순서로 헤겔의 체계가 점차 완성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연대기적 헤겔’이 아닌 ‘주제적 헤겔’을 택하고, ‘헤겔 자신의 완성’이 아닌 ‘현대 철학자들의 담론 속 헤겔’을 택하며, ‘유기적 헤겔’이 아닌 ‘해체적 헤겔’을 담는다. 다시 말해, 이 책은 20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철학 담론 속에 여전히 주요한 결절점으로 남아있는 헤겔의 여러 주제들, 곧 ‘역사의 종언’,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인정론’, ‘공동체론’, ‘역사를 보는 관점’ 등을 다룬다. 이러한 담론 주제들은 19세기 초에 헤겔이 던졌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우리가 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사유할 때 절대 건너뛸 수 없는 핵심적 주제이자 새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출발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의 ‘정통적이지 않은’ 구성은 오히려 실사구시적으로 헤겔에 접근하여 이 세계의 문제를 사고하는 데 유용한 ‘도구 상자’로서 헤겔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가 거대한 사상가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그들과 제대로 대면하기 위해 필수적인 태도이리라.
나카마사 교수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대철학자들만 해도 사실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만치 않은 이들이다. 맑스, 코제브, 벤야민, 가다머, 하이데거, 아렌트, 파농, 아도르노, 포퍼, 리오타르, 푸코, 라캉, 데리다, 하버마스, 테일러, 로티, 버틀러, 브랜덤, 지젝 등등이 헤겔과 연관하여 소개되고 있다. 당연히 이들 철학자들의 이론 전부를 자세히 소개한다는 것은 입문서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입문서라면 각 철학자의 헤겔과 연관된 이론을 정확히 선정하고, 그 이론의 핵심을 파악하고, 헤겔과의 연관성을 정확히 그려내고, 그것의 현대적 의미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해야 할 터이다. 나카마사 교수는 바로 그 일을 해낸다. 일본 가나자와대학 법학부 교수인 나카마사 마사키는 독일 근대철학에서 현대 자유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현대 철학의 다양한 흐름을 능란한 솜씨로 전달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탁월함을 가지고 있는 학자다. 그가 일본에서 펴낸 많은 ‘입문서’들은 이 점을 증명해 준다. 스스로 독창적 이론을 가진 철학자는 아니지만, 근현대 철학의 핵심을 파악해 이해 가능하게 전달해 주는 능력을 가진 학자가 바로 나카마사 교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철학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라면 어쩌면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철학이라는 험한 산을 등정하려면 가장 영리한 입문 가이드가 필수적인 셈이다. 이 책은 헤겔에 대한 바로 그러한 입문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박사급 전문 철학 연구자보다는, 철학에 관심 있는 학부생, 철학이라는 산의 등정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철학을 통해 제대로 된 교양을 쌓으려는 대중에게 가장 알맞아 보인다.
그동안 도서출판 b의 ‘헤겔총서’는 헤겔의 원전에서부터 독일, 미국, 일본의 저명한 헤겔 연구자들이 쓴 독보적 연구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여왔다. ‘헤겔총서’ 1번 바이저의 <헤겔>이 ‘정통적’ 헤겔 입문서라면 나카마사 마사키의 <헤겔을 넘어선 헤겔>은 다른 철학자들을 거쳐 다시 만난 헤겔을 소개하는 ‘비정통적 도구 상자’로서의 헤겔 입문서다. 헤겔에 관심이 있는 모두가 반드시 소장해야 할 진정 유용한 도구상자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