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관한 첫 구술기록집 《노무현의 시작》
1980년대,
‘시민 노무현’의 탄생에 관한 가장 뜨거운 책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015년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노 대통령 사료편찬사업을 본격 추진한 지 5년째에 접어든 해입니다. 《노무현의 시작》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사료편찬사업의 일환으로 펴내는 첫 책입니다. ‘시민 노무현’의 시작에 관한 생생한 증언록이자, 깨어 있는 시민의 시작을 알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각별한 이 책이 많은 시민의 가슴속에 공명하길 기대합니다.
_이해찬(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구술자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기억, 그들의 이야기는 1980년대 변화와 열정의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는 노무현의 어떤 ‘원형질’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저항,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과 연대 등으로 표현되는 보편의 가치에 맞닿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구술을 직접 기록한 경험을 가진 저에게도 《노무현의 시작》이 새롭고 반가운 이유입니다.
_윤태영(노무현사료연구센터장,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1. 왜 《노무현의 시작》인가
이 책 《노무현의 시작》은 잘나가던 세속의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으로 변모해간 1980년대 노무현에 관한 첫 구술기록집이다.
노무현은 1981년 9월 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1978년 5월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3년을 넘긴 때였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의 1부 ‘출세’ 마지막 쪽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 운명을 바꾸었던 ‘그 사건’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판사로 변호사로 사는 동안 애써 억눌러 왔던 내면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다.(71쪽)
《운명이다》 2부 ‘꿈’에서는 부림사건을 시작으로 1988년 4월 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열아홉 쪽에 걸쳐 기술하고 있다. 다음은 그중 한 대목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열정의 시기를 맞았다. 나는 막 학생운동에 뛰어든 청년처럼 민주화투쟁에 몰입했다.(85쪽)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현대사는 물론 노무현의 일생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장 뜨거웠던 열정의 시기’의 공적·사적 면모와 사건을 열아홉 쪽이라는 분량에 다 기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몇 개의 문장으로 다 담지 못한 혹은 문단과 문단 사이의 건너뛸 수밖에 없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 1981년 부림사건 변론 전후부터 1987년 6월항쟁을 관통하기까지 ‘변호인 노무현’의 면모와 궤적을 관계자들의 구술(口述)로 담았다.
2. 《노무현의 시작》, 기억과 기록 사이를 메우다
《노무현의 시작》은 1978년 변호사 개업에서 시작하여 1987년에 이르기까지, 만 32세에서 41세가 되는 동안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길을 걸었는지 몇 줄의 기술이 아닌 좀 더 풍부한 구술을 통해 조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구술자들을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주화투쟁 현장에서’ ‘노동 현장에서’의 세 지점으로 분류했다. 언급되는 사례가 겹치기도 하지만 중심적인 부분은 각각의 지점에 기대어 있다. 예컨대 1장 ‘변호사 사무실에서’ 구술 가운데 부림사건 변론 전후 노무현의 변모 과정, 이후 사무실에서는 점점 얼굴 보기 힘들어지던 상황이 2장 ‘민주화투쟁 현장에서’를 통해 더욱 상세히 거론된다. 1장과 2장에 모두 등장하는 노동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한 활동은 3장 ‘노동 현장에서’ 구술의 중심이 된다.
해당 시기를 함께하거나 처음 인연을 맺었던 구술자들의 기억과 증언은 원본 텍스트로써 자서전 또는 생전에 노무현이 남긴 말과 글에 풍성함과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구술기록이 가지는 미덕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구술은 노 대통령의 생애와 시대를 풍성하고 생동감 있게 톺아보는 귀중한 사료이다. 주관적인 기억과 일정 수준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기록 사이 간극을 좁히고, 얽힌 부분을 풀어가는 일은 사료편찬사업의 소임이다. 사료 하나하나가 ‘노무현’이라는 큰 그림을 만드는 조각이라면, 구술을 중심으로 그 조각을 맞춰 변호인 노무현의 80년대를 그려낸 것이 《노무현의 시작》인 셈이다.
3. 노무현의 시작을 목격한 13인의 증언
노무현은 기록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자필기록과 구술기록을 많이 남겼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노무현의 시작》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열정의 시기’라 했던 ‘청년 노무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사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다행히 그와 인연을 맺었던 구술자들은 자신이 직접 접한 노무현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여기 《노무현의 시작》을 있게 해준 열세 명의 구술자들을 소개한다.
Ⅰ 변호사 사무실에서
■ 장원덕 - “이마에 주름살 세 개면, 이제 죽는 기라”
1978년 6월, 서른한 살 되던 해에 지인의 소개로 노무현을 찾았다. 1977년 9월부터 1978년 4월까지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일하다 그해 5월 부산에 갓 사무실을 차린 노무현 변호사의 직원이 됐다. ‘노변’의 초기 시절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1982년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거쳐 1995년 법무법인 부산으로 법인체제가 정착된 후에도 사무국장을 맡아 2014년까지 36년간 근무했다.
■ 최병두 - “유치장에서 주무시고 있더랍니다”
문을 연 지 4년이 된 1982년 8월,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다. 노무현의 부산상고 3년 후배다. 변호사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해 민주화운동을 거쳐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하기까지 과정을 접했다. 1989년 2월 사무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사무실 운영을 도맡았다.
■ 송병곤 - 두 번의 제안, “병곤아, 이 일 한번 해볼까?”
부산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송병곤은 1981년 벌어진 부림사건에 연루되어 피고인과 변호인으로 노무현을 만난다. 《여보, 나좀 도와줘》에는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고문을 당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처음엔 변호사인 나조차 믿으려 하질 않았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한창 피어나야 할 한 젊은이의 그 처참한 모습이란…’
출소 후 ‘함께 일하자’는 노무현의 제안으로 1984년 4월부터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노동법률상담소 실무를 담당하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련으로 1985년 말 사무실을 떠난다. 한 차례 더 구속을 겪은 후 1988년 문재인이 이끌던 노동법률상담소로 복귀했다. 2015년 현재까지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Ⅱ 민주화투쟁 현장에서
■ 고호석 - 부림사건, 한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
부산 대동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일 때 부림사건으로 강제 연행됐다. 변호인 접견실에서 노무현을 처음 만난다. 1983년 출소 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차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사무국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변’과 부산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1988년 교단으로 복귀한 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 등을 거쳐 현재는 부산시교육청 시민교육협의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노무현사료관에 일부를 공개한 그의 구술편집영상은 방문자 조회 수 1위를 기록 중이다.
■ 이호철 - 직접 운전하며 유인물 뿌리던 ‘야전사령관’
1982년 부림사건으로 구속된 후 법정에서 노무현을 처음 만났다. 1987년 6월항쟁 전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