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갑질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 사회에 성범죄와 성희롱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강제추행은 단지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욕망을 제어 못한 남성이 특수한 상황에서 여성에게 가하는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차별의식과 갑질이 성희롱과 추행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대부분은 그런 문제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은 단순히 남자의 손길, 눈길, 말에 예민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차별의식과 갑질이라는 괴물이 누구의 내면에서든 자라날 수 있으며, 그 괴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서로의 감정과 인권에 예민해져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성희롱과 성범죄에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가는 여성 변호사의 체험기
이은의 저자는 성희롱 피해를 극복하고 변호사라는 전문직으로 전환한 ‘행복한 생존자’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서 여성들이 흔히 겪는 일상의 차별이나 추행, 성폭력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30대까지는 언어희롱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40대 싱글 여성 변호사로 살아가는 지금은 “알 거 다 알잖아?!” “너도 그런 줄 알았지”라며 노골적인 성추행을 시도하는 남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저자의 생생한 체험기를 읽다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나이나 직업을 불문하고 여성들을 옭아매는 그물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은의 저자는 그런 현실 앞에서 좌절하거나 타협하는 대신 유쾌하게 싸우는 길을 택했고, 좀 더 많은 여성들이 함께 손잡을 때 그 그물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2030 여성들에게 건네는 열혈언니의 처방전
한때는 이은의 저자도 힘없는 피해자였다. 삼성과 싸우는 동안 강해지고 이기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 기술을 썩히기 아까워 변호사가 되었고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책을 썼다. 책에서 저자는 성희롱·성폭력 대처법보다 중요한 것은 삶에 임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연애, 결혼, 학교, 직장 등과 관련된 문제를 과연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있나, 애인이나 남편이 평생 나를 부양해주리라 믿고 있지는 않나, 지나치게 겸손하고 순응적이진 않은가 하는 물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 이은의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20, 30대 시절을 보낸 저자는 여자도 때론 허세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이 살벌한 사회에서 여성이 고단한 삶을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젊은 여성들이 유사시에 자기를 지키는 방법뿐 아니라 평상시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까지 언니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들려준다.
차별과 갑질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고발장
연예인 지망생인 20대 여성이 있었다. 해외 광고모델 일자리를 주겠다고 접근한 남자가 계약서를 쓰자며 데려간 모텔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한 여학생은 지도교수의 공동 연구자에게 강간을 당했다.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교수와 학교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을 뿐이다. 해외 출장 중 상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여성은 회사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출장 관행을 문제로 오히려 징계를 당했다. 차별과 갑질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은 또 어떤가. 타인의 외모에 대해 거리낌 없이 평가하는 습관이 차별로 이어지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망상이 추행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민해도 괜찮아』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애써 외면한 문제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다시 감지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각성을 촉발하는 죽비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