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이기 전부터 이미 술꾼이었다!
술에 취해 밤을 지새우는 주당들을 위한
유쾌한 주정뱅이 마크 포사이스의 ‘빅히스토리’
코로나19 이후 바뀐 음주 회식 문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술 사랑’은 여전히 커지고 있다. 2022년 국내 주류 출고량이 327만 킬로리터로 전년 대비 5.4%가 늘며 주류 시장이 활기를 띤 것이다. 사람들의 음주 문화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 취향에 맞게 술을 적당히, 다채롭게 마시는 것이 유행이다. 술을 사랑해 마지않는 위대한 술꾼들은 취함을 위해 다양한 주종을 가리지 않으니. 2023년 국내 위스키 수입량이 처음으로 3만 톤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부어라 마셔라’에 열광하던 애주가들은 이제 와인, 위스키, 전통주 등 여러 술을 배우며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술을 몇 병까지 마실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위스키 추천을 받고, 와인의 품종을 알아보고, 각각의 술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아보며 지식을 쌓는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하게 술을 마셔도 그 끝은 주정뱅이와 같으니, 몽롱한 기분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젠장, 우리는 왜 술을 마실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이 책을 펴기에 적절한 시기일 것이다.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좋은 술이 없는 곳에 좋은 삶이란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장자는 “술 마시는 꿈을 꾸는 사람은 아침이 밝으면 슬프다”라며 한탄했다. 술이 부르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에도 불구하고 술꾼들은 말과 시, 노래로 끝없이 술을 찬양했다. 취기에 기대 과거 주당들이 어떻게 술을 사랑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면, 저 술집 구석에서 당신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오는 마크 포사이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술꾼들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라면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테니 말이다.
작가이자 언론인, 편집인, 그리고 술자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사랑해 마지않는 재담꾼 마크 포사이스가 이번에는 쉬지 않고 마셔온 술꾼들의 세계로 풍덩 빠져든다. 선사시대 술 취한 원숭이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의 만취 축제, 중세시대 선술집과 에일하우스, 서부시대 살룬의 풍경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진다. 어느 시대에서도 어떤 대륙에서도 술 마시기를 사랑했던 주정뱅이들의 역사를 재잘거리는 포사이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이들이 빚어낸 역사의 한 장면에 매료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좋아하는 술 한 잔을 곁에 두길 권한다. 흥미진진하고 알딸딸한 술꾼들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술을 입가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 여행』의 저자이자 『설득의 심리학』 등을 옮긴 번역가 임상훈이 이 책을 옮겼다. 포사이스식 유머와 말장난을 재치있게 풀어내는 것은 물론, 술에 대한 방대한 관심과 지식으로 술과 관련한 용어와 어원을 세심하게 번역했다. 본문에서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는 이야기는 옮긴이주로 사실을 더해 독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또 『사어사전』의 표지화를 맡은 작가이자 만화가 김태권이 책의 표지 그림을 그렸다.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 넣어 생동감을 더했다.
인류는 술을 어디서, 어떻게, 언제 마셨을까?
취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술을 향한 인류의 연대기
천만 년 전, 위대한 인류의 조상이 땅에 발을 디뎠다. 땅에 떨어져 발효된 과일의 당분과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이 술 취한 원숭이는 알코올을 분해하겠다는 일념으로 진화를 거듭해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 술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으며 인류는 언제나 취하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했다.
『주정뱅이 연대기』는 선사, 고대, 중세, 근대의 4부로 구성했다. 각각의 시대를 순서대로 지나며 술과 함께 나아간 인류의 역사를 재치있게 서술한다. 저자는 시대를 풍미했던 술꾼들의 문화사를 파헤치며 우리의 궁금증을 건드린다. 인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술을 마셨는가?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직 만취만을 위해 매년 모두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만취 축제를 벌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술에 잡아먹혀 이성을 잃지 않도록 계획적으로 술을 마시는 심포지엄을 열었으니, 언제나 해롱거리고 싶은 술꾼들에게는 재앙이었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연회였던 콘비비움은 현대의 술꾼들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경험일 수도 있다. 여러분은 제일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 최악의 요리를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콘비비움에서는 누구나 허영에 물들어 뻐기며 잘난 척을 했고,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인지, 끝까지 서열을 매기려 들었다. 이 자리는 재미있으려고 참석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지위에 속하는지를 파악하고,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을 찬양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조롱하기 위한 자리였다.
-「여덟째 잔 로마와 모욕의 술잔」, 119쪽 발췌
한편 중세 바이킹들은 원샷으로 용기를 시험했으며 술과 만취는 그들의 사회 그 자체였다. 영국의 에일하우스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여 제3의 장소를 만들었다. 보안관과 무법자가 결투를 벌이고 근사한 박쥐 모양 문이 있는 서부시대 살룬의 모습이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지! 저자는 이처럼 우리를 춤추게 하고, 통제하고, 모욕하고 유혹하는 변화무쌍한 음주의 역사를 찾아낸다. 술을 마시기 위한 인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역사책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으로 취기 어린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술은 언제부터 골칫덩이가 되었는가?
규제에도 돌파구를 찾았던 주정뱅이들의 투쟁기
음주의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는 법. 저자가 본문에서 말했듯, “수메르인들이 문명을 발명한 이후 문명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수메르 문명 이후의 역사는 “술에 대한 정부의 억압 정책, 술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술에 대한 전면적인 억압의 역사”(「옮긴이와 한잔」 중에서)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한 이래 음주 교정을 위한 정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 도시의 발달이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세기 인구 60만 명의 대도시 런던은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빈민들은 슬럼가에 모여 술로 현실을 잊었다. 그들에게 진은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고, 매우 싸면서, 겁나게 빨리 취할 수 있는 술이었다. 진 광풍의 시작이었다. 권력자들은 진에 세금을 매기고 높은 가격의 면허증을 발급했지만 취하고 싶은 그들의 광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규제를 피해 ‘야옹이 기계’에서 나오는 술을 마시려 모여든 사람들의 광경은 꽤 우스웠을 테지만, 지배계급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광풍은 지나갔다. 그러나 진은 잉글랜드 사회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지배계급은 도시 빈민을 매우 두려워하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빈민의 음주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이 촉발하는 빈민들의 무법성, 법에 대한 괄시, 폭도로 돌변할 가능성이 두려웠다. 진은 런던 길거리에 눈에 보이는 최하층을 출몰하게 만들었다.
-「열넷째 잔 런던을 휩쓴 진 광풍」, 226쪽 발췌
반면 러시아의 권력자들은 국민이 술을 마시지 않을까 끔찍하게 걱정했다. 이반뇌제는 러시아 모든 술집을 국영화해 국가 수입을 보드카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독재자 스탈린은 공포와 더불어 과음으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통치했다. 고위 간부들은 매일 밤 스탈린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인사불성으로 술을 마셔야 했다. 술은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서로 반목하게 했으며, 실수로 본심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스탈린이 축출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술을 거부한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잃었다. 니콜라이 로마노프가 그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랬다.
음주가 주는 여러 해악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와 함께한다. 저자는 이 모순적인 관계에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