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와 폭소를 감싸 안으며 이어지는 삶에 대한 확신
코미디언 김영철의 웃픈 휴먼 에세이
코미디언 김영철의 에세이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책 제목 《울다가 웃었다》는 웃음과 웃음 모두 삶의 소중한 자양분임을 뜻한다. 웃음을 아는 사람이 슬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고, 슬픔을 아는 사람이 웃음의 가치를 알 테니까. 라디오 DJ로서 청취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코미디언으로서 웃음에 깊이 천착한 연예인. 가장이자 동생이자 아들로 살아왔고, 친구로서 어깨를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오기도 한 보통의 생활자. 양 갈래의 길을 걸어온 그는, 눈물을 부끄럽지 않게 내비치며 호탕하게 웃기까지 기울여온 수많은 노력을 책 안에 담았다.
둘째 누나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날 있던 이야기로 이 책의 문을 열면서, “정말이지 인생은 웃음과 울음이 반복되는 코미디 같다. 눈물을 쏟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빵싯빵싯 웃는다”(11쪽)라고 썼다. 첫 꼭지〈곁에 없는 형을 만나는 꿈〉에서 하늘로 떠난 큰형에게 띄우는 편지를 공개하며, “가슴 한구석 설명할 수 없는 결핍으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20쪽) 큰형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슬픔은 입 밖으로 흘러나올 때 비로소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일까. 좋은 글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기준이 떠오르게 하지 않는 고백이 아닐까.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성분들
코끝 찡한 슬픔, 농담, 꿈 그리고 사람
슬픈 일 때문에, 어떤 농담 때문에, 꿈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리고 사람 때문에 우리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다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김영철이 쓴 49편의 글은 ‘웃음과 울음은 물과 기름처럼 나뉘는 게 아닌 한 권의 책처럼 묶여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늘 밝아 보이는 그에게도 슬픈 시절이 있었다. 장래를 고민하던 시절,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시절, 자존감이 곤두박질치던 시절을 통과하며 그는 단단해졌다.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고, 라디오 방송을 했고,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잘하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내가 몇 번 해보았던 것, 그나마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190쪽)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며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큰누나와 결혼한 매형을 ‘매형’이라 부르다 ‘형’이라 부르게 된 이유, 라디오 방송을 하다가 눈시울을 붉힌 에피소드, 최소한의 효도를 하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순간에도 아주 소량의 슬픔이 함께 있다”(36쪽)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세상의 잣대에 흔들릴 때 그를 붙잡아준 건 사람. 책 곳곳에는 그가 주눅 들 때 등을 두드려준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막막할 때 통찰력을 보여준 호동이 형, “단점보다 장점을 크게 봐주는”(211쪽) 은이 선배, 이따금 책 선물을 해주는 김지은 아나운서 등 동고동락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다감이 물들어 있다. 300회가 넘도록 매주 함께하는 〈아는 형님〉 멤버부터 유머러스한 유전자를 물려준 엄마까지,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인생은 좋은 사람과 어울려 살며 우러나온 것’임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 사람을 신중히 사귀고 소중히 여기며 “모두에게 미움받는 사람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없다. 미워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나 균형을 찾는다”(210쪽)라는 책 속 문장을 좇다 보면 인간관계에 지친 마음이 사뭇 단정해진다.
그의 삶을 성장시킨 요소 중 하나는 독서. 책을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다. 이따끔 지칠 때마다《월든》 속 문장을 되뇌고, 희망이 희미해질 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이야기를 떠올리며 힘을 내고, 틈날 때마다 동네 책방에 가서 양서를 찾는다. 꾸준히 탐독을 멈추지 않은 까닭일까. 계속 읽다 보면 언젠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일까. 말을 다뤄 온 그가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보다. 어느덧 그는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 글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하며, “유쾌한 수다쟁이인 동시에 자유로운 작가가 되기를”(98쪽) 소원한다.
평생 돼지꿈을 꾼 적 없다는 그에겐 오랜 꿈이 있다. “할리우드에 가서 미국 시트콤에 영철 킴이라는 이름을 새기고 싶은 꿈.”(165쪽) 매일 차근차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떻게 하면 힘든 기색도 없이 지치지 않고 명랑하게 아침 방송을 하느냐고.”(153쪽) 이에 “우선, 돈을 주면 아침에 눈을 뜨게 돼 있어!”(153쪽)라는 농담에 곁들어 “내가 라디오를 너무 사랑하는 까닭”(154쪽)이라고 답한다.
이렇듯 그는 밍밍한 일상에 떨어지는 식초 같은 농담을 소중히 여긴다. “적당한 선을 지킨 농담”(56쪽), “조금 부풀려진 귀여운 농담”(56쪽)으로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농담론은 퍽퍽한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대화의 필요성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슬픔에 무릎 꿇지 않고, 기쁨에 자만하지 않고,
나답게 매일을 살아가는 일
불행을 행복한 쪽으로 흘려보내는 그의 글은 의연하게 살기 위한 통찰로 빛난다. 출간을 앞두고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삶의 끝자락으로 몰린 누군가에게 그가 건넨 말을 들려주었다. “옥상에 올라가지 마. 땅으로 걸어 다녀.” 자칫 추락할 수 있는 사람이 땅이 발을 붙이고 다시 걸어가게 해주는 말이었다. 마치 그는 주머니 속에 울음과 웃음을 넣고 다니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때맞춰 둘 중 하나를 초콜릿처럼 꺼내며 슬며시 말을 거는 것 같다. 라디오 DJ로서 청취자들의 고민에 말을 고르며 답하고, 코미디언으로서 웃음을 깊이 탐구하는 태도가 몸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닫는 글〉에서 그는 ‘앞면과 뒷면’을 고찰하며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나의 앞모습은 “사랑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때론 싫어도 좋은 척하고, 우울해도 행복한 척 SNS에 사진을 올렸다. ‘좋아요’ 숫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240쪽) 나의 뒷모습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당당하고 솔직하고 너그럽고 따스한 사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아는 건 안다고 말하며, 잘난 척도 하고,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럴싸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 남이 나를 치켜세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은 이게 너무 힘들다. 그래도 겸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낸다.”(242~243쪽)
울음을 뺀 삶은 공허함만 남고, 웃음을 뺀 삶은 심각함만 남는다. 우는 날과 웃는 날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웃음과 울음의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울다가 웃었다》를 권한다. 서로의 삶에 기대어 사는 소중함, 반짝이는 눈물과 웃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