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

성 아우구스티누스
13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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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교부 문헌 총서'를 내면서 해제 서론 :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 Ⅰ. 『삼위일체론』의 집필 계기와 배경 1. 작품의 동기 2. 신앙과 이해 3. 집필 계획 4. 저술 대상 5. 집필 연대 6. 필사본과 번역 대본 Ⅱ.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 계시와 사변적 고찰 1.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느님' 2. 성자와 성령의 파견 3. 관계신학의 수립 Ⅲ. 인간 지성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1. 삼위일체 신비를 향한 철학적 착안 2. '인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 3. '더 분명한 삼위일체' Ⅳ. 그리스도, 삼위일체 신비에 접근하는 길 (1)그리스도 본위의 삼위일체론 (2)'사랑을 본다면 삼위일체를 뵙는 것이다' Ⅴ. 『삼위일체론』각 권 개요 본문과 역주 서문 제1권 _ 성경에 의거한 삼위일체 이성을 남용하여 신앙을 훼손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집필하다. 하느님에 대한 세 가지 오류 성경은 우리 지성으로 하여금 신적 사물로 상승하게 할 만한 종류의 언어를 일체 기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앙으로 양육됨으로써 신적인 사물들을 받아들이기에 유능해진다 저작의 계획과 목표 아우구스티누스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경건한 자세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를 예찬하는 사람들한테서 칭송받기보다는 허위를 질책하는 사람들에게서 비판받는 일을 낫게 여긴다 삼위일체에 관한 가톨릭 신앙의 교리 일부 인사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세 가지 의문 성자는 참하느님이시고 성부와 같은 실체이시다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은 삼위일체로서 불사불멸하신다 볼 수 없는 성자와 삼위일체 모든 것은 성자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성령은 참하느님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전적으로 동등하시다 종의 형상을 한 성자는 성부보다 낮고 성자 자신보다도 작다 성자는 인성을 취함으로써 성부께 굴복하셨다 성자께서 성부께 나라를 넘겨드린다고 해서 당신 나라를 잃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직관은 모든 활동의 궁극 목적으로서 우리에게 언약되어 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니 성령만으로도 우리 행복에 흡족하다 한 위격에 관해서 말하는 내용은 때때로 모든 위격들에 해당한다 삼위일체 전부가 우리 안에 머무신다 하느님에 대한 관상 믿는 이들을 관상으로 인도하고 나면 성자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위하여 중개하지 않으신다 성자가 성부와 같다거나 성부보다 더 작다는 성경 말씀을 알아듣는 준거 성자는 심판의 날을 모른다. 그 시점에 제자들에게 알리기로 작정하실 만큼 당신이 알지 못하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하느님의 형상으로는 다른 어법을, 종의 형상으로는 다른 어법을 쓴다 선택된 이들에게 성자 친히 영광을 마련하신다 어떻게 성자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시면서도 심판하신다는 말인가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의 뜻 하느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표현은 옳다 사람의 아들이 심판한다면서도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찌 된 것인가 사람의 아들을 뵙는 일은 악인들에게도 허용되지만 하느님의 형상을 뵙는 일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제2권 _ 구약성경의 신현神顯과 신약성경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위격들의 동등함 서언: 인간들의 오류 가운데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오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어법을 이해하는 준칙 삼중의 어법이 존재한다 성자에 관한 어떤 성경 구절은 어느 준거에 해당하는지 애매하게 되어 있다 성령도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로부터 발하셔서 말씀하신다는 표현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셨다고 해서 아버지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 성자와 성령이 파견을 받으셨다고 해서 더 작은 분들이 아니다 성자는 마리아에게 나심으로써 이 세상에 파견받아 오신 것이다 성자는 당신 자신에게서도 파견을 받았다 성령의 파견은 보이게 드러난 활동이다 <B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가운데 학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이라 일컫는 삼부작이 있다. 교부가 자기 인생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던 길을 묘사한 『고백록』, 인류가 구세사救世史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정리한 『신국론』, 그리고 인간이 자기 내면의 성찰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는 길을 분석한 『삼위일체론』이다. 이 책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사색은 다른 두 작품보다 훨씬 원숙하여 교부의 모든 신학서 가운데 단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책은 제1-7권의 전반부, 제8-15권의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성경에 근거한 삼위일체 신앙의 이론적 해설, 후반부는 인간 지성을 분석하여 당신 모상으로 그 지성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삼위일체 구조를 추정해 가는 철학적 논변이다. 특히 후반부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철학 일변도의 깊은 성찰과 분석을 담고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인간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출판사 서평] “그대가 사랑을 본다면 그대는 바로 삼위일체를 뵙는 것이다!” 집필 의도 통상 아우구스티누스가 책을 쓰는 것은 사목적 필요성 때문이거나 논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혹은 지인들의 요청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삼위일체론』만큼은 예외다.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그리스도교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신앙개조로 규정했으나 나머지는 교계와 학계의 논의에 맡겼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한 책을 따로 쓰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들의 저서를 읽고 싶지만, 삼위일체에 관한 라틴어 저서가 드물어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직접 펜대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스 교부들의 작품은 많으나 라틴어를 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큼 평이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묻는다. “성부는 하느님, 성자는 하느님, 성령은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세 하느님이라고 말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삼위의 대외적 활동이 세 위격의 불가분한 활동이라면 육화는 성자의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성자의 출생generatio과 성령의 발출processio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에서 삼위일체를 논구하는 의도는, 그리스도 예수와 그분의 영靈이 그리스도인들의 지성과 삶에 일으키는 변화가 오직 한 분 하느님의 활동임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생애 마지막에 내린 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사변적으로 이해시키려는 것이었다. 집필 대상 신앙의 첫걸음은 학문적 겸손이다. 이를 무시하면 지식에 대한 미숙한 사랑에 속기 쉽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의 증언을 토대로 삼위일체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 주려고 한다. 이성으로 확연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지성에 새겨진 삼위일체의 모상을 발견·분석하고, 덕스러운 삶으로 그 모상을 완성하라고 유도하면서 독자들을 삼위일체의 신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사실 유일신 사상 자체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당대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은 삼위일체 신비까지 접하면서 아리우스파의 논쟁에 말려드는 곤경에 처해 있었고, 로마제국의 지성인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읽을 만한 신학 지식을 갖추었으나 신플라톤 사상에 경도되어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信經을 이해하기 껄끄러웠다. 『삼위일체론』은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술된 책이다. ‘주제 이탈’처럼 보이는 긴 논변들이 나타나거나 지식과 지혜를 대조하는 논지도 이런 독자층을 설득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난해한 교리인 삼위일체에 관해 독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무릅쓰고 끝까지 사변적 탐구를 지속할 활력소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집필 연대 “젊어서 착수했는데 늙어서야 끝냈다”는 저자의 말대로, 집필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399년에 『삼위일체론』 집필에 착수했고, 부분 편집은 412년에 이루어졌으나 최종 편집은 420~421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워낙 방대한 작품이라 집필도 늦고 저자도 초고에 만족하지 못하여 간행할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참에, 작품을 하루 빨리 완성해 달라고 독촉하던 지인들은 저자 몰래 작품을 입수하여 복사하여 돌려 읽고 있었다. 저자는 그것에 화가 나서 오히려 탈고를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지인들, 특히 카르타고의 아우렐리우스 주교가 앞장서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달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아 집필 연대 추정이 쉽지 않고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론고』Retractationes는 시대순으로 작품을 열거하면서 수정을 가하지만, 간행 연대가 아닌 집필 착수 연대를 기준으로 한다. 『삼위일체론』은 399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입문자 교리교육』De catechizandis rudibus 바로 다음에 배치되어 있어서, 『삼위일체론』의 집필 착수는 399년, 즉 『고백록』 제13권의 집필 연대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그가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낸 서한은 412년의 것으로 보이는데, 자기가 『삼위일체론』 처음 열두 권을 탈고했다면서 지인들이 그것을 입수하려고 시도했지만 자기 수중에 잘 간수하고 있노라는 말이 거기에 나온다. 즉, 412년까지는 적어도 책 전체가 간행되지는 않았다. 또 415년의 편지에도 “집필하기에도 매우 힘들고 알아들을 사람도 소수여서 오래전부터 손에 두고서 완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구절이 있어 그때도 책은 탈고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 책의 최종 편집은 최종 보충(제12권의 일부와 제13-15권)을 한 다음, 전에 없던 서언praefatio을 처음 몇 권에 첨가하고 전반적으로 손질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는 이 책 제15권에서 인용하는 『요한 복음 강해』Tractatus in Ioannis Evangelium ‘강해 99’ 이후에 해당하고 『신국론』 제12권을 집필한 다음이기도 하다. 『요한 복음 강해』 99를 설교한 날짜도, 『신국론』 제12권의 집필 시기도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재론고』를 쓴 것이 426년에서 427년이므로 『삼위일체론』의 최종 편집은 넓게 잡아 420년에서 426년 사이가 된다. 『삼위일체론』의 구성 제1권에서는 성경에 준거하여 삼위일체의 단일함과 동등함을 증명한다. 제2권, 제3권 그리고 제4권에서는 같은 삼위일체를 논하되,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관하여 진지하게 다루면서 세 권의 책을 이룬다. 제3권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여러 위격들의 파견을 상론하면서 피조물인 천사의 역할이 있었는지 따져 본다. 제4권은 ‘그리스도론’에 해당하며, 삼위일체의 구세경륜에서 그리스도의 중개 역할을 강조하는 데 핵심이 있다. 제5권은 ‘관계’의 범주를 차용하여 아리우스파를 논박하는 토론에 해당한다. 제6권은 삼위의 완전한 동등에 관해 아리우스파가 제기한 문제를 다루는데, 언어학적 관점에서 어떤 속성을 어느 위격에 귀속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제7권에서는 성삼위의 절대 속성의 단일성과 명칭을 다루면서,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제6권의 주제를 언어학과 논리학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제8권은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i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지성을 활용하여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제9권은 지성·인식·사랑에서 삼위일체의 모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제10권은 기억·이해·의지라는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계속한다. 제11권은 외적 인간의 삼위일체, 곧 감관의 유비를 다룬다. 제12권은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면서 인류사의 한 도정(원죄와 타락)을 ‘지성’에 연관시켜 해설한다. 제13권은 삼위일체라는 주제와 거리가 먼 그리스도론처럼 보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는 크게 기여한다.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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