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을 잇는 문화의 연결고리 면발의 재발견!”
삼국을 대표하는 짜장면, 라멘, 우육면의 뿌리는 라미엔 곧 복산 랍면拉麵이다
국수 가락처럼 이어지는 일상 속의 동아시아 문화사 여행
짜장면이 왜 라면拉麵인가? 궁금하다면 먼저 짜장면이라는 단어부터 풀어보아야 한다. 짜장면은 본디 중국 북경과 산동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한자로는 炸醬麵작장면(짜장미앤)이라 표기하는데, 여기서 작炸은 센 불에 폭약이 터지듯 볶아내는 중화요리의 화후 기법 중 하나를 뜻하고 장醬은 달큰한 첨장甛醬을 말한다. 그러니 면(국수) 위에 볶은(炸) 장(甛醬)을 얹고 제철 채소와 함께 비벼먹는 음식이 곧 짜장미엔이다. 이때 장에 비벼먹는 국수[麵條]는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이나 메밀면처럼 눌러 뽑아내는 압출면이 아니라 손으로 반죽을 치대고 쳐서 길게 잡아 늘여(拉, 抻) 만드는 면이라고 해서 신면抻麵 또는 랍면拉麵이라고 한다. 이 랍면의 중국어 발음이 라미앤lāmiàn이고 이를 외래어로 그대로 차용한 일본어로는 라-멘ラーメン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의 면(국수)도 그러니 그 정체가 실은 라미엔이되, 종래의 우리식 한자 발음대로 읽는다면, 랍면이라 해야 옳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한국의 라면은 발음과 표기상 일종의 하이브리드(혼종), 다시 말해 중국어와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짬뽕’이란 것이다.
짜장면을 구성하는 식재료들이 아무렇게나 합쳐져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이른바 궁합, 혹은 오미의 조화에 기초하여 디자인된 것을 알고 먹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오이는 쓰고 파는 매우며, 밀가루와 춘장은 달고 짜다. 따라서 신맛이 빠져 있다. 이들 다섯 가지 맛의 어우러짐을 조화라 부른다. 서로 상반상생하면서 이루어진다. 이걸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면 전쟁의 반대말, 곧 평화가 된다. 짜장면은 평화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의 통일을 일컬어 ‘김치식 통일’이어야 하리라고 설파한 한 시인의 말을 떠올리면서 ‘짜장면식 평화’로 해도 말이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이다.
“짜장면이나 라면을 오래 먹으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김훈(소설가)
짜장면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은 하루 소비량이 물경 700만 그릇에 이른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그런데 이 짜장면이라는 국민메뉴를 중국집 식탁에 올려놓고 시식하던 어느 날, 자리를 함께 한 일행 가운데 하나는 짬뽕을, 다른 하나는 우동을 나머지 하나는 울면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짜장면, 짬뽕, 우동, 울면이라…. 거기에 다꾸앙(혹자는 단무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윽박지르기도 하지만)이라면…. 한중일이 그야말로 ‘짬뽕’이 되어 식탁에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이들 메뉴들의 국적과 정체성이야말로 동아시아 판도를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짜장면으로 말할라치면 이 메뉴가 중국에서 건너온 박래舶來(배를 타고 건너온) 음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시피 하지만, 우동이라는 메뉴는 약간은 기괴하다면 기괴하다. 무슨 말인가. 우선 분식센터에서 먹는 우동과 중국집 우동은 달라도 한참 다르니 말이다. 중국집 냉면과 한국 냉면이 천양지판이듯이.
우동이라는 메뉴의 일본어 이름 うどん은, 일본의 1세대 중국문학자인 아오키 마사루靑木正兒 교수가 밝힌 바 있듯이, 그 원어가 중국어 온돈饂飩인데 이것이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일본어로 우동うどん으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이 이름이 다시 중국으로 재이주하면서 오동면烏冬面(대륙), 혹은 오룡면烏龍面(대만)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런 식의 정체성 굴절과 왜곡을 가리켜 이른바 유식한 서양말로 하이브리드(혼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짬뽕도 그런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소맥이니 막소니 하여 닥치는 대로 섞어 마시는 게 시정의 술꾼들 관행이 되다시피 하였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술을 이렇게 섞어 마시는 것을 ‘짬뽕’이라고 일컬으며 그닥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튿날 골이 팬다느니 뒷골이 쑤신다느니 하며 내키지 않아 한 걸로 기억한다. 이런 사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짬뽕이라는 단어를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 뒤지면 나가사키 짬뽕의 설명 이외에 별도로 칵테일, 다시 말해 술에 음료를 섞는 주종을 일컬어 짬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나가사키 짬뽕이라는 메뉴의 개발자인 진평순이라는 화교의 출신지인 중국의 푸지엔(복건)에서는 ‘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중국어 ‘츠판’을 그곳 사투리로 ‘셋뽕’이라 발음하는데 이것이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는 데다가, 이 메뉴가 푸지엔福建 건너 타이완으로 다시 재이주하면 强棒面챵방미엔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는 사실이 더해진다. 그야말로 혼돈이고 짬뽕이다. 이런 이주와 재이주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자면 무궁무진이라고 하기는 뭣해도 허다하다는 언사는 너끈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내가 짜장면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짬뽕 같은 이들 메뉴에도 동아시아의 현재 실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으니 오해와 몰이해, 왜곡과 와전 등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명색이 석사논문이랍시고 쓴 것이 중국 좌익 문인단체인 좌익작가연맹의 문예대중화론이었다. 그런데 문예대중화론이라는 논쟁이 중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벌어진 논쟁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대강 아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시동이 걸려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마지막으로 이 논쟁을 받아준 곳이 중국 문단이었는데, 결과는 천양지판으로 끝났다는 것이 내 소견이다. 한일 양국의 문단에서는 지식분자들의 말잔치로 시들어 버리고 말았으나, 중국의 경우는 제일 막차를 타고 논쟁이 벌어졌음에도 문예대중화논쟁으로부터 대중어논쟁으로 비화되어 모택동의 〈문예강화〉와 ‘군중노선’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결말을 보고 만 것이다.
짜장면 이야기를 하면서 웬 동아시아론에 대중화론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다. 짜장면을 알고 먹자면 짬뽕과 우동 거기에 울면을 모르고 먹을 수 없고, 이들 메뉴를 먹다보면 자연스럽게 식탁의 판도가 동아시아로 넓어질 수밖에 없으며, 동아시아론이 지식분자의 담론 테이블에 얹힌 담론, 곧 담론을 위한 ’고담준론‘에서 벗어나자면, 그리하여 이 동아시아론이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내다보는 지경에 이르러 유라시아 담론과 더불어 다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본다면, 짜장면을 위시한 울면, 우동, 짬뽕 등등의 메뉴로부터 확장해서 비빔밥을 거쳐 볶음밥을 먹으면서 그 메뉴들로 동아시아라는 식탁 위에 새로운 상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하루 소비량 700만 그릇의 짜장면, 일본에서 우동과 소바를 젖히고 국수류의 지존 자리를 차지한 라멘(난킹소바→중화라멘), 더 나아가 중국 내 프랜차이즈 점포 수가 지구 위 맥도날드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프랜차이즈 점포 수를 합한 것보다 많다는 중국의 란주 라미엔은 그만큼 대중적이고 일상적이며 근친지간의 메뉴들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늘 먹는 이들 국수류야말로 일상 속 동아시아론의 검토대상일 수 있겠다.
작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독도니 조어도니 하는 문제로 들어갔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고 피차 자존심만 상하기 십상이다. 당장 끝판이 나서 해결이 될 성 싶지 않은 시빗거리는 훗날의 과제로 남겨두고 해결 가능한 다른 문제로부터 시작하자는 것, 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이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이번에 새삼 다시금 보게 된 것이 음식의 힘이다. 남북이 오랜 만에 판문점에서 만나 극적인 해후를 하는 장면에서 위력을 발휘한 음식이 냉면 아닌가. 이 냉면이라는 국수는 실향민의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남한 사람 치고 누구나 즐겨먹지 않는 이가 없는 음식이다. 또한 평양냉면을 먹을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이 면을 가위로 잘라 먹는 일은 일종의 금기에 속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