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건축

쿠마 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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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쿠마 켄고가 ‘케인즈주의적 대규모 토목 공사 정책’과 스스로 ‘브랜드’가 된 스타 건축가들의 자기 복제로 괴물 덩어리가 된 건축에 대해 진중한 비판을 들려준다. 쿠마 켄고의 17편의 건축 에세이는 ‘예술’과 ‘경제’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 건축이 놓여야 하는 자리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행한다. 그는 ‘강한 건축’, ‘이기는 건축’ 대신 ‘약한 건축’, ‘지는 건축’, ‘부드러운 건축’이 가능한지를 묻고 또 묻는다. 루돌프 쉰들러, 데 스타일, 우치다 요시치카 등 기존의 건축 관련 책들에 등장하지 않는 ‘패자’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이 진중한 건축 비평의 흥미로운 덤이다.

<그부호> 웨스 앤더슨 감독

비주얼 마스터의 독보적 세계관

<페니키안 스킴> ·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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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부호> 웨스 앤더슨 감독

비주얼 마스터의 독보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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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 출판을 하면서 한국 전통문화와 나의 건축 프롤로그 건축, 고독한 괴물 덩어리 건축의 세 가지 숙명 / 건축의 규제와 과잉, 그리고 강정제 시책 / 케인스의 난폭한 마술 / 약자를 위한 건축이라는 속임수 / 욕망하는 건축에 부는 역풍 / 모든 건축은 불필요할까 모더니즘을 넘어 : 다시 보는 안도, 코르뷔지에, 미스 건축이 비평을 담는 속내 비평성, 투쟁의 핵심적 도구 / 제1차 세계대전과 새로운 건축가들의 등장 / 주택과 비평성과 헤게모니 전략 / 잃어버린 비평의 역동성 / 부담스러운 공동체성 / 비평의 강박에서 해방된 건축 공급자와 형식은 승리했는가 형식 대 자유, 그 오래된 대립 / 형식의 정점에서 나오는 표층과 변형 / 형식주의의 생존 모색 / 형식주의를 살린 포스트구조주의 /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열어젖힌 건축의 유동성, 그리고 한계 / 수요자의 자유 대 공급자의 형식, 그 지루한 변증법 / 시민 참여는 형식과 자유의 경계를 허물었나 / ‘이긴다’와 ‘진다’ 공공에서 개인으로, 안도 타다오라는 브랜드 건축 붐과 건축가의 곤경 / 안도 타다오, 공공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 단게 겐조, 공공 부문의 왕정복고 / 안도 타다오와 브랜드 그리고 버블 / 개발 붐과 브랜드 / 진정 건축가의 최대 위기일까 욕망, 건축과 세상을 나누는 마력 일본의 토지 신화와 버블 경제 / 건축을 상품화하는 광고업계 / 건축가를 부린 종합건설회사 / 오피스 빌딩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 유니버설 스페이스는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가 / 지대제는 20세기 도시를 지켜 냈는가 / 요동치는 모더니즘과 자본주의 /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디자인 / 끝나지 않은 건축의 상품화 / 건축과 세상이 조화를 이루는 법 데스타일이 코르뷔지에와 미스를 넘지 못한 이유 기하학과 무브망을 통합하는 딜레마 / 공간의 상대주의, 패러다임의 변화 / 데스타일의 성공 비결 / 코르뷔지에와 미스, 건축의 상품화 /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모더니즘의 승자 / 전쟁의 논리를 활용하지 못한 데스타일 권력과 거대 건축을 넘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로 민주주의 건축을 ; 루돌프 쉰들러 민주주의 건축 / 공간과 물질, 표층의 깊이 /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의 가능성 / 예술가 라이트와 쉰들러의 갈림길 / 민주적인 절차와 건축 사이의 간극 / 미디어에 무감했던 쉰들러 / 민주주의 건축과 웨스트 코스트 경쾌해지는 성 문화, 그리고 조립식 주택 좌절한 건축가를 위한 주택 설계 / 주택의 마력 / 새로운 성 문화와 조립식 주택 콘크리트의 시대 자유롭고 보편적인 콘크리트 / 목조건축물의 모호함 인클로저, 닫힌 도시와 건축 건축 프로젝트의 지연을 필요로 하는 사회 / 공공 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근대적 권력 / 인클로저의 숙명 / 인클로저의 한계와 오늘날 경제 위기 이념은 건축 상품을 구원할 수 있는가 ; 무라노 토고 양식주의자 무라노 토고 / 무라노 건축의 근대성 / 고전주의에 대한 무라노의 대응 / 이념의 결여, 무라노의 아르데코 건축 / 무라노와 스키야 / 무라노와 단게 겐조 / 건축이라는 상품과 교환가치 / 무라노에게 이념이 없는 이유 건축의 외부 변수들 건축 사진, 아름다움을 대체하다 진실을 왜곡하는 아름다움 / 건축 사진의 한계와 극복 도심에 알맞은 건축 표현이란 ; 미요시 드림센터 도심의 초라함 / 장소, 존재, 표상의 부조화 / 선형성에 대한 강박관념 / 분열의 자유로움 건축 예술과 민주주의의 갈등 ; 우치다 요시치카 왜곡된 모더니즘과 건축 / 예술로서의 일본 근대 건축 / 일본 근대 건축의 민주주의 / 콘크리트라는 악마와의 싸움 “집을 달라, 텔레비전을 보여 달라” ;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보편 논쟁의 시작 / 전후 일본에서 보편 논쟁의 흐름 / 건축에서 보편성과 특수성 논쟁 / 정치적 올바름과 비근대성 / 집을 달라, 텔레비전을 보여 달라 소녀와 행자 ;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사회파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 소녀와 행자, 사회성을 비웃다 현실 세계에 기생하는 가상 세계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 게임장 파칭코의 쾌감 / 컴퓨터 게임의 약점 극복 / 컴퓨터 게임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 모호해진 세계 에필로그 쿠마에 대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약한 건축 지는 건축 부드러운 건축 건축의 새로운 길을 찾는 진지한 탐색 바야흐로 21세기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건축 붐’에 휩싸여 있다. 헤이리와 파주출판단지는 일반인들도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는 건축 투어의 성지가 되었고, 렘 쿨하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작품이 대한민국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진 동대문운동장을 일거에 때려 부수고 그 자리에 자하 하디드의 건축 작품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그런 ‘건축 붐’의 가장 극명한 예일 것이다. 일본의 건축가(그 역시 세계적 건축가인) 쿠마 켄고의 <약한 건축>은 이러한 건축 붐에 휩싸여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묻지 않고 답하려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많은 건축 관련 책들이 승자들의 영웅담으로 채워지고(어떻게 예술가인 건축가는 클라이언트-시대와 불화하며 불후의 걸작을 남겼는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건축물들의 리스트로 채워지는 데 비해(우리가 보아야 할 경이로운 건축 작품들은 얼마나 많은가?), 쿠마 켄고는 ‘케인즈주의적 대규모 토목 공사 정책’과 스스로 ‘브랜드’가 된 스타 건축가들의 자기 복제로 괴물 덩어리가 된 건축에 대해 진중한 비판을 들려준다. 쿠마 켄고가 보기에 건축은 체험되어야 하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세기가 단지 ‘건축’의 유행이라는 차원을 넘어 ‘건축적’인 시대였다고 진단한다. 과도하게 시각에, 물질에 의존하고 결국 구심적이고, 구조적이고, 계층적이며, 안팎의 경계가 단절된 폐쇄적인 시스템, 그것이 근대를 지탱하는 ‘건축적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개별 건축물들은 미디어에 의해 ‘왜 건축인가’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의 의문들을 지운 채 단지 하나의 매끈한 ‘이미지’로 취급된다.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의 거장은 이런 미디어의 속성을 스스로 이용해 자신의 건축 작품 이미지에 태연히 손을 대 ‘불후의 걸작’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 놓여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오롯이 그 자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이 이런 건축가들의 목표였다. 쿠마 켄고의 17편의 건축 에세이는 ‘예술’과 ‘경제’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 건축이 놓여야 하는 자리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행한다. 그는 ‘강한 건축’ ‘이기는 건축’ 대신 ‘약한 건축’ ‘지는 건축’ ‘부드러운 건축’이 가능한지를 묻고 또 묻는다. 루돌프 쉰들러, 데 스타일, 우치다 요시치카 등 기존의 건축 관련 책들에 등장하지 않는 ‘패자’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이 진중한 건축 비평의 흥미로운 덤이다. [더 깊숙이 읽기] 왜 건축이 미움을 받는가? 건축은 분명 미움을 받아 당연하며,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크다’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대상 가운데 건축물만큼 큰 대상은 없다. 크기는 건축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건축의 정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크면 클수록 당연히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축을 하는 쪽,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인 건축주나 건축가는 많은 경우, 눈에 띄고 돋보이는 멋진 건축물을 목표로 하게 된다. 건축물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결과, 건축물은 점점 눈에거슬리게 되고, 점점 미움을 받게 된다. 건축이 미움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물질의 낭비이다. 건축물은 크기때문에 대량의 자원을 쓸 수밖에 없다. 건축은 터무니없이 물질을 낭비한다. 21세기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이제는 그 바닥이 보일 정도이다.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시대에 건축처럼 거대한 낭비를 한다면,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미움을 받는 이유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번 만들고 나면, 그 건축물은 간단하게 뜯어고치거나 부숴 버리기가 불가능하다. 간단하게 뜯어고치거나 부숴 버릴 수 있다면, 애당초 건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싫어지고 마음에 안 들게 되더라도, 대부분 인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통 건축물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길다. 죽기 전까지는 싫어도 꾹꾹 참아 가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실 20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축물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섬세하고 약한 인간의 신체에 비해 건축물은 훨씬 튼튼하고 긴 수명을 가진 듯 보인다. 인간의 짧은 수명과 무상함을 비웃으면서. 그 돌이킬 수 없는 뻔뻔스러움 때문에 ‘건축물의 회복불가능한 시간성’은 쓸데없이 더 미움을 산다. 이렇듯 건축은 생겨난 이래로 계속,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건축물의 절대적인 크기가 광활한 세상과 비교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면, 이러한 세 가지 숙명은 거꾸로 건축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크기, 낭비, 긴 수명을 꿈꾸며 건축물을 만들어 왔다. 물론 모두가 그러한 특권적인 존재인 건축물을 만들어 오지는 않았다.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강자’는 한정되어 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희소한 존재이다. 그 희소성 때문에 크기도 낭비도 긴 수명도 관대하게 봐줄 수 있었다. 케인스주의라는 마술 혹은 조잡한 사기극 앞서 이야기했듯이 건축의 가시적 크기, 물질 낭비의 규모 때문에 건축은 미움을 샀다. 그런데 케인스는 이러한 마이너스 요인을 경제 효과라는 플러스 요인으로 반전해 보였다. 마술이라고 불릴 만한 훌륭한 반전이었다. 케인스에게 건축은 낭비가 아니었고, 사회를 발전으로 이끄는 견실한 행위였다. 그래서 케인스는 “지폐 다발을 폐광에 넣어서 구멍을 메워 버리면 어떤가?”라는 그 유명한 제안을 영국 정부에 대해 도발적인 농담으로, 그리고 반은 진심으로 했다. 우선 지폐를 폐광에서꺼낼 때에도 일이 창출되고, 그 바람에 지폐를 사용하면 수요가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케인스에게 물질의 유한성, 에너지의 유한성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케인스는 건축을 낭비와 다른 무엇으로 생각했다기보다는, 낭비야말로 칭찬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초반에는 케인스 같은 지성을 가진 인간에게도 환경의 유한성이라는 개념은 희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낭비라는 개념 또한 그에게는 없었다. 케인스 정책의 과실로 이제는 들판에 버려져 있는 거대한 건축을 보면, 그 계산 방법의 조잡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케인스 추종자들은 실제 삶과 동떨어진 채 추상화된 난폭한 가설을 제시하고 조악한 계산을 해 왔다. 결국 무책임하게 버려진 거대 건축 같은, 조잡한 계산의 결과는 고스란히 현실로 되돌아와 남게 됐다. 그것이 바로 20세기에 학문, 과학이라고 불리던 것의 실체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구조물’은 그 같은 조잡한 계산의 위화감을 보기 좋게 예견하고 있는 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유치한 계산의 결과를 곧이곧대로 실재하는 물질에 적용하더니, 이제는 섬세한 현실 속에 돌연한 사고처럼 내팽개쳐지고 만 살풍경, 그 위화감을 사람들은 구조물이라고 부른다. 케인스 정책은 결국, 건축이 초래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반전하는, 혹은 플러스라고 그럴싸하게 속이기 위한 일종의 마술이나 사기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규모, 물질, 에너지의 문제에 대해 하나씩 착실하게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길은 선택되지 않았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얽혀 있는 현실과는 단절된 채 공중에 붕 떠 있는 ‘건축’이라는 존재를 임의로 상정해, 오셀로 게임처럼 한 번에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반전하는 속임수를 구사했다. 그러고는 이 단절된 ‘건축’ 주위에 발생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건축이라는 위험물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패배의 수사학이 존중받는다는 말은 공동체가 패쇄적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공동체가 개방적이어서 외부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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