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5회 ‘살아 있는 책’ 대상 수상작가의 포복절도 현대사회론
“웃다 보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
“결혼과 소비로 자기실현을 완성하라는 거짓말에서 드디어 해방!”
“어처구니없는데 다 말이 된다. 완전히 새롭다.”
―일본 아마존 한 줄 서평에서-
대학원을 수료한 후 한 학기에 겨우 한 강좌를 강의할 뿐인 서른두 살의 시간강사 구리하라 씨는 거의 수입이 없다. 당연히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과 원전폭발 상황에서 거북멜론빵 하나로 시작된 2년간의 연애로 인해 ‘결혼’이라는 엄청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의 뜻에 따라, 소득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일자리를 알아보고 책을 쓰고 박사논문 통과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정규직이나마 학원으로 강의까지 나가면서 기진맥진 상태가 된 어느 날,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밭에서 캔 거라며 고구마를 가져다준다. 구리하라 씨는 이미 동일본은 온통 세슘투성이이니 부모님께 고구마를 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자신 역시 어떤 것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는 시간강사이자 저술가이며 정치학자인 저자가 한 편집자의 권유로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전작 에세이이다. 앞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학생에게 임금을』에서도 알 수 있듯, 신자유주의 체제하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오늘의 상황을 끊임없이 회의하고 소시민적 저항으로 반기를 드는 그의 세계관이 보다 대중적인 글쓰기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인에게 차이고 논문심사는 미끄러지고 비정규직 학원강사로 출근하는 전차에서는 두들겨 맞고
세슘투성이 삶은 고구마 하나에 구원받은 한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족의 처절한 자기 고백!
“당신은 연구가 재미있다든가, 산책 삼아 데모에 갔다 온다든가, 돈을 쓰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가난뱅이들의 변명으로 들리고 기분까지 나빠져. 어른들은 모두 괴로운 일이 있어도 참고 돈을 벌고, 그것을 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거야. 가난뱅이는 싫어. 정말 싫다구.” _본문에서
결국 취직은커녕 박사논문까지 재심사로 밀리면서 애쓴 보람도 없이 구리하라 씨의 연애는 2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다. 실의에 빠진 구리하라 씨는 오스기 사카에와 그의 연인이자 아내였으며 걸출한 여성해방운동가였던 이토 노에, 에도시대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를 떠올린다.
수록된 14편의 에세이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을 전후로 하여 벌어진 개인적 체험들을 중심으로 쓰여진 글이다. 특히 위에 재구성하여 소개한 두 편의 에세이 「거북 모양 멜론빵과 나의 연애」와 「고구마 철학」 를 비롯 「미친 사회를 위한 화장실 사보타주」 등에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취직활동’과 ‘결혼활동’은 다시 ‘소비활동’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라는 프레임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평생 노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일관되게 이 프레임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호부조’의 정신을 되살려 남에게 폐 끼칠까 걱정 말고,
‘일하기 싫다’고 당당하게 선언해 보자!
내년부터 적용되는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 주 40시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한 한 달 임금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겨우’ 먹고살기도 힘든 오늘의 현실을 ‘8시간노동제’를 주장했던 1886년 미국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의 노동자들은 예상이나 했을까. 더 큰 문제는 시간당 얼마라는 이 기준이 우리의 삶을 계산하고 인간의 자격을 논하는 척도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오랫동안 인간을 지배해 온 의무이자 규범으로써 노동의 신격화에 일조했다. 나날이 더욱더 가혹한 형태로 진화하는 노동이라는 이 괴물에 언제까지 생을 저당잡혀 살아갈 것인가.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굴절된 반인간적 노동윤리에 반기를 든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일자리를 달라’ 대신, ‘우리는 일하기 싫다. 그러나 생활을 보장하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자고 말한다.
저자는 14편의 에세이를 통해 일관되게 노동과 소비로 만들어진 부채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8시간 노동제’나 ‘주5일근무’가 아닌 ‘노동 거부’ 즉 ‘노동 시간 제로’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세계적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 페미니스트 이토 노에 등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의 걸출한 사상가들의 흥미로운 일면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대신 함께 나누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 서로의 쓸모없음이 위로가 되고 가치가 되는 나라를 꿈꾸어 보자’는 옮긴이의 말이 영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