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나뉜 미국 문학의 판도를 바꾼 문제작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이야기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1952년 출간된 이래 걸작으로 극찬을 받으며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랠프 엘리슨의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 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0, 191)으로 출간되었다. 지속적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동시에 냉소적인 목소리를 잃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간> 은 흑백을 막론한, 소외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공통되는 고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 시대 최고의 대담하고 빛나는 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으로 엘리슨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며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평가되었다. 인종차별의 핵심을 뚫고 지나는 엘리슨의 악몽 같은 여정은 그 편협함의 본질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을 보여 주며 가해자와 희생자 모두의 마음속에 남는 지울 수 없는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때마침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건국 이래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143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백혼혈' 흑인으로서 흑인 사회에서조차 '가짜 흑인'으로 낙인 찍혀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오바마는 진정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전 세계가 오바마에게 주목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가 되는 상징적인 혁명을 이룩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목받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흑인 문학을 가시적인 미국 문학의 반열에 올린 수작
<보이지 않는 인간> 은 엘리슨이 뉴욕 할렘에서 생활하며 집필한 작품으로, 주인공인 흑인 소년이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통해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1930년대 학비를 벌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간 엘리슨은 그곳에서 흑인 문학계의 거장 랭스턴 휴즈를 만나고, 당시 「뉴 챌린지」의 편집장이던 리처드 라이트를 소개받는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미국의 경제와 산업이 황폐해지고 이에 따라 할렘 르네상스(흑인 문화 운동)도 재정 지원의 고갈로 그 힘을 잃어버린 시기였다. 다행히도 그는 뉴욕 연방 작가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흑인 사회의 풍속을 수집하고 기록하며 계속해서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리처드 라이트를 비롯한 당시 작가들과 친분을 맺으며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라이트의 권고를 받아 1945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한 엘리슨 생전의 유일한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 은 그동안 무시되어 온 흑인 문학을 가시적인 미국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1940년대까지의 많은 흑인 소설들은 흑인들이 받는 불평등한 대우에 대한 항의와 고발을 주제로 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부조리와 고난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흑인 문학은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채 고발, 항의, 증언의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여 왔다. 그러나 엘리슨은 “소설은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극적인 탐구”이며, 단순한 인종적 항변을 서술해서는 예술의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의와 고발보다는, 미국 흑인 주인공의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 어떻게 문학적 질서와 의미를 부여받아 예술로 전환되고 승화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역사가들은 덧없이 지나쳐 가는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나 있을까? 동지회를 알기 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말하자면 학문적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하고 소리에 가장 민감한 전문가조차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한 철새 같은 존재. 그리고 너무나 모호해서 가장 모호한 말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중심부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인은커녕 역사적인 서류에 사인을 한 사람에게 박수조차 보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존재들 말이다. 소설도, 역사도, 그리고 그 어떤 저술도 남기지 못하는 우리들. 우리는 어떻게 생각될까? (20장, 172쪽)
엘리슨은 자아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교육받은 흑인 주인공을 통해 사회적 곤경과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피부색의 문제만을 다룬 편협한 소설이 아닌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보편성을 갖는 우수한 작품을 창조했다. 그는 “인종주의를 배척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선택하여 인간의 고독과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표현”하려 했으며 작가로서 흑인 사회의 대변자 역할을 거부했다.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 의 주된 의미가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실험적 시도에 있다. 그리고 19세기 소설에 가장 잘 나타났던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인 책임의식을 찾아 되돌아가려는 시도에 있다.” 1953년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소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실험적 작업을 통해 기존의 흑인 문학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항의와 고발이라는 측면을 불식하고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의 반열에 자신의 문학을 올려놓고자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끈질긴 천착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는 인간> 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흑인 청년이다. 남북 전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기에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우월주의에 빠진 백인 사회에서 모멸감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에 존재하는지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타인들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받던 주인공은 백인들이 은혜를 베풀듯 보내 준 대학에서 사소한 실수로 퇴학을 당하고, 취업 추천을 해 주는 편지로 여겼던 총장의 추천서가 사실은 자신을 영원히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인정해 주는 곳이라 여겼던 할렘가의 동지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나는 평생 동안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어딜 가나 누군가는 내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려 했었다. 나는 보통 그들의 해답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 해답들이 서로 상반되고 심지어 자체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에게 묻고 다녔다. 나는 나 자신일 뿐 그 누구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을 법한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먼저 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1장, 28쪽)
엘리슨은 이름 없는 주인공을 통해 미국 내 흑인의 상황을 보여 주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흑인들은 피부색으로 인해 개성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지만, 세계대전 후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역시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처럼 엘리슨이 추구한 예술적 목표는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사적인 진실에 기초하여 보다 보편적이고 공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슨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십여 년이나 살고 난 후에야
책수레
4.0
이 책은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 미국에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고, 1960년대 이전까지는 흑인에 대한 인권 개념도 거의 없었다. 흑인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주인공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성공을 바라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성공을 위해서는 백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 없이 백인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무의미한 행동임을 깨닽게 된다. 위계가 엄격하고 분명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피지배계급은 자신의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에게 순종적인 사람들을 길러내고 현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제거하여 사회체제를 유지하려한다. 모든 사회적특권과 권력은 지배계급에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된다. ■줄거리 미국 남부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흑인)은 백인들이 좋아하는 연설을 잘한다는 이유로 백인들이 보내 준 흑인 대학교에 입학한다. 3학년(19살)이 끝날 무렵 학교를 방문한 학교설립 이사 노턴(백인)의 운전수 일을 맡았다가 백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흑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대학 총장 블레드소(흑인)에 의해 퇴학을 당한다. 주인공은 블레드소의 추천서를 가지고 학비를 벌기위해 뉴욕에 가지만 가는 곳마다 외면을 당하고, 추천서의 내용이 주인공을 영원히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임을 알게된다. 주인공은 할렘에서 우연한 기회에 강제퇴거 반대 연설을 하게되고, 능력을 인정받아 동지회에 참여한다. 피부색을 초월하여 사회정의 실현을 목표로하는 동지회에서 자신의 꿈(백인 중심 사회에서 출세하는)을 실현하려고 하지만 결국 동지회로부터도 버림받는다. 주인공은 사회의 모든 곳에서 보이지 않는(인격이 없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주인공을 대학에 보내준 백인들은 주인공을 단지 말 잘 듣는 인형 정도로 취급하고, 흑인 대학 총장인 블레드소는 주인공을 백인 사회에 충성스러운 학생으로, 일하러 간 뉴욕의 페인트 공장에서는 단지 공장의 부속품으로, 동지회에서는 위원회의 지시사항을 따르는 도구로 취급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그동안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음을 깨닽고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하면서 책은 끝난다. ■책에서 이 녀석은 이미 자신의 감정은 물론 인간성까지 억누르는 걸 배워 버렸네요. 이 녀석은 보이지 않으며, 살아 있는 소극성을 화신이고, 선생의 꿈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된 모습이요. 기계 인간! -1권 p137 그들은 자네를 보지 못할 걸세. 왜냐하면 그들은 자네가 무언가를 알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걸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다고 믿으니까....... -1권 p221 나는 '존재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었다. 나는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2권 p268 ◎참고 -1865년 12월 6일 미국 노예 제도 폐지 -1948년 군에서의 흑백 차별을 공식적으로 금지 -1955년 12월 1일, 버스에 올라탄 로자 파크스는 백인만 앉을 수 있는 맨 앞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운전사와 승객들이 자리를 옮기라고 말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로자 파크스는 곧 경찰에 체포되었다.몽고메리 거주 흑인들은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의 지도 아래 시내버스 안 타기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이 시내버스 타기를 거부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내와 교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영되었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와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로자 파크스 사건을 법의 심판대로 끌고 갔다. 이 미묘한 사건에 대해 연방 대법원은 1년 후 버스 내에서의 흑백 구별이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1963년 6월 11일 비비안 말론(Viovian Malone)과 제임스 후드(James Hood) 두 흑인 남녀학생들이 앨라바마 대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당시 주지사였던 조지 월러스가 두 학생의 등록을 막기 위해 학교 건물 앞에 서서 거부권을 행사하려 했으나, 당시 법무장관이자 존 F.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 장관이 니콜라스 카젠바흐 법무차관과 연방 대법관인 서굿 마셜을 파견해 학생들을 입학을 도왔다. 영화 검프>에도 등장하는 장면임. -1968년 4월 4일 마틴 루서 킹 목사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극우파 백인인 제임스 얼 레이에게 암살
최일섭
4.5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지엽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문제로 본격화 한 랠프 엘리슨의 대표작이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에게 묻고 다녔다. 나는 나 자신일 뿐 그 누구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을 법한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먼저 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보이지 않는 인간>에서 '나'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선 백인들이 그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미개한) 흑인 집단으로 보는 탓이다. 게다가 그런 취급을 받는 화자 역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꾸며진 모습을 통해 성공하려 한다. "자네는 대학의 3학년 학생이야! 목화밭에서 일하는 가장 멍청한 흑인 새끼조차도 백인을 즐겁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렇게 애쓸수록 그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된다. 소설 속에서 '나'는 처음에는 백인에게 인정받는 흑인이 되려 했다('배틀로열/연설', 인정투쟁). 하지만 그 길에 실망한 후에는 차별하는 백인과 대결한다(할렘 동지회). 그러나 두 방법 모두 진정한 '나'를 찾는 방법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20여 년이나 살고 난 후에야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비로소 살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랠리 엘리슨은 인종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각 개인의 주체성이 획득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집단 정체성을 넘어 단독성을 지닌 고유명들이 확보될 때 비로소 차별의 문제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중 스케일(인종, 성별, 세대, 종교, 정치적 견해 등)적 존재이기에 다양한 차이들이 진정한 나를 만든다. 이러한 지점을 잘 짚고 있기에 이 작품은 1900년대 초중반 미국의 흑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차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많은 부분들을 유지하게 만들라. 그러면 독재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여럿이 되는 것이다."
조선대학교 황지상 평론가
4.0
소외받은 인종이 어떻게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시작했는가
쇼쉐이
4.0
보지 않으려는 세상 속에서 보이기 위해 발버둥치던 한 존재의 애가.
John Doe
읽고싶어요
https://youtu.be/rT_XTYjK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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