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욘 포세 대표작 ․ 멜솜 문학상 수상작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욘 포세,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적이고 음악적인 문체로 묘파하는 인간의 삶과 생존투쟁, 그리고 죽음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가 욘 포세에게 주어졌다. “입센의 재래”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라 불리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활동하는 극작가 중 한 명으로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희곡 외에도 소설, 시, 에세이, 그림책, 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작품을 써왔고 세계 40여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작품은 군더더기를 극도로 제한하는 미니멀한 구성, 리얼리즘과 부조리주의 사이에서 표현되는 반복화법, 마침표를 배제하고 리듬감을 강조하는 특유의 시적이고 음악적인 문체를 통해 평범한 일상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문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예리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벅차고 다소 겁이 난다. 이 상은 무엇보다도 다른 이유 없이 문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_욘 포세(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직후 노르웨이 출판사 Samlaget와의 인터뷰에서)
“전화가 왔을 때,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놀라지 않기도 했다. 그 전화를 받은 건 큰 기쁨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노벨문학상) 논의의 대상이 되며, 나는 다소간 조심스럽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준비해왔다.” _욘 포세(노르웨이 공영방송 NRK와의 인터뷰)
욘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다.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발표 이후 현재까지 수십 편의 희곡을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렸고, ‘입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서 언어가 아닌 언어 사이, 그 침묵과 공백의 공간을 파고드는 실험적 형식으로 ‘21세기 베케트’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00년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출간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노르웨이어를 빛낸 가치 있는 작품’에 주어지는 멜솜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희곡보다 소설 쓰기에 더욱 집중할 것을 선언하고, 2014년 유럽 내 난민의 실상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이중적 면모를 비판한 연작소설 『3부작』(『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 2022년 장편소설 『7부작』(『I-II 다른 이름』 『III IV V 나는 또다른 사람』 『VI VII 새로운 이름』) 등을 발표했다.
1992년, 2003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노르웨이어로 쓰인 최고의 문학작품에 주어지는 뉘노르스크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스웨덴 한림원이 스웨덴과 노르웨이 소설에 수여하는 도블로우그상, 2003년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2005년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브라게상 명예상, 2007년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2010년 국제 입센상, 2015년 북유럽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3년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2005년 노르웨이 국왕이 내리는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살아 있는 100인의 천재’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포세의 작품은 당신의 가장 깊은 감정과 불안, 불안정성, 삶에 대한 고민, 죽음에 접근한다. 포세는 언어적으로, 지형적으로 강한 지역성을 모더니즘적 예술 기법과 결합해낸다. 그가 쓴 모든 것은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희곡, 시, 산문을 막론하고 그의 작품에는 휴머니즘에 대한 호소가 담겨 있다. _안데르스 올손(한림원 위원장)
탄생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로 포착한 전 생애의 디테일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_정여울(작가, 문학평론가)
바지런한 산파의 움직임, 산모의 고통어린 숨, 이제 곧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기대와 걱정. 소설은 노르웨이 해안마을 어딘가, 한 살림집에서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이 잘못되어 아내나 아이나 아내와 아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찬 남자의 내적 독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념은 분명 그들을 도와 온갖 나쁜 일로부터 구원해줄 신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 남자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처 단어가 되지 못한 외마디 모음과 뒤섞인 아내의 비명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초조한 시간은 끝난다. 그렇게,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장이 바뀌고 그사이 긴 시간이 흘러, 요한네스는 노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너무 외진 곳이었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이곳에 터전을 잡았고 고깃배를 타고 나가 생계를 꾸렸다. 아내도 친구도 곁을 떠난 지금, 적막하고 고독하기만 한 요한네스의 삶에서 근처에 사는 막내딸만이 의지처가 되어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의 하루가 막 시작된 참이다. 썰렁한 집안에서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별다른 기대가 없는 일상,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고 원래 그대로인데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듯하다. 늙은 몸도 무게가 거의 없는 듯이 가뿐하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 풍경이 어쩐지 너무 달라 보인다. 요한네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여하튼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달라진 것이 있어도, 그것은 아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할 것이다, 아니면 혹시 밖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을까? 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까, 대수로운 게 아니라도, 그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그저 뭔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히 달라 보이게 하는 그런 일이? 하지만 그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닌가? (본문 49p)
그리고 여느 때처럼 서쪽 만灣으로 산책을 나간 길에, 페테르를 만난다. 같이 배를 탔고 오십 년 넘게 서로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던 절친한 친구,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를. 여느 때처럼 위층 다락방에서 잠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던 아내가 집안의 불을 밝히고 기다리다 그를 위해 커피를 끓인다.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듯 지나가버린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지만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른 이날, 도대체 요한네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든 게 그저 그의 상상인가? 또 번호 없이 여백으로만 구분된 마지막 장에는 어떤 결말이 준비되어 있는가?
요한네스라는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요한네스라는 늙은 어부가 생의 마지막날을 맞이하려 한다. 이 양끝 사이의 삶은 요한네스의 착각이나 환각, 그리고 조각난 기억들로 채워진다. 죽은 자들이 숨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그 기억은 요한네스가 지나온 삶에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만들고, 확신했던 일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이렇듯 이야기 속에서 삶과 죽음이, 물질적 현실계와 형이상적 세계가 자연스레 겹친다. 시간 또한 선적으로 흐르지 않아서 현재와 과거가, 과거와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작품의 형식 또한 이를 구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쉼표로 잠시 침묵한 뒤 다음 문장으로 미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