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 작품 125점, 수록 화가 41명, 원고지 약 2천 매, 집필 기간 20년,
서울을 그린 현전하는 거의 모든 옛 그림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작
수록 작품 125점, 수록 화가 41 명, 원고지 약 2천 매, 집필 기간 20 년.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을 둘러싼 숫자의 의미다. 책 한 권의 탄생에 기여한 이 숫자들은 그 자체로 이 책이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말해준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16세기 작가 미상의 것으로부터 19세기 심전 안중식의 작품까지 약 125점에 달한다. 이 숫자만으로도 이미 서울을 그린 현전하는 그림의 총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조선미술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작품만 남기고 이름은 잊혀져 ‘미상’으로 남은 작가들까지 약 41명의 화가들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 앞에 작품을 펼쳐 보인다. 이러한 작가와 작품의 총망라의 주체가 다름아닌 미술사학자 최열이라는 점은 특히 눈여겨볼 지점이다.
한국미술사에서 미술사학자 최열의 이름은 빠질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주력 분야에 치중하는 것에 비해 최열은 조선 회화사에서부터 근현대미술사까지 시대와 분야의 구분없이 한국미술사 전반을 광폭으로 살피며 수십 년 미술사 연구의 현장에서 충실히 복무하며 그 결과물을 상재해왔다. 그런 그가 약 20여 년 동안 꾸준히 주목해온 것이 있으니, 바로 서울의 옛 풍경을 그린 조선 시대 화가들의 그림이다. 그가 그림을 주목한 방식은 어떤 것일까. 그에게 그림은 회화적 가치 그 이상이다. 평생 미술사를 공부해온 최열에게 그림은 회화라는 칸막이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은 곧 역사이며 사람이다. 그림을 통해 화가의 의도와 회화적 특징을 살피는 동시에 그림의 이면, 그림을 둘러싼 시대,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독자에게 갈무리해 전한다. 이를 위해 관련한 다양한 문헌과 시문이 활용되는데, 그가 아니라면 이러한 전방위적 학문의 경지를 독자들은 과연 누구를 통해 접할 수 있을까.
도봉에서 삼각, 백악을 거쳐 한강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모두 8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한눈에 살피는 서울의 곳곳!
이로써 거듭난 수도 서울의 총합된 이미지
오늘날의 서울은 확장된 개념으로, 19세기까지 한양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이른바 도성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는 ‘서울’ 역시 오늘의 서울 이전, 한양으로 불리던 바로 그 시절 그곳이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모두 8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도봉산에서 비롯하여 삼각산, 백악산을 거쳐 서소문을 경유하고 한강의 광나루에서 행주산성까지를 통째로 살핌으로써 옛 서울 한양을 향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통찰을 유도한다.
‘서장’에서 18세기 한양을 그린 <도성도>를 비롯한 그림 지도와 19세기 신감각파의 중심 작가 김수철의 <한양 전경도> 등 서울 전체를 일별하는 압도적인 그림들을 책 앞머리에 내세움으로써 이 책과의 첫 만남을 주선한 저자는 이로써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서울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조감하게 한다. 이후 총 8장으로 구성한 체제를 통해 저 멀리 도봉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각산을 거쳐 백악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통해 서울 전체를 관통하는 큰 축을 제시함과 동시에 예술의 정수가 모일 수밖에 없는 궁궐 주변을 중심으로 오늘날 달라진 모습을 상대적으로 쉽게 살필 수 있는 풍경을 펼쳐 보인다. 나아가 사대문 너머 서대문, 용산, 동대문 너머 인근의 정취를 아우른 뒤 광나루에서 행주산성까지 한강을 주유함으로 이 책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로써 서울은 단편적인 장소의 집합체가 아닌, 육백여 년 동안 한 국가의 수도로서의 총합된 이미지로 독자에게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림 지도, 기록화, 산수화 등 조선 시대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을 전방위로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그림 속 풍경들은 그 자체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근원, 풍경과 일상, 역사의 기록과 개인의 추억의 경계를 넘나들며 넘나들며 자유로운 줌인, 줌아웃을 경험하게 한다. 조선 시대 화가가 남긴 그림, 그 그림을 바라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시도는 마치 2인 3각의 경기처럼 독자와 더불어 하나의 도시와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때로는 크게, 때로는 세밀하게 살피는 즐거움을만들어 내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성과 집적만이 줄 수 있는 유의미한 재미다.
18세기 조선문예의 부흥기에 집중된 실경 산수화,
그림을 통해 만나는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
미술사학자 최열의 20여 년 노정의 집성
이 책의 등장 이전까지 서울을 그린 그림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궁궐 인근, 유명한 명승지, 이름난 화가의 작품을 통해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 시대 수도였던 한양의 전부를 충실하게 모아둠으로써 서울의 전체 모습을 가늠하고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16세기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그림을 모아두고 보니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한양을 그린 그림은 매우 희귀했으며, 18세기에 이르러 실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는 곧 조선의 역사에서 18세기가 곧 문예 부흥의 시기이자, 실경에 관한 화가들의 관심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화가들의 이야기와 시대의 이야기를 종횡으로 교직함으로써 역사란 곧 사람의 이야기임을 말해준다. 풍경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일 수만은 없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살았던 시간이 곧 역사가 되어 오늘에 전한다. 즉 최열의 안목을 통해, 그의 안내를 따라 그림을 보고, 그림을 통해 사람을 만나며 나아가 역사를 만나노라면 독자들은 어느덧 그림 한 점을 통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정권 쟁탈의 현장을 만나며, 약하고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눈앞에 둔 군주의 회한을 엿보게 된다. 이미 사라진 우리의 풍속을 만나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로 들어와 있는 일상의 풍경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유추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저자 최열은 그림 한 점을 볼 때마다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한경지략』, 『택리지』 등을 비롯한 방대한 문헌들을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살아야 했다.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풍성한 이야기의 현장이 수많은 문헌이라면, 그림의 실경을 확인할 곳은 다름아닌 바로 오늘의 서울이었다. 그는 그림에 깃든 사람의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낸 현장감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의 과거로 들어가는 답사 여행을 끝도 없이 떠났다. 답사 여행의 초반, 세상은 아직 아날로그의 세계였다. 조선 시대 그림 한 점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널리 공개되지 않았고, 그 그림이 누가, 언제, 어디를 그렸는가 하는 것 역시 분명하지 않았다. 최열은 손에 쥔 한 점의 그림을 들고 수많은 고문헌을 살펴 연구를 거듭했으며 실제로 그 대상이 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을 기꺼이 찾아가 그림과 현재를 비교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발품을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이 달라지면서 등장하고 점점 정교해지는 디지털 지도를 활용하여 하나씩 대조하는 작업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십수 년 동안 모든 데이터는 때로 수정되고, 새로운 내용이 보태지면서 업데이트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바로 그 오랜 노정의 빛나는 성취다.
조선의 그림을 담은 책이라는 기본 전제에도 충실한 책,
이미 알려진 모든 것을 뛰어넘어 더 많은 화가, 작품, 이야기를 담아내다
이 책의 출발은 다름아닌 조선 시대 그려진 그림이다. 이 책은 그 본분에도 탁월하게 충실하다. 조선 시대 화가를 떠올리면 어떤 이름들이 생각날까. 일반 독자들에게 익숙한 화가들이란 정선이나 강세황, 김홍도나 신윤복 등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당대 문예인으로 추앙 받던 이들이나 도화서 화원으로 유명세를 획득한 이들이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