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투명하며 열렬한 눈물의 궤적
―“생각지 못했던 사물들과 하루하루 친밀해지는 서늘한 시간들”
세상의 중심을 향해 날것의 분노와 열기로 맞선, 젊은 시인의 고독과 소외의 자의식으로 가득 찼던 첫 시집 『극에 달하다』(문학과지성사, 1996)와 “빛과 어둠으로 직조된 삶의 비의”를 담았던 두번째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민음사, 2006)를 통해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들의 그물망으로 포획된 존재와 사물들의 실존을 섬세한 은유의 직물로 구성”(문학평론가 김진수)한다는 평을 들어온 김소연 시인이 세번째 시집 『눈물이라는 뼈』(문학과지성사, 2009)를 펴냈다.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의 발간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있는 데 비하면 비교적 짧은 만 3년의 시간을 총 5부 49편의 시에 촘촘히 새기고 있는 이번 시집에서, 김소연은 삶이 품은 진실, 이른바 마음이 몰랐거나 마음이 모른 척했던 삶의 연유들을 적실한 한 마디 한 마디로 노래한다. 슬픔으로 시작되었으나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 노래, 때로 사람이 아니기를 원하지만 끝내 사람으로 남아 생을 살아내는 노래, 마음의 섭생을 위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어떤 진실이 온전히 보존돼 있는 그런 노래(문학평론가 신형철)로 시집 『눈물이라는 뼈』는 시작한다.
관록만을 얻고 수줍음을 잃어버린
늙은 여가수의 목소리를 움켜쥐노니
부드럽고 미끄러운 물때
통곡을 목전에 둔 부음
태초부터 수억 년간 오차 없이 진행되었던
저녁 어스름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여자의 노래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사람이 할 말
그래서 이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우노니
―「이것은 사람이 할 말」 부분
투명해진 육체가 비로소 전하는 진실
―“마음의 섭생”을 위해 우리가 통과해야만 하는 “우두커니 외로워진 시간”
눈물을 삶에 붙박인 우리의 마음이 일렁이다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노래라고 한다면, 시집 『눈물이라는 뼈』는 그 마음이 저지른 일을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는 “별이 유독 뾰족해지는 밤”(「위로」)과 “귀가 백만 개의 잎사귀로 태어나는 새벽”(「침묵 바이러스」)에 깨어 있는 이 시인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사유와 감각의 열전이다. “뜨거운 속엣것이 고스란히 보존된 광대한 고요”(「한 개의 여름을 위하여」) 속에서 말의 무력함을 깨닫고 침묵을 택한 시인은, 뜨거운 신열을 앓는 중에도 세상을 향해 온몸의 감각을 깨워놓고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그리하여 시인의 귀는, “흰 약처럼 쓰디쓴 고백들”(「폭설의 이유」)에 금방이라도 찢길 듯 활짝 열리고, “밤새 흘러내린 눈물로 마당이 파이기 시작하면, 바람은 사라지고, 새로운 돌부리들이 죽순처럼 쑥쑥 마당을 뚫고 올라”(「눈물이라는 뼈」)올 때 들리는 ‘돌의 노래’를 발견하며, “바람을 간호하던 암늑대의 긴 혓바닥”(같은 시)이 품었을 절박한 삶의 내력과 “죽일 수도 때릴 수도 없었던/당신의 열렬함과 통증”(「명왕성으로」)에 공명하게 된다. 이렇게 김소연의 시/시인은 “타인의 상처”와 놀면서(「유리 이마」) 한껏 장단을 맞추다가도 “몸 가누기 고달픈 어떤 때에/실컷 좀 울어볼까 한다”(「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버림받은 이가 버림받은 이에게
마음 여린 이가 마음 여린 이에게 내밀었던
덥썩덥썩 잡았던 손목들이
싹둑싹둑 잘려나갈 때
[……]
그는 집에 돌아와
울음이 그칠 때까지 주름상자를 접고 접어
오로지 탄식만으로 발성하는
아코디언을 발명하게 되었으리라
―「고독에 대한 해석」 부분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주목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1부 ‘사람이 아니기를’에서는 역설적으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재우쳐 묻고(“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 :「눈물이라는 뼈」), 2부 ‘경대와 창문’에서는 여자로 살아가는 일의 내밀한 아픔(“나잇값만큼 깊어지는 여자의 우울과/우울을 모독하고 싶은 악의 때문에/[…]/늙어가는 몸 때문이 아니라/나이만큼 무한 증식하는 추억 때문에/여자의 심장이 비만증에 걸린 오후”: 「고통을 발명하다」)을 치열하게 옮긴다.
육포처럼 말라버린 엄마의 발목을 만지며
내 생이 그녀의 생을 다 먹어버린 건 아닌지
속이 더부룩하고 신트림이 난다
[……]
엄마는 딸에게 거울이 되어주었지만
거울은 원하는 표정만을 비추는 공범자를 자처했다
딸을 엄마는 창문이라 말하곤 했지만
꼭꼭 밀봉한 채로 문풍지를 발라주셨다
―「경대와 창문」 부분
한편 3부 ‘투명해지는 육체’에서는 만나고 헤어지고 기억하고 잊히는 일상의 반복이 낳은 몸의 상처와 위무의 기록들이(“그런 꿈을 꾼 아침은/몸 안쪽이 환해지곤 해/감각들이 하나하나 옆자리로 도착하지/[……]/몸 안쪽이 몸 바깥으로 배어나오고/새로 태어난 얼굴이 거울 앞에 보였어”: 「거기서도 여기 얘길 하니」), 4부 ‘감히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을 위하여’에서는 앞서의 사람으로, 여자로, 혹은 몸으로 살아가는 모진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우리’ 혹은 ‘우정’이라는 명명이 발휘하는 힘과 시인으로 살아가는 의미들이(“자책을 사모하여 우린 금세 후회하고 말았지만요 후회를 자행하는 이 새벽의 만용을 우린 한 뼘 더 사모하므로,/[……]//만족한 얼굴로 우린 누워 있어요 엎드린 채 베개 밑에 두 손을 넣어 두었죠 나란히 엎드려 이렇게 손을 가두는 것은요 부디 그 누구도 껴안지 말자는 우리만의 지령인 거예요” : 「만족한 얼굴로」), 마지막으로 5부 ‘모른다’에서는 낯선 땅의 타자가 되어 경험하는 이 모든 삶의 내력들이 환생하듯 뒤따르고 있다.
내 뺨에 닿자마자
정전기가 이는 당신의 손
겨울밤이라서 그렇다는 위로 따위는 하지 말아줘
겨울이면
뺨이 트는 한 사람과
겨울이면
손이 트는 한 사람의
접착 불가능한 해후라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줘
밤새 어디 있었냐는 질문을
이젠 좀 눈빛이 아닌
복수로써 해줘
―「뒤척이지 말아줘」 부분
삶이 그리 된 까닭을 묻고 충분히 대답하지 않는 일― 詩,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유보
―“지워지면서 정확해지는, 진실”
첫 시집 『극에 달하다』에 붙인 산문에서 김소연은 “망가져가는 세계에서, 무너지고, 쏟아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 불순하고 찰나적인 것들”에 위로받는다고 했다. 하여 “시대에서 얻었던 상처들을 흔적으로 환치”시키기 위해 시를 썼다고도 했다.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에 앞서 붉은 열정과 싱싱한 감각으로 들끓던 시기의 그 완강하고 고집스러운 목소리의 결집이 김소연 시의 시작(始作)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10년. 두번째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의 말미에 실은 ‘그림자論’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론과 시작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 역시 그림자와 같지 않을까. 빛의 방향과 사물의 모서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 현현해 있는 모든 현란한 것들의 표정을 지우고, 그 자세만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 시 쓰는 일은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이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차분하고 깊어진 시인의 눈과 목소리는 어느덧 “내 앞의 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 뒤를 느끼느라 하염이 없다”(「너의 눈」/ 위의 책).
이렇듯 삶과 존재의 ‘너머’에 본격적으로 곡진한 눈길을 드리우기 시작한 시인은 이번 시집의 자서와 뒤표지의 산문을 통해,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스스로 답한다: “(시인은) 부재하는 능력과 존재하는 기억이 한몸뚱이에서 녹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