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논고

니콜로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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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 공화정의 위대함을 정치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가 누린 영광을 단순히 행운으로 치부한 기존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자유와 독립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자유와 독립은 공화정이 지켜야 할 가장 필수적인 덕목으로, 당시 공화정을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독재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메디치가(家)에 전한 진심어린 충언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는 군사부터 내정까지 각 분야에서 공화정이 자유와 독립의 가치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굉장히 자세하게 다룬다. 이번에 출간하는 <로마사 논고>는 지난 2003년 출간된 초판을 개정한 것으로, 초판이 <로마사 논고>의 가장 권위 있는 영어 판본인 맨스필드판과 타르코프판을 대본으로 삼은 반면, 개정판은 이탈리아어 판본을 대본으로 삼아 작업했다. 여기에 맨스필드판과 타르코프판, 독일어 판본까지 참고해 훨씬 정확한 번역을 선보인다. 연장선에서 비르투 등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핵심개념들을 좀더 명확히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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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과 『로마사 논고』│강정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차노비 부온델몬티와 코시모 루첼라이에게 드리는 인사 제1권 서문 역사의 가치 제1장 도시 일반의 기원, 특히 로마의 기원에 관하여 제2장 얼마나 많은 종류의 국가가 있는가 그리고 로마 공화국은 어떤 종류의 국가에 속하는가 제3장 로마에서 호민관을 창설하게 된 경위?국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 사건 제4장 평민과 원로원의 대립이 로마 공화국을 자유롭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제5장 인민과 귀족 중 어느 편이 더 확실하게 자유를 보호하는가 그리고 새로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와 기존의 권력을 보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어느 편이 분란의 원인인가 제6장 로마에서 인민과 원로원 간의 대립을 소멸시킬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는가 제7장 공화국에서 고소·고발권(le accuse)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제8장 고소·고발은 국가에 이로운 반면, 중상은 해롭다 제9장 새롭게 공화국을 창건하거나, 구제도를 철저히 혁파하여 공화국을 쇄신하는 일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야 한다 제10장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는 반면, 참주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 제11장 로마인들의 종교에 관하여 제12장 종교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가 로마 교회의 처신으로 파멸에 처하게 되었는가 제13장 로마인들은 도시의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각종 사업을 수행하고 내분을 수습하는 데 종교를 어떻게 활용하였는가 제14장 로마인들은 새점(鳥占)을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해석했으며, 심지어 종교가 요구하는 바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종교를 준수하는 외양을 신중하게 유지했다; 그리고 누구든 성급하게 종교를 경시하면, 그를 처벌했다 제15장 삼니움인들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종교에 의지했다 제16장 군주정에 익숙한 인민은 우연한 사태로 자유를 회복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제17장 부패한 인민은 자유를 얻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제18장 부패한 도시에 자유로운 정부가 이미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립할 수 있는가 제19장 유약한 군주라도 강력한 군주의 뒤를 이은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유약한 군주가 연달아 즉위하게 되면 그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제20장 두 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다; 잘 조직된 공화국은 필연적으로 유능한 지배자가 잇따라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제21장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나 공화국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제22장 로마의 호라티우스가(家)의 세 용사와 알바의 쿠리아티우스가의 세 용사 간에 일어난 결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인가 제23장 장수는 전력을 다하지 않은 전투에 모든 운명을 걸어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로 군사적 요충지만을 방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제24장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 제25장 자유로운 국가에서 오래 유지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제26장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제27장 사람이 완전히 악하거나 완전히 선하게 되는 경우란 거의 드물다 제28장 로마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자국민에 대해 배은망덕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제29장 인민과 군주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배은망덕한가 제30장 군주나 공화국이 배은망덕이라는 악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또 시민이나 장군이 배은망덕한 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제31장 로마 장군들은 그들의 과오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무능이나 잘못된 계획이 로마에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제32장 공화국 또는 군주는 인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지체해서는 안 된다 제33장 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부터 커다란 위험이 엄습했을 경우, 그것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면서 지연시키는 정책이 훨씬 더 안전하다 제34장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은 로마 공화국에 유익하면 유익했지 유해하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투표로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강탈한 권력이 시민정부를 파괴했다 제35장 로마의 10인회는 인민의 자유로운 보통선거로 선출되었는데도 어째서 공화국의 자유에 유해한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제36장 고위직에 있는 시민들은 하급직에 있는 시민들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제37장 농지법이 로마에 어떠한 불화를 초래했는가; 먼 과거까지 소급하는 효과를 가진 법률을 고래의 관습에 반하여 제정하는 것은 공화국에 불화를 야기한다 제38장 허약한 공화국은 우유부단하고 결단을 잘 내리지도 못한다; 설사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그것은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부득이한 필요 때문에 강요된 것이다 제39장 같은 일이 종종 다른 인민들 간에 일어난다 제40장 로마에서 10인회의 창설 그리고 그 사건에서 배워야 할 점;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해서 그러한 사건이 공화정을 구원하거나 공화정을 참주정으로 몰아넣는지를 고찰하고자 함 제41장 중간단계를 적절히 거치지 않고 겸손에서 오만으로, 자비에서 잔인함으로 돌변하는 것은 경솔하고 무익한 짓이다 제42장 인간이란 얼마나 쉽게 매수될 수 있는가 제43장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자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마키아벨리,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최고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작가, 정치가, 정치이론가였다. 1498년 30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외교사절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다. 당시 피렌체 사신의 주된 임무는 피렌체의 피사 공격과 관련하여 프랑스의 군사적 협력을 구하는 것이었다. 1503년에는 로마에 파견되어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를 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율리우스 2세는 직전 교황인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의 도움으로 교황이 되었는데, 이후 단호한 행동으로 세력을 불려갔다. 마키아벨리는 율리우스 2세의 처세술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훗날 집필하게 된 『군주론』은 외교사절로서 겪은 생생한 체험과 관찰에 근거한 것이다. 1512년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다시 다스리게 되면서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추방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해에 메디치가를 몰아내려다 실패로 끝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투옥되기에 이른다. 곧 특사로 풀려난 그는 공직에 참여하기 위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그 계획의 하나로 『군주론』을 1513년 말경에 집필했다. 하지만 책을 헌정한 로렌초 메디치(Lorenzo de Medici)는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하니 마키아벨리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이 시기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들과 만나기 시작했는데, 이들과의 교류에서 공화정의 의미와 가치에 눈뜨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의 『로마사』의 처음 10권에 대한 논평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사 논고』다. 마키아벨 리의 가장 큰 저서인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근대의 기원을 열다 마키아벨리가 근대 정치사상사에 남긴 탁월한 공적은, 정치가 윤리나 종교 등 다른 영역과 구분된다는 점을 명료하게 밝히고 나아가 종교나 윤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사상적으로는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대변하고 정치적으로는 당시 대두하고 있는 중앙집권화된 근대 국가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 있었다. 이는 르네상스 이래 전개되어온 세속화 경향을 정치 영역에서 철저히 추구하고 관철시키고자 한 것으로, 마키아벨리가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근대의 기원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로마와 인접국 알바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두 국가 모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나라의 한 가문을 선발해 아들끼리 싸움을 붙여 승패를 가르기로 했다.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가문이, 알바에서는 쿠리아티 가문이 뽑혔는데, 공교롭게도 두 가문은 혼인관계에 있었다. 각 가문에서 세 아들이 나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호라티우스 가문의 한 아들이 살아남아 승리는 로마의 것이 되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온 그는 쿠리아티 가문의 약혼자가 죽은 것을 알고 슬피 우는 여동생을 애국적인 의분으로 죽이고 만다. 이 아들은 법정에 서지만 아버지의 변호로 면죄받는다. 이 일화에서 로마인들이 공익(국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연장선에 ‘마키아벨리즘’이 있다. 마키아벨리즘은 간단히 말해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다만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태도는 『로마사 논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절대적으로 자기 조국의 안전이 걸린 문제일 때, 정당한 것인지 정당하지 않은 것인지, 자비로운 것인지 잔혹한 것인지, 칭찬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치욕스러운 것인지는 전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모든 양심의 가책을 제쳐놓고 인간은 모름지기 어떤 계획이든, 조국의 생존과 조국의 자유를 유지하는 계획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 이 이론은 프랑스인들이 국왕의 위엄과 왕국의 세력을 방어할 때 사용하는 말과 행동을 결정한다.” _ 633쪽 이처럼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은 ‘공익’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오해한다. 즉 “어떤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또는 “사회의 삶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남을 희생시키는 처세”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마키아벨리가 강력히 비판했던 것이다. 물론 마키아벨리즘이 이렇게 오용, 혼용되는 데는 마키아벨리도 책임이 있다. 그가 다양한 삶의 층위에서, 즉 공적인 층위나 사적인 층위 등에서 어떤 정치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로마사 논고』는 마키아벨리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공화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이 방식을 따라야 하며 젊었을 때 어떤 비범한 행위로써 특출하게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많은 로마인들은 젊었을 때 공익을 위한 법을 제안하거나 어떤 유력한 시민을 법의 위반자로서 고발하거나 아니면 무엇인가 다른 주목할 만하고 새로운 행동을 통해 인구에 회자됨으로써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_ 6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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