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난다의 시의적절, 그 네번째 이야기!
시인 이훤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4월의, 4월에 의한, 4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역설적이게도 모서리에서 보낸 시간이 나를 나로 만들었다. 구석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나는 다른 인간이 숨겨둔 꼭짓점을 관찰했다. 온갖 종류의 모서리를 오가는 동안 어색하지 않은 척 흉내냈다. 그랬기 때문에 우정을, 힘을, 사람을, 연약함을 오래 생각했다.
_4월 21일 편지 「우리가 추방한 우리」 부분
그리움이 대체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질까?
왜 이렇게까지 유능해질까
겨울의 한기가 자취를 감추고 봄기운이 구석구석 물드는 4월이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2025년 4월의 주인공은 따뜻한(暄) 시인 이훤이다.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석사를 마친 그는 두 언어를 오가며 생겨나는 뉘앙스와 작은 죽음에 매료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공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정답을 지우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고 답하기도 한(『토이박스』 Vol. 2) 그는 또한 오랫동안 타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고 그 세계의 일부를 자기 시선으로 건네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훤은 난다에서 펴낸 신간 『청년이 시를 믿게 하였다』에 시인이자 사진가인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탐구하며 열세 편의 시, 열여섯 편의 사진 작품과 에세이를 실었다. 작업 노트를 비롯하여 지침서 「사진에 관한 짧은 매뉴얼」은 사진가/시인 이훤이 어떻게 보는가, 계속 소실되는, 시간이 흐르며 떨어져나가는 존재인 우리에게 사진/시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묻게 한다. 타인을 받아 적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에 가깝다.(114쪽) 이미지는 찍힌 것들의 외형이자 찍은 사람의 내면이다. 그 풍경은 어떻게 내부로 침투하는가. 사진/시를 어떻게 읽는가라는 이 질문은 보이는/읽히는 것 너머를 향해 독자를 걷게 하고 고민하게 한다(77-78쪽).
찍기 전부터 어떤 사진은 일찌감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곳으로 오랫동안 돌아갈 거라고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훤은 2014년 『문학과의식』에 시를 발표하고 2015년 첫 사진전을 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름을 잘못 불리는 사람, 존재 방식에 허락을 구해야 하는 사람, 독백을 반복하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을 멈추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지하철을 타도 구석에 서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던(142쪽) 시인. 오랜 시간 이국에서 타자로 살아야 했던 그에게 삶은 언제나 삼인칭이자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167쪽). 미국에 살며 한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했던 그에게는 늘 눈이 하나 더 필요했다(『양눈잡이』). 또한 그것은 시인이자 사진가로 작업을 병행하며 쥐고 있는 두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페이퍼』 제268호). 말할 수 없어서 보기도 하고 볼 수 없어 말하기도 했던 그는 시는 활자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사진과 시라는 성격이 다른 두 언어가 포개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며(『어라운드』 Vol. 76) 이미지로서의 시가 지닌 서사 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는 또한 본문 지면에서 사진 작품들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해 배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할 때, 텍스트가 이미지가 될 때 들리고 보이는 것들을 우리에게 건네려 한다(4월 16일 사진과 문장 「304명의 이름을 이으며……」). 그에게 “사진은 실패하는 기상청”(90쪽)이자 “매번 실패하는 진실”(91쪽)이지만 “실패해서 가능한 대화가 있다”(147쪽)는 사실을 믿는 시인이기도 하다.
상실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건 왜일까
별말 않고도 무언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건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시간을 잃고 있는 걸까? 더 많은 시간을 손에 쥐게 된 걸까?(37쪽) 모든 게 너무 빠른 세상에서 시간이 드는 일은 모조리 멸종된 세상을 상상한다. 그제야 우리는 번거로운 경험과 만남이야말로 중요했다고 회상할지도 모른다(160쪽). “어쩌면 우리가 영혼을 앞지르는 걸까?”(178쪽) 이훤은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진 앞에서 느려졌으면 좋겠다고. 몰랐던 자리로 나아가게 하고 거기 선 우리를 술렁이게 했다가 고요하게 만드는(203쪽) 시간. 사진은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사랑했을지”(172쪽) 영혼이 과거에 개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176쪽)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배가 제 몸을 빠져나간 바다를 천천히 복기하듯, 만남보다 만남과 만남 사이의 시간에 우리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겨우 이해하게 된다(192쪽). 삶은 떼어놓을 수 없는 거대한 하나의 농담(119쪽). 수백 개 실처럼 묶여 있는 기쁨과 슬픔은 한두 가닥만 잘라낼 수 없고 가지려면 전부를 떠안아야 한다(194쪽). 복숭아 향이 나는 우리의 비밀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누어 먹는 봄. 찍힌 것들도 시절마다 다르게 마음을 투과한다(177쪽). 새로워지고 다시 태어나는 사월(126쪽). 차창을 내려 홑겹의 바람을 맞으며 마냥 실려가고 싶은 계절이다(22쪽). “새 편지는 새 마음을 시작한다.”(61쪽) “달라지기 위해 이 세계는 기다리고 있다”(128쪽).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2025년에도 계속됩니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시인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요.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습니다. (달력이 그러해서, 스물여덟 편 담긴 2월이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물론,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습니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습니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거지요.
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합니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습니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습니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四季)가 되어 있을 테지요.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
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입니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時)와 시(詩)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라 믿습니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입니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합니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테지요.
[ 2025 시의적절 라인업 ]
1월 정끝별 / 2월 임경섭 / 3월 김용택 / 4월 이훤 / 5월 박세미 / 6월 이우성
7월 박지일 / 8월 백은선 / 9월 유계영 / 10월 김연덕 / 11월 오병량 / 12월 고선경
* 사정상 필자가 바뀔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2025년 시의적절의 표지는 글과 사진을 다루는 작가 장우철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