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의 아이들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3O-dFqcg8jb_tNrLh9idmw.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XpBd05qSTVORGcwTVRBeE1EWTJJbjAuelRRQzQzcldySkhMUWkxeW1DdGh0V0g3aElpRnJDODFDcUZRdHNyUHN1aw==)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dJifk6CQ_JkYfQSaPz2meg.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VRJMk1ERXdNVEU0TmpnME1Ea3dJbjAub3JCREJoN2RoZkRhSUNMeGtpcVk4eTBraFFPbzk4cy01S00wLXBuVEdrOA==)
전설적인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은 1913년 4월에 자신의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라는 이름의 독무를 창작했다. 부드러움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 엄마는 아이를 떠나보내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를 보듬어본다. 현대의 프랑스에서 이사도라를 포함한 4인의 여성이 새롭게 ‘엄마’를 접하고 이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나간다. (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이 영화는 파리에 사는 젊은 무용수, 장애를 가진 소녀와 그녀에게 춤을 가르치는 선생, 댄스 공연을 관람한 관객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전설적인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이 두 아이를 잃은 후 창작한 「엄마」라는 독무와 연결되어 있다. 감독은 각자의 사연을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이 네 명의 여성들은 던컨이 남긴 글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엄마」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재연하고자 한다. 이들은 던컨의 또 다른 아이들이자 자신의 감정을 몸짓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던컨의 정신적 계승자이다. 카메라는 주인공들의 걸음걸이, 옷을 입고 벗는 행동, 커튼을 치는 손의 움직임 등 일상의 행동을 마치 공연의 한 동작처럼 표현하며 몸짓을 보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무용가였던 다미앙 매니블 감독은 기교가 화려하지 않아도 누구나 감정을 어루어만지는 몸짓을 표현할 수 있음을 잔잔히, 그러나 가슴 벅차게 전한다. (문성경) [2023년 24회 전주국제영화제]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JE
3.5
프레임에 담긴 신체 일부를 가만 지켜보는 숏들처럼 그 멈춤과 움직임에 온갖 집중을 쏟는다. 무용이라는 제재처럼 결국 제스처의 영화인데, 일기장의 날짜같이 느슨하게 연결된 여인들의 이야기마저 그런 신체가 자아내는 정동을 매개로 모여든다. 신체의 움직임을 분유함으로써 인물들을 다른 시간의 이사도라에게로 이르게 하는 영화는 마치 그걸 지켜보는 카메라로써 관객마저도 이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만한 제스처에 대한 확신 내지 탐닉이 인상적인, 공부하고 이해하고 느끼는 행위들. 그러고 보면 신체야말로 나를 타인 그리고 세계와 잇는 시원적이면서 유일한 도구가 아닐까. 마침내 한 명의 관객에게 다다른, 마지막 흑인 여성의 힘겨운 걸음과 몸짓에의 말 없는 응시처럼 <이사도라의 아이들>은 제스처라는 그 원초적인 매개의 가능성을 향한 믿음이 절절하다. 특히 개인적으론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안무를 연습하던 다운 증후군의 소녀와 선생님이 짐볼만 프레임 안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잠시 프레임 밖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들어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분명 제스처가 자아낸 감상에 한하자면 세 번째 이야기가 인상적인 것이 사실이나, 카메라의 바깥으로 빠져 나갔다가 돌아오던 그 순간은, 분명 프레임의 바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현전을 잠자코 기다리는 카메라 덕택인지는 몰라도) 두 인물의 동작이나 어떤 행위의 연속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치 화면이 확장된 양 착각하기도 했다. 이를 단지 제스처만으로 만들어낸 착시라고 하기엔 개인적인 오독도 있어 멋쩍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다다르려는 몸짓에 힘 입어 영화가 좇던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감의 순간이라 흥미로웠다. 예술은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걸 감각케 하는 문제인가 싶다.
드미트리
4.5
두 팔을 뻗어 만든 허공에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았다.
Cinefeel
5.0
이사도라 던컨의 기록이 불러오는 감정의 파장으로 물들인 영화의 몸짓
MLTNG DWN
4.5
이사도라의 어머니라는 춤은 명백히 부재한 아이를 되살려내려는 충동과 이미 부재했던 존재와의 동거를 겪어내는 감정의 끝을 향하는 몸짓이다. 세-정확히는 네-여인들의 느슨한 연대는 이미 부재하건, 장차 부재할 것이건, 부재하지 않는다고 믿건 그 존재할 수 없는 대상을 사모하는 거대한 추모곡이 되며 그 광경에는 놀라우리만큼 유령적인 쇼트가 함께한다.
동구리
4.0
1910년대에 활동하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은 사고로 두 아이를 잃은 뒤 '엄마'라는 무용을 창작한다. 다미앙 매니블의 영화는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현재 네 명의 여성이 이사도라의 무용을 접하고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다. 이들이 무용을 각기 해석하는 방식은 다르다. 첫 번째 여성은 이사도라의 무용이 담긴 무보(무용 악보)를 보고 그것을 가능한 똑같이 재현하려 한다. 선생과 제자 관계인 두 번째와 세 번째 여성은 함께 이사도라의 무용을 재현하려 한다. 하나의 워크숍처럼 이사도라의 동작을 익혀가는 이들의 대화와 몸짓에서 무용에 대한 관점과 이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마지막은 '엄마' 공연을 관람한 어느 관객이다. 몸이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고 집에 돌아간 그는 그 날 관람했을 무용을 어설프면서도 주의깊게 따라한다. 무용은 비록 무보가 존재하지만,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은 언제나 같은 소리를 내며, 그것을 연주하는 뉘앙스, 세기, 속도 등에 따라 악보는 재해석된다. 반면 무용은 신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신체는 악기처럼 일정하지 않다. 무보는 한 세기 전의 무용을 전달하지만, 무보를 보고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몸은 언제나 다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무용을 펼치는 때에 따라 다르다. <이사도라의 아이들>은 네 사람의 다른 제스쳐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전문 무용수의 움직임은 다운중후군을 앓는 소녀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그리고 다시 이들의 공연을 관람한 노년 여성의 몸으로 이어진다. 각기 다른 움직임이 공유하는 것은 아이들을 감싸는듯한 이사도라의 동작이다. 이사도라가 활동하던 시기와 한 세기의 시차를 지닌 이들을, 영화는 이사도라의 아이들로 명명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각자의 동작이 지닌 세세한 차이들로 전달되는 이사도라의 동작은, 미세하게 변주되며 모두를 감싸는 제스쳐로 변화한다.
조성호
3.0
이사도라 던컨에게, 또 그가 만든 예술 세계를 기억하는 감독 시네마테크kofa 사사로운 리스트2019
juyoi
3.5
우리는 모두 다른 몸짓을 가질 수 있어요
Kosop
4.0
Re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