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2.0느껴지는 건, 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구나... 뉴욕의 위로 비행기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구나...ㅎ 러닝타임의 7시간 30분에 정확히, 첨탑쪽의 조명이 꺼지고 3분이 더 지날 무렵엔 조명이 완전히 나간다...ㅎ... 음... 음... 음... 음.... 끝!! ㅎㅎㅎㅎㅎㅎ 이 영화 너무 혁명적이다... #21.6.25 (711) # 여름에 오후 6시쯤에 재생해서 새벽에 끄끼 좋은 영화.... 물론 대형 티비에 창문 대용으로.....ㅋㅋ좋아요40댓글0
Costco™3.03분 정도 보다가 껐고, 후회는 전혀 없다. +) 재밌게도 '엠파이어'는 이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경험" 자체를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한다. 실제로 이 장장 8시간의 고정 숏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상식 선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애초부터 앤디 워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엠파이어'는 아예 온전히 체화해 낼 수 없는 작품이 됨으로써, 예술의 본질에 대해 되묻고 있다. 우리가 예술을 두고 뱉을 수 있는 모든 말들, 가질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은 이 작품 앞에서 짓밟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 앤디 워홀은 결코 엿이나 먹어보라고 8시간짜리 괴작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작품을 끝까지 감내해보려 애쓰고, 누군가는 나처럼 몇 분 만에 질려버린다. 또 누군가는 시놉시스만 보고 지나쳐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태도는 작품을 보기에 완전히 적합하고, 정상적이다. 이런식으로 앤디 워홀은 8시간이라는 추상적인 정도의 틀 안에서 관객이 직접 러닝타임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관객이 가질 수 있는 작품에 대한 해석/사고의 범위는 크게 확장되었다. 워홀은 '엠파이어'를 통해 관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은, 두가지 반대되는 태도를 동시에 취함으써, 상쇄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는 주관으로써 예술에 판단을 내리거나 직접 행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임과 동시에, 경험과 창작에 대한 희망의 제안이다.좋아요32댓글0
석지협4.0(DVD 버전의 1시간 가량의 편집된 버전으로 시청) (현재 이 영화를 8시간의 온전한 버전으로 보는 방법은 내가 알기로 뉴욕현대미술관의 네거티브 필름을 통해 시청하는 것 밖에 없다. 다만 DVD로 1시간 가량의 편집본이 출시된 적이 있고, 그 판본을 볼 기회가 있어 보았다.) # 일단 당황스럽다. 관객들은 앉아서 8시간 동안 빌딩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현재 우리가 영화관에 앉아서 보는 영화와는 몇십 광년쯤 떨어져 있어 보인다. 그럼 앤디 워홀이 살아있던 60년대에는 통용되던 영화였을까?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기도 한 요나스 매카스의 책에는 앤디 워홀의 <잠>이 상영된 그 당시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잠>에서는 한 남자가 6시간가량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카스에 따르면, 500명 정도 되던 관객이 몇 분 지나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집단은 환불해달라며 난동을 부렸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관객은 몇십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 영화에 대해 내는 분노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일반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엠파이어>가 시네필에게 얻는 인기는 가히 컬트적이다. 영화를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영화를 언급하며 농담을 따먹을 때가 있다. 때론 이 영화로 진지한 고찰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쨌거나, 언젠가는 이 영화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났다. # <엠파이어>는 내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은 0에 가깝기 때문에 어떤 해석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각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나는 ‘시간’이라는 요소에 집중해 보았다. 알다시피, 8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일반적인 영화의 지속 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빌딩을 봐야 할까? 영화가 다른 예술과 가지는 가장 큰 차별점은 시간의 가시화, 형태화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만, 영화와 조우할 때는 또 하나의 차원의 시간과 만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간이다. 당신이 영화 관객이 된다는 것은 스크린이나 모니터 앞에 앉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잠깐 의식하지 않고 영화 속의 시간을 살아가기로, 그 시간 내내 앉아 있는 것을 감내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시회의 그림은 내가 그만 보길 원한다면 지나칠 수 있다. 게임은 내가 그만하기를 원한다면 끌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자리에 앉은 이상 영화 속의 시간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 속의 시간에 완전히 자리잡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잠시 현실의 자각에서 벗어나 영화와 합일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엠파이어>는 그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또는 실험)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8시간 동안, 빌딩 역시 8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보는 대다수의 영화는 절대로 우리가 가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으로 흐르지 않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아마 8시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렇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처음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8시간은 게임할 때나 다른 영화를 볼 때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8시간이 아닌, 진짜 ‘8시간’이다. 자크 오몽은 영화의 가장 뛰어난 힘이 바로 시간을 가시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오몽은 몽타주를 통한 시간의 줄이고 늘임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시간의 무게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워홀은 이를 해냈다. 아핏차퐁이 자신의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엠파이어>를 꼽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핏차퐁은 영화에서 경험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컷을 길게 늘이는 연출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스토리에 전혀 관련 없는 바깥의 풍경이나 자연의 한 부분을 굳이 영화 속에 포함시켜 등장 인물의 생각하는 시간의 길이와 관객의 사유하는 시간의 길이를 맞추고자 한다. 그래서 아핏차퐁의 영화는 러닝타임 자체가 길지 않더라고 테이크는 길어야 한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엠파이어> 역시 길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그대로 경험하게 하는 영화는 우리가 흔히 ‘느린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엠파이어>의 제작 시기를 감안한다면, <엠파이어>가 ‘느린 영화’, 또는 ‘시적 영화’ 연출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타르코프스키부터 아핏차퐁까지, 앤디 워홀부터 시작된 현실과 영화의 시간을 합일하려는 시도는 흔히 ‘느린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로 이어져 있다. 이 영화들을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닌, 경험을 주기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본다면 이런 영화들을 좀 더 접하기 쉬워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이제 이 영화를 평가할 차례다. 이 영화는 평가가 가능할까? 아니면 애들 장난 수준인가?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저 배보다 배꼽이 큰 걸까?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스노비즘의 한 예시일 뿐일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이 영화에서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은 빌딩을 8시간 보여준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솔직히 말해 8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빌딩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이 영화를 5분 동안 보던, 1시간을 보던, 몸을 배배 꼬며 8시간을 보던 앤디 워홀은 별생각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실제로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빌딩 보라고 찍어놓은게 아니다. 이 영화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영화다. 나의 변호가 별로인 것 같아 외부인을 끌어들여 보겠다. 마르셀 뒤샹은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아이디어를 더 중시한 사람이다. 개념 미술가들의 작품 자체는 정말 별거 없다. 다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중요하다. 나는 <엠파이어>가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별점을 남길 차례다. 나는 별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왓챠는 별점 없이는 영화를 봤다고 등록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별점을 점수보다는 개인적인 만족도의 척도로 사용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나름의 공부를 했고, 한 단계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 엉덩이의 무거움을 증명해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좋아요13댓글1
라지
0.5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로 '개소리'라는 뜻이다. (존 레넌)
다솜땅
2.0
느껴지는 건, 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구나... 뉴욕의 위로 비행기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구나...ㅎ 러닝타임의 7시간 30분에 정확히, 첨탑쪽의 조명이 꺼지고 3분이 더 지날 무렵엔 조명이 완전히 나간다...ㅎ... 음... 음... 음... 음.... 끝!! ㅎㅎㅎㅎㅎㅎ 이 영화 너무 혁명적이다... #21.6.25 (711) # 여름에 오후 6시쯤에 재생해서 새벽에 끄끼 좋은 영화.... 물론 대형 티비에 창문 대용으로.....ㅋㅋ
Costco™
3.0
3분 정도 보다가 껐고, 후회는 전혀 없다. +) 재밌게도 '엠파이어'는 이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경험" 자체를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한다. 실제로 이 장장 8시간의 고정 숏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상식 선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애초부터 앤디 워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엠파이어'는 아예 온전히 체화해 낼 수 없는 작품이 됨으로써, 예술의 본질에 대해 되묻고 있다. 우리가 예술을 두고 뱉을 수 있는 모든 말들, 가질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은 이 작품 앞에서 짓밟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 앤디 워홀은 결코 엿이나 먹어보라고 8시간짜리 괴작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작품을 끝까지 감내해보려 애쓰고, 누군가는 나처럼 몇 분 만에 질려버린다. 또 누군가는 시놉시스만 보고 지나쳐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태도는 작품을 보기에 완전히 적합하고, 정상적이다. 이런식으로 앤디 워홀은 8시간이라는 추상적인 정도의 틀 안에서 관객이 직접 러닝타임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관객이 가질 수 있는 작품에 대한 해석/사고의 범위는 크게 확장되었다. 워홀은 '엠파이어'를 통해 관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은, 두가지 반대되는 태도를 동시에 취함으써, 상쇄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는 주관으로써 예술에 판단을 내리거나 직접 행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임과 동시에, 경험과 창작에 대한 희망의 제안이다.
샌드
2.0
영화는 결국 보지 않은 것을 봤다고 말하는 예술.
감성적인너구리
2.0
뭐 어쩌라고요.
메타몽
보고싶어요
앤디워홀은 똥을싸서 박수받겠다고 한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네티즌의 댓글 대사를 아직도 앤디워홀로 알고있는건 전세계에서 한국뿐임
석지협
4.0
(DVD 버전의 1시간 가량의 편집된 버전으로 시청) (현재 이 영화를 8시간의 온전한 버전으로 보는 방법은 내가 알기로 뉴욕현대미술관의 네거티브 필름을 통해 시청하는 것 밖에 없다. 다만 DVD로 1시간 가량의 편집본이 출시된 적이 있고, 그 판본을 볼 기회가 있어 보았다.) # 일단 당황스럽다. 관객들은 앉아서 8시간 동안 빌딩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현재 우리가 영화관에 앉아서 보는 영화와는 몇십 광년쯤 떨어져 있어 보인다. 그럼 앤디 워홀이 살아있던 60년대에는 통용되던 영화였을까?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기도 한 요나스 매카스의 책에는 앤디 워홀의 <잠>이 상영된 그 당시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잠>에서는 한 남자가 6시간가량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카스에 따르면, 500명 정도 되던 관객이 몇 분 지나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집단은 환불해달라며 난동을 부렸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관객은 몇십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 영화에 대해 내는 분노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일반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엠파이어>가 시네필에게 얻는 인기는 가히 컬트적이다. 영화를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영화를 언급하며 농담을 따먹을 때가 있다. 때론 이 영화로 진지한 고찰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쨌거나, 언젠가는 이 영화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났다. # <엠파이어>는 내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은 0에 가깝기 때문에 어떤 해석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각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나는 ‘시간’이라는 요소에 집중해 보았다. 알다시피, 8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일반적인 영화의 지속 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빌딩을 봐야 할까? 영화가 다른 예술과 가지는 가장 큰 차별점은 시간의 가시화, 형태화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만, 영화와 조우할 때는 또 하나의 차원의 시간과 만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간이다. 당신이 영화 관객이 된다는 것은 스크린이나 모니터 앞에 앉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잠깐 의식하지 않고 영화 속의 시간을 살아가기로, 그 시간 내내 앉아 있는 것을 감내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시회의 그림은 내가 그만 보길 원한다면 지나칠 수 있다. 게임은 내가 그만하기를 원한다면 끌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자리에 앉은 이상 영화 속의 시간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 속의 시간에 완전히 자리잡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잠시 현실의 자각에서 벗어나 영화와 합일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엠파이어>는 그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또는 실험)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8시간 동안, 빌딩 역시 8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보는 대다수의 영화는 절대로 우리가 가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으로 흐르지 않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아마 8시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렇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처음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8시간은 게임할 때나 다른 영화를 볼 때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8시간이 아닌, 진짜 ‘8시간’이다. 자크 오몽은 영화의 가장 뛰어난 힘이 바로 시간을 가시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오몽은 몽타주를 통한 시간의 줄이고 늘임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시간의 무게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워홀은 이를 해냈다. 아핏차퐁이 자신의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엠파이어>를 꼽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핏차퐁은 영화에서 경험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컷을 길게 늘이는 연출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스토리에 전혀 관련 없는 바깥의 풍경이나 자연의 한 부분을 굳이 영화 속에 포함시켜 등장 인물의 생각하는 시간의 길이와 관객의 사유하는 시간의 길이를 맞추고자 한다. 그래서 아핏차퐁의 영화는 러닝타임 자체가 길지 않더라고 테이크는 길어야 한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엠파이어> 역시 길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그대로 경험하게 하는 영화는 우리가 흔히 ‘느린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엠파이어>의 제작 시기를 감안한다면, <엠파이어>가 ‘느린 영화’, 또는 ‘시적 영화’ 연출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타르코프스키부터 아핏차퐁까지, 앤디 워홀부터 시작된 현실과 영화의 시간을 합일하려는 시도는 흔히 ‘느린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로 이어져 있다. 이 영화들을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닌, 경험을 주기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본다면 이런 영화들을 좀 더 접하기 쉬워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이제 이 영화를 평가할 차례다. 이 영화는 평가가 가능할까? 아니면 애들 장난 수준인가?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저 배보다 배꼽이 큰 걸까?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스노비즘의 한 예시일 뿐일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이 영화에서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은 빌딩을 8시간 보여준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솔직히 말해 8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빌딩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이 영화를 5분 동안 보던, 1시간을 보던, 몸을 배배 꼬며 8시간을 보던 앤디 워홀은 별생각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실제로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빌딩 보라고 찍어놓은게 아니다. 이 영화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영화다. 나의 변호가 별로인 것 같아 외부인을 끌어들여 보겠다. 마르셀 뒤샹은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아이디어를 더 중시한 사람이다. 개념 미술가들의 작품 자체는 정말 별거 없다. 다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중요하다. 나는 <엠파이어>가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별점을 남길 차례다. 나는 별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왓챠는 별점 없이는 영화를 봤다고 등록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별점을 점수보다는 개인적인 만족도의 척도로 사용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나름의 공부를 했고, 한 단계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 엉덩이의 무거움을 증명해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JoyKim
0.5
차라리 음악이나 배경소리라도 들어있었으면 와 ASMR의 선구자네요! 라는 리뷰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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