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의 딸
경아의 딸
2022 · 드라마 · 한국
1시간 59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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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는데 …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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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삽입곡 정보

경아의 딸

친구의 전화

엄마의 과거

PC방

엄마와 딸

횡단보도



이동진 평론가
3.0
소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은 채 의연하게.
무비신
3.5
벼랑 끝에 내몰린 곳에서 다시 내딛는 회복의 발걸음.
뭅먼트
3.0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그렇게 담담히 서로를 바라다보며 손길을 건네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다솜땅
4.0
많이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얼마나 아팠을지.. 알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피폐해졌을지.. 그 마음. 그 삶.. 한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시간. 잘 버텨내는 강한 사람으로 나와줘서 고마운 역할.. 그리고 그만큼 강한 엄마.. 못된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못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이를 유영하듯 하는 우리네 인생.. 부디, 동영상 보려면, 타국껄 뽜라.. 가까운 인생들 부담주지 말고… 수많은 연수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ㅠㅠ #22.7.18 (783)
Hyoung_Wonly
3.5
언제나 내 편인 사람, 그러나 가장 알리기 싫은 사람. 한 정당이 대표와 대변인 등을 ‘청년 남성’으로 꾸리고, 그들은 선거 기간 동안 그토록 청년, 청년을 외치며 2030 남성을 대변하겠다고 했다.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 무고죄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을 때도, N번방 방지법을 검열이라 몰아갈 때도, 그들에게 청년은 오로지 ‘남성’뿐이었다. 디지털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을 방지하는 법을 없애라고 까지 했다. 그들은 할 줄 아는 게 공포 조성 뿐인걸까. 성폭력 무고죄가 청년 정책에 속한다는 게 아주 소름 끼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청년 정책은 여성 청년을 남성 청년에게 제물로 던져주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디지털 성폭력이란 끔찍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현실 정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너무할 정도로 외면하기에만 급급하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면을 들추는 게 노출에 유리하니 매번 같은 보도 방식을 고수하고, 일상에서 여성은 자극적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공권력은 대놓고 여성이 겪는 범죄를 기피하고, 미디어는 점점 여성 인권 운동가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대립 구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마치 온 사회에서 작당모의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 여성들은 매우 교양 있고, 사람다운 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교양 있는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다 막말이 터져 나오면, 그제서야 그럴 줄 알았다면서 그런 모습이 ‘그 성별’답다고 긍정하고 비웃는다. ‘몰래카메라’라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위협처럼 다가오는 현재, 한국 남성들은 카메라로 여성을 찍는다. 영미권과 영어를 배우는 모든 국가에서는 대상을 포착하여 총을 쏘거나 카메라로 찍는 행위를 모두 ‘shoot’이라고 부른다. 수전 손택은 이런 지적을 남겼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생명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와 같다.” 카메라는 아주 대중화된 무기다. 실제 미국과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법적공간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가 총보다 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초래하고 있는 신무기인 셈이다. 특히 한국은 카메라 보급률 밀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서, 카메라 사각지대를 찾을 수 없는 수준까지 넘어온지 오래다.(정작 필요한 곳에는 없다.) 몰래카메라에 이어 스토킹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스토킹이 그저 끊으면 끊길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스토킹이란 걸 전혀 모르는 소리다. 스토킹을 하는 사람들이 괴물도 아니고 꼭 험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상처내서 상대에게 죄책감을 갖도록 만든다. 이 세상에서 남을 탓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여성을 탓하는 건 더욱 더 쉬운 일이다. 언젠가부터 성범죄와 페미니즘 관련 글에도 ‘이런 글은 돈이 된다’는 발언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관련 책, 관련 영화에도 역시 ‘PC는,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란 반응이 꼭 등장한다.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페미니즘과 미투 관련 발언, 고백 등을 지어내서라도 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전략이 잘 먹혀들어 돈을 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혐오가 돈이 되는’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른 여러 혐오 조장 비즈니스에는 무감각하다. 조회수와 광고수익이 전부인 인터넷 영상 매체, 특히 1인 방송은 경쟁적으로 혐오를 생산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범죄도 서슴치 않는 현실을 누구만 모를까. 디지털 성폭력 콘텐츠로 돈을 벌어 들이는 이들이 누굴까. 다시 이 질문에서 멈춘다. 이럴 때 글 쓰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제껏 읽거나 써온 글들은 모두 누구도 이 여성 혐오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런 점이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관심과 경각심의 문제일까. 경각심을 가질 만한 사건이 없다면 혐오 문화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건 맞다. 주변이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 뿐이라면 바뀔까.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첫걸음인 사과와 철저한 재발 방지를 약속받을 수 있을까.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위와 같은 경우를 직접 보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경아의 딸>처럼 현실을 그린 예술 매체를 통해 여성 혐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자 하면 ‘없던 여혐이 생기겠다’ ‘그렇게 뭐든지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면 일상 생활 가능?’이냐는 식의 반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 반응의 이유는 딱히 없다. 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온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원래 그런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일테다. 영화 속 경아와 연수를 옥죄어 오는 공포 역시 이런 환경에서 태동한다. 자기의 통제를 벗어난 여성, 불필요한 욕망을 드러내고, 가만히 여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주체적인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멸시와 희화화 낙인을 새긴다. 계속 수동적이고 연약한 여성들이란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이상화하여 소비하고 소환한다. 요즘 <나는 문어>라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장미 꽃밭 숨어들면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오색찬란한 문어가 될 수 있다는 가사가 좋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문어가 사는 곳은 너무 차갑고 외롭고 때로는 무섭기도 한 깊은 바닷속이다. 내가 사는 세계도 그렇다. 혐오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소수자, 여성이 아닌 사람이라도 절대 안전할 수 없다. 여성 해방과 독립이 방해받고, 성차별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곳에서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외롭고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세상이 무섭게만 보이기 시작한다. 소수자 공동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왓챠에 글을 남길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한다. 스스로도 비주류의 글을 쓰고 있다고 느껴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침묵이 답일까 싶기도 하다. 막상 이 문제들이 왓챠란 공간에서 혹시나 공론화될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반대로 외면받는 느낌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로 가뜩이나 척박한 소수자 공동체에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소수자 입장을 대변할 만큼 지식과 경험이 넓고 풍부한 편이 아니기에,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태클에 대한 부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고민은 없다. 이런 내용을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기까지 누구라도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고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 부름에 응답한 건 손가락 하나 펼까 말까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의 여성 혐오 문제로부터 비롯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아(엄마)와 연수(딸), 정인이, 구의역 김 군, 변희수 하사,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사망자 그리고 그를 찾아준 사람들, 윤 일병, 임 병장, 세월호의 아이들과 전태일. 그리고 여기에 적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도 더 나은 사회, 더 좋은 공동체를 위해 평생 같은 말과 행동을 또 하고 또 반복했을거란 걸 또 아로새기며, 억울하기도 하지만 내게 자유란 홀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자. 그리고 다음 글을 쓰게 될 때도 나는 또 후회하고 망설이겠지만, 그럼에도 또 말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나 내 편일 사람에게, 그리고 가장 알리기 싫은 사람에게 "몸 조심해.. 아니 네 편이 될게."
황재윤
3.0
그 상처들을 안고 나아가는 과정을 민감한 주제에 함몰되지 않고 굳세게.
Frank
4.5
내가 이영화를 보려고 6년내내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녔나보다. 피해여성이라면 공감할만한 요소를 너무 가지고 있는 영화. 2시간 내내 눈물이 나왔다. 단지 피해사실만 부각시키는게 아니라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과정을 보여줘서 위안이 되었다. 부디 모든 피해여성들이 꿈도 안꾸고 푹 잠이드는 그날이 오길 간곡히 빈다.
Lemonia
3.5
누구보다 힘들 나에게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돼줄 거라 믿었던 가족에게서 돌아온 것이 비난과 모욕이라면, 견뎌내기 쉽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대개 우리들은 누군가를 의지하고 살아가기 마련이고 누군가에게도 같은 잣대를 기대한다. 우리가 욕을 하고 비난을 해야 할 사람은 가해자이다. 피해자를 우리 사회 속에서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랑도 결국은 배려와 존중의 영역인데 그것을 자주 잊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가까운 누군가를 말이다. 우리가 무심결에 한 말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들이 피해자라는 굴레 속에 갇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소위 인권을 존중하며 대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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