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밤
地球最后的夜晚
2018 · 드라마/미스터리/로맨스 · 중국, 프랑스
2시간 18분 ·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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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 Down

Avyss

花花宇宙 (Live)

墨綠的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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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yss
花花宇宙 (Live)
墨綠的夜
양기연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이동진 평론가
5.0
점멸하는 기억과 발광하는 꿈이 함께 서식하는 신비로운 세계.
석미인
2.0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첫 4문장이다. 소설은 이 영화처럼 기억을 찾는 탐정이 자신의 여인인지 친구의 연인인지 알 수 없는 그녀를 찾아 미궁 속을 빙글빙글 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켓을 돌리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예요' 영화 속 꿈의 언어, 꿈은 늘 그랬다. 인과에 맞지 않아도 꿈을 꾸는 동안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꿈은 선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에 전후가 바뀐 내용을 뭉텅이로 받는다고 해도 이질감이 없다. 그러니 라켓을 돌리면 하늘을 날 것이다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경험이 예정되어 있으니 먼저 라켓을 돌려봐의 맥락이 되는 것이다. 라켓을 어떻게 돌려야 할지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꿈을 꾸는 사람은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첫 4문장을 거꾸로 돌려 보면 이렇게 된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실로 내려온 이 문단은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제발 꿈을 꾸듯 얘기하는 건 멈춰주기를, 영화가 위트와 헤어진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애초에 우리가 꿈의 언어를 나눌 만큼 내밀한 사이였냔 말이다. 가진 게 얄팍할수록 맥락을 숨길 순 있다. 그럼 꿈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친한 척은 하지 말았어야지. 정말 꿈을 말하고 싶었다면 내게 더 털어놓아야 했던 거 아닐까
정환
5.0
“기억은 영원이라지만 당장에 남은건 사실에 대한 흩어진 파편 뿐이라 오롯이 떠올린다는 것은 마치 고장난 시계를 연상시키는 반면, 오히려 깨어나면 끝나버릴 꿈의 질감이 더 오랫동안 생생하게 머무른다. 결국 영원한 기억은 산재된 진실이고 영화는 거짓으로 응집된 꺼지지 않는 마법일 때에, 진정으로 영원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평소에 영화는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 첫째는 당연하게도 이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을 담은 영화들이 있지만 영화 자체는 타인의 시선(카메라)이지, 나의 시선은 아니다. 완전하게 타인에 의해 완성된 영화에 나를 투영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그제서야 나의 시선이 머무르게 될 때이다. 타인이 제시하는 어떠한 사실 (영화는 몇 개의 쇼트로 구성된 거짓이므로 사실은 진실이 아닌 사건으로 해석한다.)에 대한 나의 해석이 영화를 내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만일 꿈이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영화라면, 영화를 보고서 덧붙이는 나의 해석은 꿈에 대한 해몽으로 여길 수 있겠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은 잊혀진 기억으로부터 구성된다고 영화는 말했다. 거짓으로 구성된 영화와는 반대로 기억은 완전한 현실이다.(기억도 어떠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기억에는 영화엔 없는 진실이 있다.) 시계는 영원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시곗바늘은 끊임없이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한 시간 중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다. 다만, 과거에 머무르게 될 그 사실만은 영원하겠으나 지금으로써 그 기억을 떠오를 때에는 당장에 남은 건 사실에 대한 흩어진 파편뿐이라 오롯이 떠올린다는 것은 마치 고장 난 시계를 연상시킨다. 일어난 사실은 영원하더라도 어느새 기억은 왜곡되어 진실과 거짓을 혼동시킨다. 때문에 우리가 잊었다고 해서 사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떠올리지 못한 사실들은 끝내 무의식까지의 내 마음 깊은 곳에 잠들고 있을 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꿈이 잊혀진 기억이라는 말은 그 기억들이 마지막으로 발악하기 위해서 무의식의 영화인 꿈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초의 영화는 기록이었다. 기차가 도착한다는 일상의 사실을 기억으로 받아들일 때에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왜곡되거나 사실이 점차 사라지는 반면, 카메라에 담긴 그 1분여간의 영상은 시선 자체가 나와는 조금 다를지언정, 그 결만큼은 생생한 기록이다. 오히려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기억보다 객관화된 영화가 생생하게 더욱 오래 남는다. 따라서 기억 속에 사는 것이 더 무서운 이유가 기억만큼은 산발적이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별되고, 선별된 기억은 내 맘대로 해석되며 절대로 객관화될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는 흩어진 잔상에 머무르는 것이 꺼져가는 촛불보다 더 위태롭다는 것이다. 초록색 책을 여자가 줬는지 벽 위에서 잊은 건지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과연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한다. 비록 영화는 언젠가는 끝난다는 시간의 제한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영화는 다시 확인할 수도 없는 흩어진 파편이 아니라, 언제든지 재생 가능한 꿈이라는 점이다. 결국 영원한 기억은 산재된 진실이고 영화는 거짓으로 응집된 꺼지지 않는 마법일 때에, 과연 무엇이 진짜 영원한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영화가 러닝타임의 끝을 향해 타고 있지만, 우리는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기억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영화를 다시 틀어 불꽃의 심지에 언제든지 불을 붙일 수 있다. 기억에 대한 영화와 꿈에 대한 영화, 이렇게 두개로 나뉘는데, 1부는 기억에 대한 영화답게 흩어진 파편들로 난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무질서의 기억들은 모두 현실, 사실, 진실이다. 다만, 오롯이 기억나지 않을 뿐. 앞서 말했듯이 꿈은 잊혀진 기억들로 구성된 영화이기에, 2부는 무의식에 잠겨있던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다시금 그 사실들로 상기시켜준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원테이크이지만, 한 시간 동안 원테이크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현실이 아닌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꿈의 질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희미해지는 기억 속 진실이 영화의 거짓으로 마법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깐을 상징하는 그 불꽃은 끝내 꺼지지 않았다. 영화는 아슬아슬한 기억보다 더욱 생명력이 길다. 기억은 인간의 한계이기에, 우리가 이 마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에 있던 게 아닐까.
재원
3.5
때로 현실은 꿈처럼 허망하고 아득하며, 어떤 꿈은 현실 보다 생생하고 황홀하다.
이건영(everyhuman)
4.0
기억은 씁쓸하고 꿈은 달콤하다, 자몽과 사과처럼.
...
4.0
지구 최초의 영화가 되거나, 지구 최후의 영화가 되거나.
Jay Oh
5.0
'영원'한 '순간'의 미덕. 밤은 짧고 꿈은 길다. 기억과 환각 그 사이 어딘가의 위태로운 궤적을 따라 천천히 회전한다. The convergence of an eternity and an instant along a dreamlike or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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