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
Celine et Julie vont en bateau
1974 · 판타지/드라마 · 프랑스
3시간 13분

리베트의 가장 잘 알려진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가장 유쾌한 그의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두 여성 주인공의 픽션 속으로의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리베트는 이야기라는 것의 본질을 깊이 있지만 경쾌하게 성찰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도서관 사서인 줄리는 공원 벤치에서 마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나이트클럽의 마술사인 셀린느는 그녀의 곁을 지나가다가 여러 가지 물건을 떨어뜨린다. 줄리는 그것들을 되돌려 주려고 쫓아가지만 셀린느는 자신을 추격한다고 생각해 계속 달아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줄리는 셀린느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조종인
5.0
배우와 배역, 시간의 선형성, 영화 안 인물과 영화 밖 관객, 관객의 개입 유무까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암묵적인 법칙들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대규모 실험.
Jay Oh
4.5
어느 날에는 반복에 대한 영화. 어느 날에는 전복에 대한 영화. 어느 날에는 무엇도 아닌 영화. 어느 날에는 영화에 대한 영화. 어느 날에는 이를 초월해 무한히 뻗어나간다. But in the next morning... Another Wonderland.
Dh
4.0
우연히 만난 셀린느와 줄리가 빠져든 이상한 저택의 마를린 #broken candy #Un Deux Trois #👋
류월
4.5
끝나지 않는 놀이, 반복되는 이야기, 마법같은 영화.
권영민
3.5
어젠 관객이던 내가 오늘은 이 무대의 마술사 ... ? 관객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현실과 영화를 거침없이 횡단하는 자유로움. . . 실제인지 픽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반복되는 기이한 공간에서 셀린느와 줄리는 이야기를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기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나아가 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이 이상한 저택과 두 주인공의 상호작용은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라는 영화와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영화가 관객을 통해 완성되는 매체임을 얘기함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영화의 이야기가 표면적으로, 혹은 직설적으로 던지는 주제의식이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관람을 넘어 각자만의 살을 붙여나가고 해석하는 능동적 관람을 독려하는 것은 아닐까. . . 깨발랄한 두 주인공들의 오두방정과 오버액션이 때론 이 영화의 유머코드가 되기도 하지만, '왜 그러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당혹스러운 때도 있다. 두 주인공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초반부와 이야기를 직접 해결하기 시작하는 후반부에서 엔딩까지의 흐름 등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긴 러닝타임을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 1974년 칸 영화제 - 감독 주간 📽️ 1974년 로카르노 영화제 - 국제 경쟁 (심사위원 특별상)
미상.
5.0
감히 최고의 영화라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심지어 재미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얼개에 크게 세 층위로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나눈다. 맞물리는 선후관계 속에서 환상, 혹은 현실이 맞물리고 그 속에서 영화(혹은 이야기, 연극, 인형극)를 만들고 보는 과정을 보여 준다. 줄리가 셀린느를 따라가는 초반의 모습은 흡사 앨리스가 흰토끼를 따라가 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통해서 앨리스가 원더랜드로 들어간 것처럼 줄리는 새로운 층위의 이야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속에서 셀린느의 직업이 마술사라는 점은 꾀나 흥미로운 설정인데 조르쥬 멜리에스가 마술사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셀린느에게 감독의 속성을 부여하는 흥미로운 장치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줄리로 보인다. 줄리의 과거 남자 이야기, 대저택과 관련해 보이는 과거사는 처음 줄리에게 보이는 등의 자국(어찌보면 이야기의 입장권, 혹은 직인 같은)과 더불어 줄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됨을 보여준다. 처음에 대저택에 들어가는 것도 사탕을 물은 것과 줄리라는 점은 그를 설명해주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각색하고 영화하는 존재는 셀린느이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계속해서 저택에 들어갈려고 하는 점에서 줄리라는 소재를 영화화하는 감독 셀린느가 된다. 그 과정에서 방안에 있는 인형들은 그들의 영화 혹은 이야기가 인형극과 같이 전개된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인형과 같은 인물들 인형의 집과 같은 대저택은 그러한 추측 혹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셀린느가 이야기(혹은 저택의 미스터리)를 탐사하는 동안 줄리는 마술사가 되는데 그 이후 둘은 함께 이야기를 감독하게 된다. 둘의 공동 감독은 흡사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같이 이루어진다. 영화를 본다는 것과 감상한다는 것에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다는 생각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된다. 이후 둘은 이야기가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되고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온다. 내용의 막힘은 그들에게 마치 또다른 이야기의 대상이 필요함을 인지시켜 주었고 그들은 새로운 이야기(도서관의 책)을 통해서 그 난관을 벗어나는 것이다. 셀린느와 줄리는 그를 통해 이야기(영화)를 막힌 구석을 통과하고 다시 이야기(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마들렌을 구해내는데 마들렌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다른 마들렌의 식구들은 인형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인형극 혹은 영화가 끝나가는 시점을 말해주듯이. 영화는 끝으로 돌아가서 처음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결국 끝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영화(혹은 환상, 꿈)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환상의 반복을 통해서 반복이 만들어내는 탈피 탈출은 영화의 처음과 끝, 반복되는 사탕과 저택을 통한 환상의 체험을 통해 반복이 만들어내는 탈출과 탈피를 이루어낸다. 이 것이 영화가 혹은 환상이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영화관 혹은 피박 받는 자(두 여성)의 도피처의 공간 밀실(셀린느와 줄리의 방)이 그들의 영화(인형극)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점도 이 영화가 말하는 바를 보여준다. 어쨌든 핍박받는 여성이라는 줄리의 아이덴티티는 그러할 수밖에 없다. 대저택 속 이야기의 고통도 무능력한 남성과 여성이 지닌 한계점과 결부된다. 셀린느와 줄리(보기에 따라서 퀴어관계로 해석되기도하는)는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P.S영화가 정말 귀엽다고 말할 수도 있다.
H.
3.0
니들끼리 뭐가 그리 즐겁니
sendo akira
4.0
현실에 냉소와 우울속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나 꾸는 평행세계에 꿈은 이렇게 신나고 유쾌하지 않을까 달콤한 초현실주의 사탕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