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
1969 · 드라마 · 프랑스
1시간 51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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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루이는 클레몽 페롱에 살고 있는 40세 가량의 엔지니어이다. 그는 미사에 갔다가 서로 시선이 마주친 한 젊은 여성에게 한눈에 반해버려, 그녀에게 곧 열렬한 사랑을 바치기로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철학교사인 그의 친구는 그를 자신의 정부인 이혼한 여의사에게 소개시킨다.운명은 그로 하여금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도록 하고 만다. 그는 아침까지 순진한 입맞춤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친근감의 표시도 삼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프랑소아즈를 다시 만나고, 그녀와 결혼한다. 5년 후, 아버지가 된 그는 해변에서 모드와 우연히 마주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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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
4.5
“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의 하룻밤은 그렇게 쌓여만 가고, 어쩌면 선택을 하기 이전의 하룻밤이 아니라 선택을 함으로써 걸어왔던 그 길의 끝에 마주한 해변의 파도 앞에서 그제서야 진정 내가 추구해오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될 지도. 중요한건 내가 나를 알게 될 때 까지의 과정.” 흥미로운 대화들이었다. 그 대화 속에서 갖가지 철학적인 논리와 수많은 개념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 대화들도 흥미로운 논설에 불과했고 하룻밤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늘어놓았던 말들도 모순적인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과 이상, 욕망과 갈등 등 수많은 고민들에 힘겨운 밤을 지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아는 것이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답을 얻기까지에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과정이 있다면 바로 고민과 선택일 것이다. 고민이 없다면 선택이 없고 선택이 없다면 결과도 없으니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터. 그렇다고 나를 잘 안다고 해서 완벽한 선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드의 집에서의 하룻밤에서의 갈등이던 종교적 신념과 잘 맞는 프랑수아를 선택한 것이던 간에 그에게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 아니 선택에 있어서 애초에 완벽한 결과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늘 후회하기 마련이고 늘 돌아보기 마련이다. 신앙은 경전이 아니라 삶의 길이라는 신부의 말씀처럼, 신이 인간에게 완벽하지 않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라는 걸 일깨워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의 하룻밤은 그렇게 쌓여만 가고, 어쩌면 선택을 하기 이전의 하룻밤이 아니라 선택을 함으로써 걸어왔던 그 길의 끝에 마주한 해변의 파도 앞에서 진정 내가 추구해오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될 지도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알게 될 때 까지의 과정이다. 선택의 과정. 우린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홀로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도 해변으로 뛰어들던 장 루이의 모습도 모두 쓸쓸하지만 참으로 아름답다.
STONE
4.0
산술적으로 계산된 결혼을 원했던 그가 머릿속에서 완벽한 조건으로 기호화되어 있는 여성과의 사랑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도덕은 미처 재단하지 못한 욕구의 영역을 은닉시키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석미인
보고싶어요
팔뚝살이 언제부터 쪘는지 곰곰히 생각중 #포스터인상비평37
Jay Oh
4.0
신앙일지, 신념일지, 운명일지. 위선일지. Then what gravitas do these words hold.
오세일
5.0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속 루이라는 인물이 지닌 신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영화에서 다루는 '파스칼의 내기'가 품고 있는 정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만 한다. 파스칼의 내기는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최초로 제시한 변증법으로써,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생전에 신을 믿으면 사후에 겪게 되는 손해는 없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생전에 신을 믿으면 사후에 천국에 가게 되어 결국엔 옳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에 반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생전에 신을 믿지 않으면 얻게 되는 이득은 없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신을 믿지 않으면 한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루이는 그러한 파스칼의 내기에서 비롯된 이론을 곧 본인의 삶 안에 절대적인 하나의 신념으로 정형화시킨 자이고, 그렇기에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고 여성과의 만남에 있어 주관성이 (과할 정도로)투영된 규칙을 세우는 일종의 맹신론자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지닌 그의 다분할 정도로 의도가 투명한 자아가 손실된 생활 방식은, 내면의 욕망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무언가에 대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권리마저 거세시키는 방향으로만 뒤틀리게 뻗어나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자학(부정)하면서까지 굳이 이처럼 인생의 즐거움을 옥죄어만 오는 미련한 신념을 지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추측건대, 그 이유는 루이 본인이 자기 자신을 지성인으로 생각하고(또는 되고 싶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지성인이라면 그들만의 타인을 지칭하는 용어인 자칭 '일반인'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기에, 루이의 신념은 모든 어리석은 피조물들이 그렇듯 자신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분수에 맞지 않는 신념, 이론 등을 설파하며 열등감에 찌든 외관을 유식함의 껍데기에 숨기기에만 급급한 인간의 추함과도 같다. - 루이는 확률이 90%인 A(모드)와 10%인 B(프랑소와)가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단순히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또는 순간의 마음이 이끄는 모드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어긋남을 보호해 줄 프랑소와를 선택하는 길이 나은 판단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하지만 그의 딴에는 올바른 선택이 될 줄 알았던 프랑소와가, 사실은 가톨릭 신자라는 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부남과 관계를 가진 타락의 존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가 타락의 존재라는 것은 세상의 심판으로 인해 얻게 된 불명예의 칭호가 아닌, 그저 루이의 신념이란 틀 안에서 결론 내린 지극히 개인의 주관에 불과한 이견이 아니던가. 평생을 이러한 모순과 싸워온 루이는 결국 일생일대의 기로가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에 굴복하고, 지금껏 미련하게 지켜왔던 가상의 신념을 버림을 택하며 프랑소와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뒤 루이는 어느 한 프랑스의 해변가에서 모드를 만나게 되고, 한때에 프랑소와가 만났던 유부남은 바로 모드의 전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루이는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행위임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진실을 모드의 앞에서 묵살하게 되고, 더 이상 그의 곁에 지성인의 신념이란 형태는 실존하지 않게 된다. 루이는 이제 자신의 삶에 대한 전진과 발전을 막을 뿐인 모순된 신념으로 지어진 끔찍한 감옥에서 벗어나고, 내면이 가리키는 방향에 충실한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이가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수고 성장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확히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자면, 루이가 신념을 버리게 된 이유는 본인의 어리석음을 직접 깨달은 성장의 개념이 아닌 그저 그동안 억누르고만 있던 욕망에 끝내 굴복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신념이 버려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들과 함께 해변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비추는 이미지에서는, 때론 본능에 충실하기도 하며 필요조건 이상의 도덕성을 억지로 지켜낼 필요가 없다는 심적 해방감에서 오는 기쁨과, 결국엔 욕망 앞에 그동안의 삶을 통째로 도려내고 무릎을 꿇은 나약한 인간상이라는 두 가지의 감상이 공존하는 이중적이고 다층적인 미학의 프레임이 완성된다.
Cinephile
5.0
'파스칼의 내기'는 계산상 합리적이기에 그에 따른 행동은 분명 이해를 따지는 현실에선 납득 가능한 선택이다. 다만 주인공의 일장 연설이 본능을 누르려는 장광설에 불과하듯, 오히려 행동의 윤리는 계산 없는 비합리적인 믿음의 도약에서 담보되지 않을까?
김동원
4.5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선을 정당화해가는 과정이다
Dh
4.0
그녀의 집에서 신성하고도 이중적인 하룻밤 #참되고 거짓된 사랑과 선택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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