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21세기를 며칠 앞둔 어느날, 익명의 도시(타이페이)에는 끊임없이 비가 퍼붓고, 도시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격리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엎드려 기고 밝은 불빛을 피해 축축한 구석으로 숨는 등 곤충처럼 행동하게 된다. 곧 수도도 끊길 예정이고 주민들은 그 구역을 즉시 대피해야 한다. 온통 물바다가 된 아파트 아래층엔 여자(양귀미 분)가, 그 위층엔 남자(이강생 분)가 살고 있다. 아래층으로 비가 새는 것을 발견한 여자는 배관공을 부르고, 누수확인을 위해 파헤친 조그만 구멍이 그 두 사람을 잇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가끔씩 남자는 그 구멍으로 여자를 살피고 구멍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 삭막하고 비 내리는 아파트에서 마치 파리의 무희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다 물을 피해 쌓아둔 짐 속으로 파고 들어가 한없이 울기 시작한다. 남자는 점점 그녀에게 매혹되어가고 점차 그 구멍 곁을 맴돌게 된다. 감기에 외로움까지 겹친 아래층 여자는 뮤지컬 화면 속에서 50년대 대만의 톱가수였던 그레이스 창의 노래를 부른다. 혼자서 외롭게 죽아가던 여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손을 발견하고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줄거리 2. 21세기의 시작을 7일 앞두고 끝없이 내리는 비는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전염병이 퍼지자 정부는 세입자들에게 검역구역으로의 이주를 명령하지만 세입자들은 단전, 단수에도 불구하고 이주를 거부한다. 위층 남자와 아래층 여자는 마루와 천정사이로 뚫린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층 여자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위층 남자는 배관공을 부르지 않고 아래층 여자는 이웃의 팔에 안겨 춤 추기를 꿈꾼다.
P1
3.5
하나의 상처가 하나의 연결로 이어지는, 서로에겐 점멸하는 등대가 되어 나아가는 비통의 인간사.. - 인간의 별거없는 감정선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민낯으로 보여준다. 챠이밍량감독의 예술적 경지란..어마무시.. 기가막힌 그레이스 창의 엔딩곡마저 일품
Jay Oh
4.0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고는 싶어서. 불쾌할지라도 단절된 공간을 잇는 구멍. Holes make us human, be it damp to the core.
Dh
3.5
암흑만이 드리워진 도시. 지독한 외로움 속에 있던 남&녀에게 우연히 생겨난 구멍, 이 우연의 산물은 유일무이한 소통의 창구가 된다.. #애증 #절망 #구원
은갈치
2.5
차이밍량 감독님 영화는 의상비는 안 들겠다;; 뭘 말하려는지는 짐작은 하겠는데 불쑥 나오는 뮤지컬인지 장기 자랑인지 통 저랑은 안 맞는다. 312
Hoon
4.0
정호승의 '수선화에게'가 떠오른다.
김도현
3.5
아파트는 주민들을 각기 구분된 층에 넣어 상호교류를 차단한다. 고로 현대인들의 무관심은 다른게 아니라 콘크리트 장벽이 만든 물리적 인식 한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차이밍량은 정확히 짚어낸다. 사람들의 공간 사이로 구멍이라도 하나 뚫는다면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를 관심 반경에 두기 시작할 것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를 향한 내밀한 욕망 뒤에는 모두 각자의 텅빈 마음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 유튜브 | 8/18
샌드
4.0
바이러스로 인해 격리된 인간의 고독과 그로 인한 공포 속에서 한줄기의 빛처럼 느껴지는 두 사람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구멍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해 풀어갑니다. 차이밍량의 다른 영화처럼 느린 진행과 적은 대사량, 그리고 그레이스 쟝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뮤지컬적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차이밍량은 언제나 그렇듯 사라지는 공간과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공기와 분위기를 정말 잘 잡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새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아쉬움, 외로움, 혹은 두려움을 바이러스라는 재난 영화의 설정을 끌고 와서 흥미롭게 전달합니다. 대사가 많지 않아 오히려 전해지는 것들이나 이야기가 속도가 빠르지 않기에 오롯이 느껴지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점이 역시나 차이밍량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노래 씬들이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엔딩 장면을 생각하고 다시 돌아보면, 어둠 속에서도 밝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노래 장면들이 왜 들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세기말에 대한 영화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격리나 마스크를 쓰는 등에 대한 건 코로나와 그 이후의 지금을 마치 예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언제나 좋은 영화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게 되면서, 오히려 이 영화는 지금 보면 가장 좋을 법한 영화처럼 제겐 느껴집니다.
MavericK
5.0
<구멍> 스크린 속 펼쳐진 하늘에는 구멍 뚫린 겨울비 쏟아집니다 누렇게 뜬 습기찬 벽진 죄다 울었고 물 흥건한 장판엔 곰팡이 슨 서리 물결 푸른빛 잔영 사이 균열마다 미완의 선율, 흘러간 그레이스 창 노래 마주보며 내뱉는 연인들의 엔딩에서 영화관 문 턱 넘어 이 땅 위에도 혹한 눈발 헤집고 생경한 비 찾아옵니다 비 냄새 파다한 대기 중 피어오른 먹구름, 갈라진 대지 위 감돌다 메마른 창공 메꾸고 해를 삼켜 스며들새 가늘한 파고 드리워 바람 멈췄던 풍향계 삐걱임만 귓가에 울적이며 텅 빈 궤적 그리우네 흐트러져 내린 빗방울은 머리 스쳐 움추린 눈썹 어귀 맺히다 뺨을 타고 물 웅덩이로 어둑하니, 가로지른 그대와 파장에 멍하니 목 놓은 떨림 달래줄 비는 내 연인 옅은 채취만 제 갈 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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