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Oh4.5알고서도 갈망하고 시달리는 인간의 속성, 인위성을 인지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의 속성. 그 결합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고상하다. Hallowed is this union of melodrama and storytelling.좋아요29댓글0
Ordet5.0후기의 로셀리니가 만들었을 법한 멜로드라마의 걸작. 감상성을 배제한 연극적인 기법을 극단으로 밀어부쳤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숭고한 경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정우현님, 이광우님, 이종호님, 박진희님, 박영석님, 이민호님, 이보선님과 함께.좋아요7댓글0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4.5이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의 미학적 믿음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졌다. 올리베이라의 스타일 혹은 영화적 미학은 워낙 방대하여 하나로 통합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영화적 전성기로 평가되는 좌절된 사랑 4부작 중 이작품을 포함한 3개의 영화(<비단구두>는 아직 보지 못했다.),혹은 <아브라함 계곡>등의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미학적 공통분모를 어느정도 찾아볼수 있다. 연극의 공간을 시작부터 철저하게 상정해 버리는 <베닐드 혹은 성모>의 파격적인 오프닝부터 시작한 그의 영화는 역시 연극이라는 전제를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내포하고 있다,그리고 거기엔 롱테이크라는 쇼트들이 그 연극적 무대를 뒷받침 한다. 그리하여 올리베이라의 영화들은 영화적 시공간의 기초를 구성하는 데쿠파주,몽타주 보다는(그러나 그가 이것들을 무시한것은 아니다) 마치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구절을 발췌하듯 쇼트로 퍼내 이미지를 만든후 그 롱테이크의 쇼트들 속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대사 혹은 나레이션 또는 문자들)간의 조응의 순간을 믿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그 조응의 순간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영상물이라는 영화의 복합성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이 올리베이라의 영화에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영화속에는 반사각을 통해 롱테이크의 리듬을 이어가는 거울이 나타나거나 반대쪽 창문을 서로 내다보는 이미지를 통해 두공간을 잇는 쇼트가 나타난다, 그러다 연극적인 요소가 나타날때가 있는데 이때 그의 카메라의 프레임 안쪽은 무대가 되고 바깥쪽은 객석이 된다. 본편의 <불운의 사랑>의 경우 굉장히 특이한 카메라의 비인칭 시점이 두번 나오는데 두 장면다 쇼트가 진행하는 도중 갑자기 카메라가 줌하여 인물도 아닌 공간의 열려진 문으로 향한다. 이는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맥추>에서 빈 공간을 이동하는 카메라가 생각나지만 올리베이라의 카메라는 (유운성 평론가가 사물적 냉정함이라고 말했던) 오즈의 시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인물들이 엄연히 화면안에 존재하여 대화하고 있음에도 카메라는 맹목적으로 그 공간을 향한다. 이는 마치 연극무대로 상정된 그의 화면속에서 가림막벽뒤의 공간을 알리는 것과 같으며 정지된 화면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우리의 인식이 변화하는것을 인지시키는 강압적 카메라이다. 연극속에서 찾는 영화의 본질, 이 시기의 올리베이라의 영화들은 정말 신비한 위치에 서있다.좋아요1댓글0
Dh
4.5
서로가 삶의 생명이였던 시마오와 테레사의 최후의 사랑 #신과 꽃 그리고 눈물 #서신
Jay Oh
4.5
알고서도 갈망하고 시달리는 인간의 속성, 인위성을 인지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의 속성. 그 결합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고상하다. Hallowed is this union of melodrama and storytelling.
Hoon
5.0
신은 사랑을 몰라 운명을 점지하고, 인간은 사랑을 앓아 운명에 저항한다. 인간이 비극으로 한발짝 다가서는 이유는 믿음이 있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Ordet
5.0
후기의 로셀리니가 만들었을 법한 멜로드라마의 걸작. 감상성을 배제한 연극적인 기법을 극단으로 밀어부쳤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숭고한 경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정우현님, 이광우님, 이종호님, 박진희님, 박영석님, 이민호님, 이보선님과 함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4.5
이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의 미학적 믿음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졌다. 올리베이라의 스타일 혹은 영화적 미학은 워낙 방대하여 하나로 통합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영화적 전성기로 평가되는 좌절된 사랑 4부작 중 이작품을 포함한 3개의 영화(<비단구두>는 아직 보지 못했다.),혹은 <아브라함 계곡>등의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미학적 공통분모를 어느정도 찾아볼수 있다. 연극의 공간을 시작부터 철저하게 상정해 버리는 <베닐드 혹은 성모>의 파격적인 오프닝부터 시작한 그의 영화는 역시 연극이라는 전제를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내포하고 있다,그리고 거기엔 롱테이크라는 쇼트들이 그 연극적 무대를 뒷받침 한다. 그리하여 올리베이라의 영화들은 영화적 시공간의 기초를 구성하는 데쿠파주,몽타주 보다는(그러나 그가 이것들을 무시한것은 아니다) 마치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구절을 발췌하듯 쇼트로 퍼내 이미지를 만든후 그 롱테이크의 쇼트들 속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대사 혹은 나레이션 또는 문자들)간의 조응의 순간을 믿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그 조응의 순간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영상물이라는 영화의 복합성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이 올리베이라의 영화에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영화속에는 반사각을 통해 롱테이크의 리듬을 이어가는 거울이 나타나거나 반대쪽 창문을 서로 내다보는 이미지를 통해 두공간을 잇는 쇼트가 나타난다, 그러다 연극적인 요소가 나타날때가 있는데 이때 그의 카메라의 프레임 안쪽은 무대가 되고 바깥쪽은 객석이 된다. 본편의 <불운의 사랑>의 경우 굉장히 특이한 카메라의 비인칭 시점이 두번 나오는데 두 장면다 쇼트가 진행하는 도중 갑자기 카메라가 줌하여 인물도 아닌 공간의 열려진 문으로 향한다. 이는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맥추>에서 빈 공간을 이동하는 카메라가 생각나지만 올리베이라의 카메라는 (유운성 평론가가 사물적 냉정함이라고 말했던) 오즈의 시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인물들이 엄연히 화면안에 존재하여 대화하고 있음에도 카메라는 맹목적으로 그 공간을 향한다. 이는 마치 연극무대로 상정된 그의 화면속에서 가림막벽뒤의 공간을 알리는 것과 같으며 정지된 화면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우리의 인식이 변화하는것을 인지시키는 강압적 카메라이다. 연극속에서 찾는 영화의 본질, 이 시기의 올리베이라의 영화들은 정말 신비한 위치에 서있다.
휴섬
4.5
16th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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