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5.0어떤 황량한 풍경 속에서 돌연 등장한다. 부서진 담장을 넘고선 잠시 주춤이는 동작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불안이 감지되는 분투에 서서히 빠져든다. 그러다 다시금 무로 돌아가는 존재. 오직 깊고 깊은 불안으로 조형된 존재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실존적 고민 속에 던져지던 서부 사나이적 무드의 형상화는 아닐까(심지어 헨리 폰다는 '이름이 없다'). 술 취한 활기가 넘실대는 순간에도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에 함께 사로잡히고, 주인공이 부재하며 음악과 춤이 감싸도 주인공의 음울함이 마치 눈앞에 새겨진 듯 아른거린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하고, 존재의 분투를 무의미케 하는 실존적이고 성스러운 탄식이 맴돈다. 그럼에도, 또 모를 희망을 남기는 영화는 마치 심연을 헤메는 것만 같다. 성서를 알레고리로 한 추상적인 드라마지만, 그것에 무지한 사람도 경탄케 하는 표현주의적인 조명, 구도, 무드가 압도적이다. 가히 완벽한 오프닝. 빛을 받으며 얼굴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어떤 (무기력한) 고결함, 그러나 둘러싼 끝없는 어둠이 주는 짙은 불안. 이따금 등장하는, 힘차게 타오르는 촛불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가. 멕시코의 마을이 주는 이국적인 풍경과 숲과 황야의 서로 다른 심상까지. 특히 마을 장터의 활력과 멕시코 경찰의 긴박한 추격을 교묘히 잇는 음악과 편집, 장터의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주는 비극의 기운, 그러다 두 순간이 충돌할 때의 파열감을 이뤄내는 리듬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두 번 등장할 정도로 강조되며 화면의 심도를 극대화 하는) 기나긴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 새겨지는 무언가 구도적인 고난 내지 불안, 혹은 결의. 후반부 "Another State"의 성소에서 잠든 밤 창틀을 타넘는 부랑자의 잽싸면서도 조심스러운, 그림자에 가까운 어두운 움직임. 흡사 <웨건 마스터>의 악당들마냥 마치 뱀을 닮은, 아무래도 유다적인 존재감이다. 마지막 엘 그링고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순간에도 주인공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고, 이윽고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프닝마냥 다시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마리아의 모습. 클로즈업. 겨우 쥐어진 나무 십자가. 어쩌면 주인공의 얼굴에 가장 환하게 빛이 비치는 마지막 순간, 계단을 오르는 비극적인 뒷모습의 결연함 혹은 신성함. 구원인지 희망인지, 또 알 수 없는 무의미한 몸짓의 예고인지, 현재에 멈추는 듯한 엔딩까지. 무성영화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질지언정 감상에만 종속되진 않는 음악의 조화, 그리고 그 리듬 안에서 무엇보다 헨리 폰다의 표정과 제스처, 즉 신체가 완성한다. <젊은 링컨>을 닮았달지, 히치콕의 <오인>을 연상시키는, 성스럽지만 느린 혹은 머뭇대는 동작들. 예컨대 중반부 감옥에서 양손의 물통을 놓고 촌장에게로 뛰어갈 때 그 표정과 구부정한 자세 같은 것. 뜀박질의 무기력함과 유약함이 전후로 교차되는 촌장의 단연한 표정과 대비되고, 와중에 힘없이 벗어지는 모자마저 인상적이다. 그저 우연과 이유 모를 의무에 이끌리는 <도망자>는 이야기를 이루는 인과의 무게보다 어둠을 다듬은 이미지로 어떤 견고하고 절망적인 세계를 두드리고 싶어 보인다. 웃음을 잃어버린, 아무래도 포드답지 않은 무드는 차라리 히치콕 혹은 브레송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어설픈 감상만 자리하는 게 슬프지만, <도망자>는 더 없이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자가 되어 그야말로 기이한 매혹을 이끄는 영화다.좋아요15댓글0
오세일4.5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가톨릭을 배척하고 금주법이 시행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신부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금주법을 거스르기까지 하면서 와인을 얻고자 하고, 정부의 눈을 피해 아이에게 세례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에 혹여나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서민들의 고통을 뒤로 한 채 숨어 다니는, 어찌 보면 성직자의 이상적인 숭고함에 도달하지 못한 도망자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경찰은 부패했고 인디언을 옛날의 종족으로 치부해버리며 차별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인디언 출신의 한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종족과 적대적인 위치에 서있는 정부 소속의 경찰이 되어, 다수의 혈연을 배신하고 개인의 안락함을 챙긴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버린 삶을 택한 만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죄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더 이상 시민들을 위한 법을 기대할 수 없는 불모지인 듯하다. 그렇기에 미국 출신의 한 남자는 그러한 정부의 부조리함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의 재산이 보관되어 있는 은행을 털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신부님을 도와준다. 하지만 나라의 법을 거스른 중죄를 저질렀기에, 경찰들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도망자이기도 하다. - 헨리 폰다가 옛날에 몸담았던 교회를 다시 찾아가 문을 여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바닥에 드리우는 그의 그림자가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형상을 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헨리 폰다가 결국 사형을 당한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신부님의 등장을 보여주는 엔딩 시퀀스에서는,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그의 뒤에서 빛나는 후광이 마치 헨리 폰다의 부활을 암시하는 의도적 연출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도망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세상을 떠난 자에 대한 구원을 읊조리며,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개인의 구원에 대해 말한 것일 뿐, 끝내 부패한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개인의 변화를 통한 구원에 대한 희망과, 바뀔 수 없는 세상의 모순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좋아요3댓글0
곰절미4.5절망에빠진 인간이 기댈 곳은 술과 종교뿐이라네... 인간의 기댐목이 되기를 자처한 한 인간이 고뇌하고 고해하고 망설이고 불안해하고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도망치는 유약함이 좋고, 절망으로 끝나나싶던 이야기가 십자가 형상의 빛으로 희망을 남기는 것도 좋고, 좋았음... 딴소린데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순교자>처럼 신의대리인을 자처하는 인간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좀더 뚜렷해짐좋아요1댓글0
토끼나루4.51. '부활'은 곧 '구원'이다. (일종의 착시를 이용하고 있다) 2. 그(헨리 폰다)는 믿음이자 불신이자 원죄이자 고통이자 구원이다. 3. 영화의 초반과 영화의 후반부는 연결된다. 영화 안에서, 혹은 세상에서 그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좋아요1댓글0
keorm2.5몇몇 장면이 돋보이지만 엉성한 이야기 구조와 전개의 종교, 순교영화. ============== 도망자(The Fugitive)는 미국에서 제작된 존 포드,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감독의 1947년 드라마 영화이다. 헨리 폰다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머리안 C. 쿠퍼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남미의 어느 나라, 공공장소에서 종교를 표출하는 것이 금지된다. 탄압으로 인해 마지막으로 마을에 남게 된 신부는 농부로 변장한 채 교회에 은신하고, 그는 정부의 눈길을 피해 마을 사람들의 종교적 수요를 해소해주려 한다. 14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지만 포드는 〈역마차〉(1939)에서 서부극의 고전적 규범을 정착시켰고, 〈수색자〉(1956)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통해 스스로 만든 세계를 성찰하고 변주했다. 그는 서부극의 종결자다. 하지만 포드 자신은 순박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간결한 이야기에 담아내는 것을 좋아했다. 〈도망자〉는 포드가 좋아한 영화이며, 그 자신이 원했던 대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평론가들에게 최악의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인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서 착안한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권력층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부의 나약함과 패배감, 전락을 거쳐 죽음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면 광대한 모뉴먼트 밸리의 풍광은 종교적 숭고에 이른다. 브레송적인 서부극이라 할만한 기이한 걸작. (부산시네마센터 2011)가장 먼저 좋아요를 누르세요댓글0
JE
5.0
어떤 황량한 풍경 속에서 돌연 등장한다. 부서진 담장을 넘고선 잠시 주춤이는 동작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불안이 감지되는 분투에 서서히 빠져든다. 그러다 다시금 무로 돌아가는 존재. 오직 깊고 깊은 불안으로 조형된 존재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실존적 고민 속에 던져지던 서부 사나이적 무드의 형상화는 아닐까(심지어 헨리 폰다는 '이름이 없다'). 술 취한 활기가 넘실대는 순간에도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에 함께 사로잡히고, 주인공이 부재하며 음악과 춤이 감싸도 주인공의 음울함이 마치 눈앞에 새겨진 듯 아른거린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하고, 존재의 분투를 무의미케 하는 실존적이고 성스러운 탄식이 맴돈다. 그럼에도, 또 모를 희망을 남기는 영화는 마치 심연을 헤메는 것만 같다. 성서를 알레고리로 한 추상적인 드라마지만, 그것에 무지한 사람도 경탄케 하는 표현주의적인 조명, 구도, 무드가 압도적이다. 가히 완벽한 오프닝. 빛을 받으며 얼굴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어떤 (무기력한) 고결함, 그러나 둘러싼 끝없는 어둠이 주는 짙은 불안. 이따금 등장하는, 힘차게 타오르는 촛불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가. 멕시코의 마을이 주는 이국적인 풍경과 숲과 황야의 서로 다른 심상까지. 특히 마을 장터의 활력과 멕시코 경찰의 긴박한 추격을 교묘히 잇는 음악과 편집, 장터의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주는 비극의 기운, 그러다 두 순간이 충돌할 때의 파열감을 이뤄내는 리듬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두 번 등장할 정도로 강조되며 화면의 심도를 극대화 하는) 기나긴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 새겨지는 무언가 구도적인 고난 내지 불안, 혹은 결의. 후반부 "Another State"의 성소에서 잠든 밤 창틀을 타넘는 부랑자의 잽싸면서도 조심스러운, 그림자에 가까운 어두운 움직임. 흡사 <웨건 마스터>의 악당들마냥 마치 뱀을 닮은, 아무래도 유다적인 존재감이다. 마지막 엘 그링고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순간에도 주인공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고, 이윽고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프닝마냥 다시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마리아의 모습. 클로즈업. 겨우 쥐어진 나무 십자가. 어쩌면 주인공의 얼굴에 가장 환하게 빛이 비치는 마지막 순간, 계단을 오르는 비극적인 뒷모습의 결연함 혹은 신성함. 구원인지 희망인지, 또 알 수 없는 무의미한 몸짓의 예고인지, 현재에 멈추는 듯한 엔딩까지. 무성영화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질지언정 감상에만 종속되진 않는 음악의 조화, 그리고 그 리듬 안에서 무엇보다 헨리 폰다의 표정과 제스처, 즉 신체가 완성한다. <젊은 링컨>을 닮았달지, 히치콕의 <오인>을 연상시키는, 성스럽지만 느린 혹은 머뭇대는 동작들. 예컨대 중반부 감옥에서 양손의 물통을 놓고 촌장에게로 뛰어갈 때 그 표정과 구부정한 자세 같은 것. 뜀박질의 무기력함과 유약함이 전후로 교차되는 촌장의 단연한 표정과 대비되고, 와중에 힘없이 벗어지는 모자마저 인상적이다. 그저 우연과 이유 모를 의무에 이끌리는 <도망자>는 이야기를 이루는 인과의 무게보다 어둠을 다듬은 이미지로 어떤 견고하고 절망적인 세계를 두드리고 싶어 보인다. 웃음을 잃어버린, 아무래도 포드답지 않은 무드는 차라리 히치콕 혹은 브레송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어설픈 감상만 자리하는 게 슬프지만, <도망자>는 더 없이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자가 되어 그야말로 기이한 매혹을 이끄는 영화다.
김대명
4.0
<젊은 링컨>에 이어 다시 한번 불안에 떨고 결정 앞에 망설이는 성자를 연기한 헨리 폰다... 이 기묘한 불안 앞에서는 도저히 어쩔 줄 모르겠다
오세일
4.5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가톨릭을 배척하고 금주법이 시행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신부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금주법을 거스르기까지 하면서 와인을 얻고자 하고, 정부의 눈을 피해 아이에게 세례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에 혹여나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서민들의 고통을 뒤로 한 채 숨어 다니는, 어찌 보면 성직자의 이상적인 숭고함에 도달하지 못한 도망자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경찰은 부패했고 인디언을 옛날의 종족으로 치부해버리며 차별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인디언 출신의 한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종족과 적대적인 위치에 서있는 정부 소속의 경찰이 되어, 다수의 혈연을 배신하고 개인의 안락함을 챙긴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버린 삶을 택한 만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죄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 불문적이고 특정 나라로 국한되지 않은 그곳은, 더 이상 시민들을 위한 법을 기대할 수 없는 불모지인 듯하다. 그렇기에 미국 출신의 한 남자는 그러한 정부의 부조리함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의 재산이 보관되어 있는 은행을 털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신부님을 도와준다. 하지만 나라의 법을 거스른 중죄를 저질렀기에, 경찰들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도망자이기도 하다. - 헨리 폰다가 옛날에 몸담았던 교회를 다시 찾아가 문을 여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바닥에 드리우는 그의 그림자가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형상을 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헨리 폰다가 결국 사형을 당한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신부님의 등장을 보여주는 엔딩 시퀀스에서는,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그의 뒤에서 빛나는 후광이 마치 헨리 폰다의 부활을 암시하는 의도적 연출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도망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세상을 떠난 자에 대한 구원을 읊조리며,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개인의 구원에 대해 말한 것일 뿐, 끝내 부패한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개인의 변화를 통한 구원에 대한 희망과, 바뀔 수 없는 세상의 모순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머빻킹
5.0
아직 포드님의 영화를 10편도 못봤지만 그분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는 무조건 이 영화라 말할거다 무조건
곰절미
4.5
절망에빠진 인간이 기댈 곳은 술과 종교뿐이라네... 인간의 기댐목이 되기를 자처한 한 인간이 고뇌하고 고해하고 망설이고 불안해하고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도망치는 유약함이 좋고, 절망으로 끝나나싶던 이야기가 십자가 형상의 빛으로 희망을 남기는 것도 좋고, 좋았음... 딴소린데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순교자>처럼 신의대리인을 자처하는 인간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좀더 뚜렷해짐
우울한cut과 유쾌한song
0.5
꿈꾸듯이 잠들고 싶다.
토끼나루
4.5
1. '부활'은 곧 '구원'이다. (일종의 착시를 이용하고 있다) 2. 그(헨리 폰다)는 믿음이자 불신이자 원죄이자 고통이자 구원이다. 3. 영화의 초반과 영화의 후반부는 연결된다. 영화 안에서, 혹은 세상에서 그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keorm
2.5
몇몇 장면이 돋보이지만 엉성한 이야기 구조와 전개의 종교, 순교영화. ============== 도망자(The Fugitive)는 미국에서 제작된 존 포드,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감독의 1947년 드라마 영화이다. 헨리 폰다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머리안 C. 쿠퍼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남미의 어느 나라, 공공장소에서 종교를 표출하는 것이 금지된다. 탄압으로 인해 마지막으로 마을에 남게 된 신부는 농부로 변장한 채 교회에 은신하고, 그는 정부의 눈길을 피해 마을 사람들의 종교적 수요를 해소해주려 한다. 14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지만 포드는 〈역마차〉(1939)에서 서부극의 고전적 규범을 정착시켰고, 〈수색자〉(1956)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통해 스스로 만든 세계를 성찰하고 변주했다. 그는 서부극의 종결자다. 하지만 포드 자신은 순박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간결한 이야기에 담아내는 것을 좋아했다. 〈도망자〉는 포드가 좋아한 영화이며, 그 자신이 원했던 대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평론가들에게 최악의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인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서 착안한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권력층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부의 나약함과 패배감, 전락을 거쳐 죽음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면 광대한 모뉴먼트 밸리의 풍광은 종교적 숭고에 이른다. 브레송적인 서부극이라 할만한 기이한 걸작. (부산시네마센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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