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를 다시 정의한다!
‘사회적 성원권’ ‘환대’ 등의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인류학자 김현경의 첫 저서 『사람, 장소, 환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며, 사회를 ‘시계’(즉 기능을 가진 구조들의 총체)나 ‘벌집’(재생산적 실천을 하는 주체들에 의해 재생산되는 구조)에 비유하는 구조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를 다시 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사람과 장소를 근원적으로 연관된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한나 아렌트와 유사하다. 아렌트에 따르자면, 사회는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현상하고, 타인이 나에게 현상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아렌트의 관심이 주로 정치적, 법적 문제에 맞추어져 있다면, 김현경은 공동체와 주체를 구성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층위로 시야를 확장한다.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상호작용 질서interaction order’에 대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연구는 이러한 확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김현경은 상호작용 질서 대 사회구조라는 고프먼의 이분법을 따르면서, 상호작용 질서에서의 형식적 평등과 구조 안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이 어떻게 현대 사회 특유의 긴장을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잘살건 못살건 배웠건 못 배웠건 모두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근대 이전에 존재하던 신분적 모욕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새로운 형태의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모욕, 즉 굴욕의 형태로 등장하는가에 대한 분석은 아주 날카롭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할 때, 일한 대가가 터무니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굴욕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모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모욕은 구조가 아니라 상호작용 질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해고한 사장도,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 할머니도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즉 구조의 담지자로서 구조가 명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심지어 미안해하면서 자기들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던가?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적敵을 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 책은 또한 환대hospitality의 개념이 내포하는 역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적대적인 타자까지도 환대할 수 있는가?
자크 데리다는 이러한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고, 대가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돌변하여 우리를 해치려 할 때도 여전히 그러한가? 김현경은 데리다가 환대를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자신의 사적 공간을 개방하는 문제와 결부시키거나, 주인의 자리에 개인 대신 ‘국민’을 대입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환대는 외부인을 맞이하는 문제, 또는 울타리를 개방하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국민이 되고, 가족의 일원이 되는가?
이 책은 환대를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 그가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 현상하고 있음을 몸짓과 말로써 확인해주는 행위로 볼 것을 제안한다.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인같이 반사회적 행동을 한 사람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계속 환대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아니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한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람, 장소, 환대』는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어온 이론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학계의 관행이나 기준에 따른 건조한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 저자는 사유의 궤적이 드러나는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면서도,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기보다는 오랜 연구와 강의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더라면 기대하기 힘들 다방면의 참고문헌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해나감으로써 일반 독자들도 지적 자극과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만만치 않은 문제의식에 유려한 글 솜씨까지 갖춘,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야 할 저자의 등장을 알리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김토마
4.5
친구들한테 나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대학 가기 전까지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아" 그 말이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새롭게 다가온다
양지연
5.0
여성은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환대의 권리 -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 - 는 그러므로 당분간 우리의 아젠다를 구성할 것이다.
혜원
5.0
인간이 '사람'으로 '환대' 받는다는 것은 '장소'를 인정받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부터 인간이 성원권 획득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모욕 등을 언급하며 내용을 전개한다. 이는 후반부에 서술되는 환대에 대한 설명의 바탕이 되는데, 그것은 조건부적 환대인 우정에서 시작해 절대적 환대로 확장되며 완성된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우리가 모두 절대적 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 되곤 하는 여러 약자들에 대한 고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람,장소,환대>는 인류학적 고찰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박공익
4.5
왜 책을 읽어야 하냐면 바로 이런 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을 만한 그릇은 책밖에 없다.
Yeoli
5.0
전공책 말고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어렵지만 쉽게' 자신의 논리 전개를 빌드업해가는 책. 또한 우선 다루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 다만, 인류학 특유의 만연체와 어려운 빌드업은 책을 보기 싫게 할 수도 있다.
pizzalikesme
4.5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심 결여의 탓으로 돌린다. 160p 우정은 차별성의 인정이다. 우정이란 무수히 많은 사람 가운데 어느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우정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을 준다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75p
이의현
5.0
아렌트와 레비나스를 종과 횡으로 뛰어다닌다. 우리는 왜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부재한 삶은 왜 삶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 매우 면밀하고 상세하고 친절한 답변.
134340
3.0
모든 파트가 이성적으로 시작해 감정적으로 끝난다. 계속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하니 공동체와 평등에서도 멀어져 간다. 특히 인간의 신성함을 언급하는 부분들은 이렇게 피상적일 수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중요한 문제의식이 들어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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