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발터 벤야민 사상의 전개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1928년 독일 로볼트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이전의 벤야민 글쓰기가 주로 고전적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과 비평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면, 여기서는 현실과 초현실 세계의 다양한 경험들에 대한 아포리즘적이면서도 이미지적인 성찰의 벤야민 특유의 글쓰기 스타일이 처음 선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독자들이 이 책의 출간을 애타게 기다렸던 바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통행로』는 그 탄생배경에 대한 사전(事前)적 이해가 없이는 독해가 힘든 텍스트이다.
발터 벤야민 중ㆍ후기 사상의 신선한 폭발력을 보여주는 역작
분명 『일방통행로』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현대 도시의 길거리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길거리를 따라 가로에 늘어선 다양한 가게의 간판, 벽보, 플래카드, 광고판, 쇼윈도, 번지수가 적인 집들, 기타 공간들처럼... 이 거리를 산보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공간들의 열림과 닫힘,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모습들을 벤야민은 관상학적 내지 현상학적 시선으로 '사유이미지'로 읽어낸다. 그것은 이미지로 응결된 사유, 또는 관상학적 이미지에서 촉발된 사유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이 책에 대한 이해이다.
하지만 그가 책이 출간된 뒤 호프만스탈(그가 바로 이 책의 출판을 주선했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적ㆍ외적 구성에서 독특한 부분 어디서든 '시대의 흐름'과의 어떤 타협의 흔적도 엿보지 말아주십사는 것입니다. 바로 그 기이한 요소들을 드러내는 곳에서 이 책은 내적인 투쟁에서 얻어낸 승리의 트로피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투쟁의 기록일 것이고, 그 투쟁의 대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것은 현재성을 영원의 이면(裏面)으로서 역사 속에서 포착하고 동전 뒤에 가린 이 이면을 찍어내는 일입니다. 그밖에 이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파리에 빚지고 있고 제가 이 도시와 벌인 대결의 첫 시도입니다. 저는 이 후속편에서 이러한 의도들을 이어갈 생각이고, 제목은 '파리의 파사주'(Pariser Passagen)이 될 것입니다.??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 텍스트가 낡은 글쓰기 전통을 파기한다는 점에서보다는 그 내용의 '급진성' 때문에 더 주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애초에 의도한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가 목적한 바는 변화에 적응하고 개인과 사회의 파괴적 발전을 중단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정치적 태도의 필요성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독해한 방식은 이 책의 일면(一面)만을 본 것이다
『일방통행로』의 입구에 위치한 첫 공간의 이름은 「주유소」이고, 그 단편은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로 시작한다. 주유소는 대도시 자동차 문화의 역동성, 속도, 에너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부르주아 개인의 관념론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도덕에 뿌리를 둔 '확신'이나 '신념'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 사람들의 삶을 이끌기에는 고리타분한 덕목이 되었다. 따라서 이 도발적이고 의미심장한 첫 문장은 이 책 전체의 모토로 내세울 수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일방통행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앞서의 호프만스탈에게 보낸 편지글에 드러났듯이, 이 책은 그의 미완성 역작 『파사주』(Passagen-Werk)의 선구적 작업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아도르노는 『일방통행로』가 아포리즘들의 모음이라기보다는 '사유이미지'의 모음이라고 본다. 그 사유이미지는 초현실주의적 글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자들이 진부한 것, 낡은 것, 사소한 것, 우연적인 것, 아니 무의미한 것, 오해, 키취(Kitsch) 등에 대해 꿈의 해석을 시도한 점과 사람보다 사물에 경도된 점, 그러한 진부한 일상에서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들'을 끌어내려고 한 점에 주목하면서 현대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자 인간'(Etui Mensch)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일방통행로』는 단순한 꿈과 기지에 찬 아포리즘들의 모음, 아방가르드적 산문형식의 특이한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폭발력을 갖는 벤야민 중ㆍ후기 사유의 모티프들이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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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사유의 깊이 보단 이야기꾼의 재능이 보인다. 그러나 프루스트 냄새가 너무 심해서 괴롭당
사서
5.0
와 ... 벤야민 사랑해요 ...
민해경
5.0
파편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프롤레테리아의 기억
jude
4.0
"사람들은 명정의 행복이 갖는 수수께끼들에 가까이 가기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실타래를 풀어내는 단순한 행위 속에 어떤 쾌락이 숨어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쾌락은 창조의 쾌락과 마찬가지로 명정의 쾌락과도 아주 깊은 친화성을 갖는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뚫고 나아가는 동굴 속 구불구불한 길들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발견자로서의 기쁨을 거기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데 근거하는 또 다른 리듬의 축복의 바탕 위에서만 향유한다."(203쪽)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을 말하지 않으면서 온갖 사유이미지들을 잉여 없이 꾹꾹 눌러 담은 이 새로운 글쓰기의 양식은 벤야민이 얼마나 훌륭한 작가이자 이야기꾼이었는지를 보증한다.
Heedae Shin
5.0
망자로부터 오늘을 전해 듣는 기쁨
남동경
3.0
한 개의 문장,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모두 별개이다. 앞의 것을 이어붙인다고 뒤의 것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담긴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또 그 재료가 얼마나 아름답든 간에 파편들을 모아 만든 책에는 집중하기 어렵다. 전통적 글쓰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면 끝까지 책으로 출판하지 말고 여기저기 흩어진 상태 그대로 두어 독자들이 찾아 헤매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서혁진
키냐르와 벤야민
영화일기장
4.0
'거울상, 꿈, 미메시스, 이미지 / 지금 여기'에 대한 생각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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