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 Fantasy/Drama · Thailand, France
1h 53m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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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fering from acute kidney failure, Uncle Boonmee has chosen to spend his final days surrounded by his loved ones in the countryside. Surprisingly, the ghost of his deceased wife appears to care for him, and his long lost son returns home in a non-human form. Contemplating the reasons for his illness, Boonmee treks through the jungle with his family to a mysterious hilltop cave - the birthplace of his firs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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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들롱
5.0
오늘은 영잘알이 되는 법에 대해 알아보겠다. 영잘알이 되려면 이름을 알아야 하는 감독이 세명 있다. 바로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그리스의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이다. 이 감독들의 특징은 괴상하고 길어서 외우기 힘든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을 이용해서 우리는 영잘알이 될 수 있다. 실전 적용 사례를 알아보자. 다음과 같은 대화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친구A : 야 너네 인터스텔라 봤냐? 개쩔지 않냐?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중에 제일 훌륭한것 같애 친구B : 이번에 신작 나온다던데? 그 뭐시지 덩크르크인가? 친구A : 덩케르크? 그거 개오질듯 당황하지 마라. 당신은 영잘알 코스를 이수했다. 여기서 지식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영잘알) : 흠, 크리스토퍼 놀란도 나쁘진 않지만 나는 아직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작품세계에 견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친구A : 아피 뭐?? 당신(영잘알) : 아핏차퐁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는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같은 훌륭한 감독도 있고..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도 빼놓을 수 없지. 이들의 작품세계는 아주 심오하고 훌륭해. 친구B : 대표작 뭐 있는데? 당신(영잘알) : 음.. 딱히 대표작을 꼽기엔 모든 작품이 훌륭해서.. 이렇게 당신이 영잘알임을 선보인 다음부터는 대화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친구A : 야 여친이랑 더킹볼까 공조볼까? 컨택트? 그것도 재밌겠.. 친구B : 야 닥쳐 저새끼왔다 영화얘기 그만해. 영잘알이 되는법은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석미인
1.5
no camera, no story. spy inside here, this is my conclusion. 세타쿤아 나도 영화에 대한 순정이 있다. 니가 이런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며는 뫄 그땐 나도 별점 깡패가 되는거야.
STONE
4.5
생자가 빛을 응시할 때 망자는 암전을 응시하듯이, 관객이 영화를 보는 순간 영화도 어둠 속 관객을 응시한다.
이동진 평론가
4.5
영화가 다룰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mekong1922
4.5
분미 삼촌은 죽음을 이해했다. 동시에 삶을 이해했다. 먼저 죽음을 앞둔 분미에게는 총 두 가지 일어난다. 사라짐과 나타남. 어느 날 과거의 잘못으로, 미지의 고통과 함께 병든 분미에게 뜬금없이 아내와 아들이 나타난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유령과 원숭이의 모습으로. 삶의 무작위성과 영혼의 욕망이 뒤엉켜 원숭이의 모습이 돼버린 아들. 그리고 분미의 아내 즉, 유령은 불현듯 분미에게 나타나 그의 마지막 나날들을 함께 하려 한다. ‘미래’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과거’의 모습을 지워나가는 것, ‘과거’에 친구나 소중한 것들을 두고 와 그 과정이 분명 두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미지의 고통과 필연적인 고통은,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죽고 다시 태어난다. 분미의 아들은 자연의 유혹에 이끌려, 본능에 매료되어 속세를 버리고 자연과 체화되어 나타난다. 자신의 욕망으로, 다른 ‘모습’을 선택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현상과 수순일 뿐인 것이다. 이에 연장선으로 공주와 가마꾼의 신화같은 이야기를 꺼내 성스럽게 이 수순을 표현한다. 그를 통해 우리와의 거리감을 자아내지만 분미의 아들 또한 이 경험을 했고, 결코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 분리된 독립적인 일이 아니라고 영화는 표명한다. 그렇기에 분미는 행복하게(내 생각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미지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 동굴에 도착하여, 마지막 나날을 덤덤히 흘려보낸다. 원천에서 수순을 겪는 것이다. 이 지점과 감정은 현재 속세에 머물러 유령의 존재를 겪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딱딱해진 사고로,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와 같이 하나로 귀결되는 결말을 원할 것이다. 그런 물음으로 점철될 때 유령은 사라진다. 우리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분미도 그렇다. 죽음에 있어서, 자신의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가며 젠과 통을 두고 사라진다. 동시에 유령도 사라진다. 젠과 통은 분미를 따라간다. 쫓아간다. 하지만 잡을 수 없다. 이를 통해서 영화는 운명에 잡힐까 봐 달아나도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영혼과 육신을 따로 이탈시켜 방황하며 나의 존재에 대한 지대한 물음을 멍청하게 뒷전으로 치부하기보다는, 그저 병든 나의 몸을 과거에 안착시켜 또 다른 안식처로 영혼을 흘려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속세를 놓아버린 원시의 상징인 듯한 스님으로 살아가는 통은 역설적으로 그에 차림과 맞지 않게 야식을 먹자고 하고 이성의 집을 넘나든다. 또 폭포가 아닌 속세의 산물인 샤워기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젠은 자연의 바람이 아닌 에어컨이 만든 인공적인 흐름을 맞이한다. 또 스님의 무소유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닌 것 같지만 통의 나체를 궁금해한다. 뭔가 빗나간듯한 두 욕망의 체계를 지닌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듯,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영혼과 육신 또한 둘로 나누어진다. 분리된다. 그들은 진정 삶에 대해 쫓아가는 것이 아마 불가능해 보인다. 자신의 영혼이 원하는 것과 내가 향하는 곳이 다르다는 걸 인지한 통의 표정과 젠의 모습은 어딘가 처량해 보이고, 두려워 보인다. 그들이 절대 다가가지 못하고,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른다. 근데 그건 아마 우리도 그럴 것이다. 이뤄내지 못하는 허구의 모습을 위해, 영화를 찾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와 현실이라는 기로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유영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통과 젠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투영시켜, 두 갈래의 길 중 하나의 모습을 고르라고 한다. 삶과 영혼에 대한 물음이 우리에게 불현듯 ‘나타난다.‘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하나가 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모르겠어‘라는 대답이 떠오를 때쯤, 영화는 ’사라진다.‘ 정글과 언덕 그리고 계곡 앞에 서면 짐승이나 다른 존재였던 내 전생이 떠오른다.
Cinephile
4.5
영화의 아름다움은 영화 속 가상에 즉물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그곳으로 영영 넘어갈 수 없는 현실 속 관찰자의 감상이 지어낸 산물이다. 따라서 영화로 아름다움을 쫓는 과정은 마치 유령을 만지려는 것처럼 허상을 희구하는 향수병을 동반한다.
강인숙
3.0
방콕의 택시들은 시내에서도 마치 죽음의 질주라도 하듯 속력을 내어 달리는 경우가 많다. 오토바이 기사들도 그렇고,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대답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놀랐다. 죽어도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 또 한 번은 방콕 시내에서 집중호우로 모든 교통수단이 일시멈춤을 한 적이 있는데, 택시를 잡지 못해 버스라도 타려고 올랐다가 꼬박 세 시간 반을 붙잡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시간 동안 기사에게 언제 출발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허투루나마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물어보니,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은 전생의 업을 닦는 것이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대답이었다. 국교가 불교인 나라 사람들답게 윤회와 환생을 철석같이 믿는 모습이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꽃을 바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감독의 <엉클 분미>도 이러한 윤회와 환생에 관한 신비감이 가득 넘치는 판타지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판타지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시사를 주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고, 사람이 동물과 물고기와 같이 노닐고, 전생이 보이고.. 윤회와 환생을 믿는 태국사람들에겐 이 모든 일이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개인차는 물론 있겠지만, 태국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 임사체험과 사후세계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 죽음은 또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전혀 알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세계이지만, 영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면 그런 또 다른 세계가 있으면 좋겠다 싶다. 몸은 비록 소멸될망정 영혼은 살아남아 있었으면 싶은 것이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영혼마저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다.
Jay Oh
4.0
경계가 사라질 뿐, 끝은 없다. "영화" 또한 틀이 희미해지고 저 너머로 스며들어 다른 것이 될텐데. Spiritual passing, beyond the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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