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asaki is an inventor working on an Artificial Body. It is not going well and he is stressed out and on the verge of being fired from the research division of his company. His doppelgänger appears to help him out of the rut he has created for himself.
조정희 영화평론자
3.0
“어느 날 나와 똑 같은 내가 나타나 “모든 건 나에게 맡겨”라고 하며 동거를 시작한다면?” 구로사와 기요시는 내재하는 선과 악의 대립과 외부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대립을 중화하여 기이한 형태의 중립의 방향을 설정한다. 당신은 개인적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류와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가?
오세일
4.0
대부분이 <도플갱어>를 두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무의미한 실험 내지 실패작 취급을 하는데, 그런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도 오프닝에서부터 매혹되었다. 핸드헬드로ㅡ도플갱어로 대체된ㅡ다카시의 뒷모습을 서늘하게 목격하는 카메라와, 그 순간 얕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과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불균질한 정서까지. 해당 숏에서 느껴지는 불안의 징조는, 이내 전화를 받지 않는 다카시로서 현실이 된다. 이외에도 줄곧 세 갈래로 나뉘는 프레임의 숏이 재미있었다. '도플갱어'라는 주제의식에 걸맞게 육신적인 분열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프레임이 분절되는 첫 찰나에 세 갈래로 나뉜 프레임 간극의 검은 선을 열린 문 내부의 어두컴컴한 공간과 병치시키는 아이디어가 놀라웠다. 역시 기본적으로 기요시의 영화에는 확연한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사뭇 다시 복기해 볼 수 있었다. 기계에 인간의 영혼을 주입하겠다는 인공 신체 실험은, 곧 인류가 지닌 한계이자 섭리를 거스르겠다는 욕망과도 같다. 그런 하야사키의 그릇된 욕망은 도플갱어의 모습으로 실체화되며, 도플갱어는ㅡ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선을 지키기 위해ㅡ이행하지 못하던 하야사키의 모든 욕망을 대신 실현해 준다. 욕망과 그에 대한 목적의 실현만으로 프로그래밍된 도플갱어는, 모든 인간다운 개념들이 거세된 존재이다. 이를테면 나태함, 나약함, 참을성, 이해심 등의 무수한 감정들. 결국 하야사키는 서서히 도플갱어의 존재에 동기화된다.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 주는 존재(욕망), 애써 부정하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임을 인정하는 과정(순응). 결국 하야사키 또한 개인적인 신념을 이룩하고자 하는 열정이 아닌, 세속적인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도플갱어를 통해 스스로 시인하게 된다. 사실 <도플갱어>는 (여러 의미로) 후반부가 백미이다. 뒤통수에 뒤통수가 반복되는 인과 관계의 얽힌 비극도 그렇지만, 서로 쫓고 쫓기는 연출의 구성 형태나 배우들의 감정이 배격된 연기 등은, 마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한 감상을 안겨준다. <큐어>와 공통된 인류의 질병을 플롯의 매개로 구현하지만, 정작 장르를 그리는 방식은 <큐어>의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도플갱어>는 공포, 스릴러가 아니다. 어쩌면 <도플갱어>야 말로 기요시의 가장 완전한 세계로의 태동일지도 모르겠다. 비개연성, 장르의 모호함, 감정 없는 살인, 오락적인 작가주의. <도플갱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요시의 세계를 정의하는 다소 당혹스러운 괴작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요시의 세계를 특이한 방식으로 응집한 이해 과정의 필수 요소이다. 나는 그가 앞으로도 또 다른 <도플갱어>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JE
4.0
This may contain spoiler!!
ygh_光顯
4.0
욕망의 형상화 아닌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마음이 영화의 플롯과도 같이 느껴진다. 종말을 향해 전진하는 좌표의 끝자락에서 위선을 떨쳐내고 황량한 벌판에서의 목적지 없는 해방은 꽤나 씁쓸한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sendo akira
3.5
호러인줄 알았건만 도덕과 본능 사이에 줄다리기를 서로 닮은듯 닮지않게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 구로사와 기요시에 감각적인 지킬앤 하이드
김남윤
2.0
<보스톤 교살자> + <파이트 클럽>
MinJin Park
WatchList
컨벤션을 의식해 헛된 시도들만 수두룩
우울한cut과 유쾌한song
0.5
나를 알아주는 나는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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