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3.5헐. 이 침묵이 그 침묵이었어? ㅎㅎㅎㅎㅎㅎㅎ 설경이 너무 어울리는 이탈리아의 서부극! 억울함을 가득 충전한 그 남자의 복수…. 아쉽게도 뭉쳐진 한들의 게이지가 너무 높아서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는 듯 하다… #22.2.2 (125)Like49Comment0
Cinephile4.0서부극의 전형적 구조와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해당 장르 특유의 영웅 만능주의와 권선징악적 정의감에 분명한 의문을 보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이 눈밭의 환경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부분들까지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Like11Comment0
sendo akira4.0분명한 선악구도를 지니지 않은 스파게티 웨스턴임을 알고있다지만 그럼에도 어쩔수없이 관객들이 영화에 바라는 일정치에 기대감이라는 틀을 부숴버리는 과감함과 무법시대에서 가장 현실적일수도 있을 가혹한 결말을 제시하는 피의 진혼곡 설원의 풍경과 총의 격발음을 안주삼아 지독한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위스키를 목구멍으로 들이부으는듯한 느낌Like7Comment1
Dolce4.5Il Grande Silenzio, 1968 <장고>의 감독인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연출한 68년 작품이다. 국내에선 주로 <위대한 침묵> 혹은 <위대한 침묵자>로 부른다. 원제에서 침묵이라는 뜻의 'silenzio'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 그란데 실렌시오ㅡ위대한 침묵'이란 명성이 자자한 총잡이인 주인공 실렌시오를 부르는 별명이면서, 한편 작품 전반과 그 방향성에 서린 강력한 침묵의 정서를 나타내주기도 하는 제목이다. 모래바람으로 자욱한 황색의 땅 대신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의 설경, <위대한 침묵>은 그 풍경에서부터 일반적인 서부극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서정성과 음산함을 지니고 있다. 따지자면 '수정주의 스파게티 웨스턴'의 범주에 들어갈 이 영화는 역시나 그 원래의 장르를 비틀어 꼬집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수정주의 웨스턴의 전반적인 정서가 그러하듯, 흑백논리로 규정되는 선악관계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선악의 구분이 혼재되어 불분명해진 회색의 세계에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물들만이 존재한다. 주인공 실렌시오는 그의 과거가 그에게 부과한 운명대로 일종의 '보호'를 위해 현상금사냥꾼들을 죽이고, 무법자들은 배가 고파 보안관의 말을 뺏고, 현상금사냥꾼들은 본인의 밥벌이로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규정한 무법자들을 죽인다. 몇 장면에서 서부극 총격전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히 쫄깃하지만 이때 흐르는 붉은 선혈과 피해자들의 비참한 모습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보다는 차라리 처참한 느낌을 준다. 실렌시오의 눈빛과 시체를 포근하게 덮는 하얀 눈발 ... ㅡ 그들 총잡이들의 말馬은 경쾌하고 폭발적이게 달리지 못한다. 다만 두 발을 절듯 눈밭을 힘겹게 헤쳐나갈 뿐. 말을 타고 하얀 눈밭을 지나가는 인물들을 원경으로 길게 잡은 숏(익스트림 롱 숏)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회색지대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었던 보안관은 질서를 유지할 평화로운 대책을 마련하지만 결국 좌절한다. 끝내 마지막 질서의 끈이 끊어진 사회는 적개심과 복수심의 화염 속으로 빠지고 결국 파멸적인 수순을 밟는다. 실렌시오의 현상금사냥꾼에 대한 끔찍한 과거사와 (사랑으로서 순수해진) 폴린의 복수 사주, 이 얽히고 섥힌 복수의 구도에서 관객으로서 응원할 대상은 당연히 실렌시오가 되겠지만, 영화는 결코 관객이 원하는 결말을 주지 않는다. 양손에 부상을 당한채 눈보라 속에 힘없이 서있는 실렌시오의 모습, 위대한 침묵silenzio은 초라해지고, 거대한 침묵만이 학살의 현장을 휘감는 비관적 엔딩은 전복적이고 과감하다. 영웅은 없고, 정의는 침묵한다. 트린티냥의 마스크는 실렌시오역에 딱이다. 정말 한마디도 안 하는데 분위기와 무게감은 최고. 킨스키의 연기도 대단하다, 경박한 듯하면서도 살벌한, 잊히지 않을 악역.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아름다운 설경과 더불어 이 영화에 묘한 서정성을 부여한다. 중간에 무법자들이 마을로 가는 장면이었나, 소프트포커싱으로 찍힌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위대한 침묵>에는 해피엔딩과 모호한 엔딩, 그리고 본래의 엔딩까지 해서 총 세 개의 엔딩이 존재한다고 한다.Like2Comment0
하드보일드 센티3.0<장고>보다 더 나아간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이색 스파게티 웨스턴. 세르지오 레오네의 바운티헌터를 겨냥. 하얀 설원의 풍광도 진흙탕 거리만큼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재주. 기대를 저버리는 비관주의 엔딩의 냉기.Like2Comment0
다솜땅
3.5
헐. 이 침묵이 그 침묵이었어? ㅎㅎㅎㅎㅎㅎㅎ 설경이 너무 어울리는 이탈리아의 서부극! 억울함을 가득 충전한 그 남자의 복수…. 아쉽게도 뭉쳐진 한들의 게이지가 너무 높아서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는 듯 하다… #22.2.2 (125)
Cinephile
4.0
서부극의 전형적 구조와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해당 장르 특유의 영웅 만능주의와 권선징악적 정의감에 분명한 의문을 보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이 눈밭의 환경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부분들까지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
별빠
4.5
서부의 한기와 싸우는 복수의 열기, 약자의 침묵을 깨운 강자의 법을 향한 총성, 파국의 한파를 녹일만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칭송.
sendo akira
4.0
분명한 선악구도를 지니지 않은 스파게티 웨스턴임을 알고있다지만 그럼에도 어쩔수없이 관객들이 영화에 바라는 일정치에 기대감이라는 틀을 부숴버리는 과감함과 무법시대에서 가장 현실적일수도 있을 가혹한 결말을 제시하는 피의 진혼곡 설원의 풍경과 총의 격발음을 안주삼아 지독한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위스키를 목구멍으로 들이부으는듯한 느낌
상원
5.0
잊혀진 것들을 위한 시.
Arrowhead
3.5
예상치 못한 결말에 대한 당혹감
Dolce
4.5
Il Grande Silenzio, 1968 <장고>의 감독인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연출한 68년 작품이다. 국내에선 주로 <위대한 침묵> 혹은 <위대한 침묵자>로 부른다. 원제에서 침묵이라는 뜻의 'silenzio'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 그란데 실렌시오ㅡ위대한 침묵'이란 명성이 자자한 총잡이인 주인공 실렌시오를 부르는 별명이면서, 한편 작품 전반과 그 방향성에 서린 강력한 침묵의 정서를 나타내주기도 하는 제목이다. 모래바람으로 자욱한 황색의 땅 대신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의 설경, <위대한 침묵>은 그 풍경에서부터 일반적인 서부극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서정성과 음산함을 지니고 있다. 따지자면 '수정주의 스파게티 웨스턴'의 범주에 들어갈 이 영화는 역시나 그 원래의 장르를 비틀어 꼬집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수정주의 웨스턴의 전반적인 정서가 그러하듯, 흑백논리로 규정되는 선악관계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선악의 구분이 혼재되어 불분명해진 회색의 세계에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물들만이 존재한다. 주인공 실렌시오는 그의 과거가 그에게 부과한 운명대로 일종의 '보호'를 위해 현상금사냥꾼들을 죽이고, 무법자들은 배가 고파 보안관의 말을 뺏고, 현상금사냥꾼들은 본인의 밥벌이로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규정한 무법자들을 죽인다. 몇 장면에서 서부극 총격전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히 쫄깃하지만 이때 흐르는 붉은 선혈과 피해자들의 비참한 모습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보다는 차라리 처참한 느낌을 준다. 실렌시오의 눈빛과 시체를 포근하게 덮는 하얀 눈발 ... ㅡ 그들 총잡이들의 말馬은 경쾌하고 폭발적이게 달리지 못한다. 다만 두 발을 절듯 눈밭을 힘겹게 헤쳐나갈 뿐. 말을 타고 하얀 눈밭을 지나가는 인물들을 원경으로 길게 잡은 숏(익스트림 롱 숏)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회색지대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었던 보안관은 질서를 유지할 평화로운 대책을 마련하지만 결국 좌절한다. 끝내 마지막 질서의 끈이 끊어진 사회는 적개심과 복수심의 화염 속으로 빠지고 결국 파멸적인 수순을 밟는다. 실렌시오의 현상금사냥꾼에 대한 끔찍한 과거사와 (사랑으로서 순수해진) 폴린의 복수 사주, 이 얽히고 섥힌 복수의 구도에서 관객으로서 응원할 대상은 당연히 실렌시오가 되겠지만, 영화는 결코 관객이 원하는 결말을 주지 않는다. 양손에 부상을 당한채 눈보라 속에 힘없이 서있는 실렌시오의 모습, 위대한 침묵silenzio은 초라해지고, 거대한 침묵만이 학살의 현장을 휘감는 비관적 엔딩은 전복적이고 과감하다. 영웅은 없고, 정의는 침묵한다. 트린티냥의 마스크는 실렌시오역에 딱이다. 정말 한마디도 안 하는데 분위기와 무게감은 최고. 킨스키의 연기도 대단하다, 경박한 듯하면서도 살벌한, 잊히지 않을 악역.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아름다운 설경과 더불어 이 영화에 묘한 서정성을 부여한다. 중간에 무법자들이 마을로 가는 장면이었나, 소프트포커싱으로 찍힌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위대한 침묵>에는 해피엔딩과 모호한 엔딩, 그리고 본래의 엔딩까지 해서 총 세 개의 엔딩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드보일드 센티
3.0
<장고>보다 더 나아간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이색 스파게티 웨스턴. 세르지오 레오네의 바운티헌터를 겨냥. 하얀 설원의 풍광도 진흙탕 거리만큼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재주. 기대를 저버리는 비관주의 엔딩의 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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